한강의 기적 1년 후, ETF 라는 신세계에 입문
남편이 독서를 시작한 것은 2024년 10월 하순이니, 이제 막 1년이 되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그 변화의 작은 불씨였을까. 지난 1년 동안 남편의 모습 중 가장 놀라운 변화는 바로 '재테크'에 대한 관심이다. 독서를 시작하기 전까지 그는 경제나 재테크에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늘 우리 집은 부족하다며 고가의 외제차를 모는 친구들을 부러워만 했을 뿐, 어떤 노력이나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나 즐거움인 듯했다.
불과 올해만 해도 퇴직금을 개인형퇴직연금(IRP) 계좌에 넣을 때조차 모든 것을 나에게 일임했다. 우리 가정의 모든 경제적인 부분은 나 혼자 알아보고 결정해야 했고, 남편에게 상의를 하려 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늘 "당신이 알아서 해라"였다. 지난 세월, 차마 다 풀어낼 수 없는 답답함이 내 안에 완전히 승화된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남편이 재테크에 첫발을 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격스럽다.
나는 10여 년 전 은행을 통해 원금 손실 우려가 있는 상품에 가입해 소소한 수익을 경험하기도 했다. 부동산 폭락과 폭등기를 거치며 분양에 당첨되지 못하거나, 기회가 있어도 잡지 못했던 아쉬움도 크다. 주식과 코인에는 문외한이었고, 손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공부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다만,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3층 연금'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에 거치식 또는 적립식으로 꾸준히 자금을 모아왔을 뿐이다.
남편이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ETF, S&P500, 거치식 투자 같은 개념들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급기야 그는 원금보장형 퇴직연금을 ETF에 투자하자고 제안하며, 책을 보고 빼곡하게 적어둔 추천 상품 목록까지 내게 건네주었다. 살다 보니 남편이 나에게 책을 추천하는 날도 오는구나 싶어 감회가 새로웠다. 남편이 이런 관심을 10년만 더 일찍 가졌더라면 우리 가정의 경제 사정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혹여 이 글을 읽는 40대 이하의 독자 중 단 한 명이라도 독서를 시작하고 재테크에 미리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이 글을 쓴 목적은 충분히 달성될 것이다.)
은퇴 시기가 가까워질수록 자산의 위험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나 역시 작년 하반기부터 비트코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지난 10년간 코인, 주식, 부동산, 금의 그래프가 모두 우상향하며 빨간색으로 도배된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투자의 세계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언론의 긍정적인 신호 때문이라기보다는, 남편이 독서로 인해 사고의 틀을 깨고 내가 우리 집의 급한 불을 어느 정도 끈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년간의 경제 사이클과 그래프를 돌이켜보니, 남편과 나는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마치 '무인도에 고립된 채' 살았던 것만 같다. 물론 우리의 나이와 투자의 기본 원칙을 고려하면 지금 고점에서 매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남편의 ETF 추천과 미래에셋증권 상담자의 보수적인 조언을 참고하여, 우리는 퇴직연금을 10년 장기 상품에 가입했다. 채권과 금에도 일정 비율 분배하여 위험성과 안정성을 적절히 조절하는 분산 투자를 택했다.
나 역시 코인 투자 초보이기에, 알트코인에 대한 잦은 매매 대신 주로 비트코인을 장기적으로 매수하고 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이미 고점이니 사이클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코린이(코인과 어린이의 합성어)'임을 인정하고,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중수익과 중위험의 방법으로 10년간 장기적으로 묻어둘 계획이다. 탐욕이 아니라, 국가나 자녀 세대가 우리 노후를 돌보지 못할 상황에 대비해 최소한 인플레이션을 방어할 정도의 수익을 목표로 한다. 어떤 이는 매수 타이밍을 예측할 수 없으니 '파란색(하락)'일 때 현금이 있다면 조금씩 산다고 했다. 나 역시 수익률은 낮을 수 있으나 위험 부담을 줄이는 방식으로 매수해 나가는 입장이다. 고수익보다는 고위험을 더 경계하기에, 남편과 나는 지금 투자의 세계에 기웃거리면서도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독서는 한 사람의 굳어 있던 사고 체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이는 거의 환골탈태 수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결혼 30년이 지나 독서를 통한 변화가 가정의 경제 개념에 균형과 질서를 가져오며 '가정 리모델링'을 이룬 것이다. 무수했던 발등의 불들은 이제야 꺼진 듯하다. 불 꺼진 자리에는 아직도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적어도 위험을 알리는 빨간 불씨는 보이지 않는다.
1950년 전쟁 이후 폐허에서 정부 주도로 30~40년 만에 세계적인 산업 국가로 성장한 우리나라의 대변혁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른다. 2024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으로 촉발된 남편의 독서가 우리 가정에 30년 만의 대변혁을 가져왔으니, 이는 기적 같은 변화다. 독서는 한국 중년 부부의 가정에 새로운 '한강의 기적'을 선사하고 있다.
그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