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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결혼은 2인삼각 경기

연재를 마무리하며

by 데레사

어른이(어른+어린이의 합성 신조어)가 어른으로 성장


얼마 전 구청 체육관에서 성당 체육대회를 진행했다. 신자들 대부분이 평균 60대 정도이기에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즐겁게 웃으며 함께 어울렸다. 동네별로 묶어서 동편 서편으로 나눠서 응원석에 앉아 있거나 조금 젊은 신자들은 경기에 나가 힘껏 기량을 발휘했다.


그 중 2인 삼각 경기가 있었다. 성당 체육대회지만 소속된 팀의 승리를 위해 의기충천하며 짝꿍과 전략을 짰다. 나의 오른쪽 발목과 짝꿍의 왼쪽 발목을 맞대고 함께 하나둘, 하나둘 하며 발을 함께 내디뎠다. 양쪽 팀이 각각 20쌍이 출전하면서 릴레이식으로 계속 배턴을 터치해서 최종적으로 일찍 도착하는 팀이 승리했다. 처음 본 신자였지만 어깨를 맞잡고 연습했다. 우리 차례가 되자 각자의 발목을 한데 묶어 연습했던 대로 구령을 붙여가며 한 발 한 발 뛰듯이 발맞추어 갔다. 마음은 급했지만 내가 빨리 가는 것보다는 짝꿍과 맞춰서 가야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갈 수 있었다. 원점으로 돌아왔을 때는 우리가 상대팀과 가까스로 동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팀에서는 환호를 질렀고, 짝꿍과 나는 의기양양하게 팀원들과 터치하며 우리 팀이 역전되기를 응원했다.


우리 팀과 상대 팀이 거의 막상막하로 진행될 즈음, 상대편의 한 쌍이 넘어지고 말았다. 한 명이 빨리 가려고 했고, 한 명은 거기에 못 맞춰주어 한 사람이 넘어지니까 빨리 가려던 사람도 같이 넘어졌다. 진행자는

조심하라며 빨리 가는 것보다 다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주의를 주었다. 옆 팀이 넘어지면서 우리 팀이 결국 승리했다.


경기 중에 남편의 문자가 와 있었다. 어젯밤 남편에게 얘기했던 내용을 그제야 문자로 답을 받았다. 한참 기분 좋게 체육대회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 문자로 그만 힘이 빠졌다. 내가 출전하는 경기는 다 마쳤기에 잠시 체육관 밖 공원 벤치로 나왔다. 성경, 신부님 강론, 예수님의 메시지는 ‘서로 사랑하라’는 건데, 내 생계를 책임져주고 있는 남편에게는 왜 그게 안 되는지 답답하고 속상했다.


문득 조금 전 했던 2인 삼각 경기가 떠올랐다. 어찌 보면 결혼 생활도 2인 삼각 경기와 같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한 사람의 역량이 뛰어나다고 빨리 가려고 하면 같이 뛰는 사람은 넘어지게 되어 있다. 서로의 발목이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어깨를 감싸고 같이 구령을 붙여가며 상대방과 나의 걸음 속도를 맞춰서 가면 무사히 코스를 돌아 완주할 수 있다.


우리 결혼생활은 엇박자 2인삼각경기였다. 서로가 내딛는 속도도 다르거니와 결정적으로 말로서 구령을 붙여가며 걸음을 옯겨야 하는데, 대화 없이 걸음을 내딛으려고 하다 보니 자주 넘어지거나 나 혼자 힘껏 뛰려다 발목에 묶었던 끈이 풀어지기도 하는 사태가 자주 발생했다.

가정이라는 끈으로 묶여 살면서 최소한의 대화를 해야 구령에 발맞추어 육아, 경제, 건강, 사회적 관계 등을 의논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하는데, 모든 것을 나 혼자 처리해 가며 살아왔다. 남편을 원망하면서도 풀어지는 끈을 다시 동여매고, 발을 맞춰보자고 닦달하고, 구령을 같이해보자고, 내 어깨에 손을 좀 얹어보라고 끊임없이 얘기했다. 남편만 탓했던 시간들이었다.


나는 아내로서 남편에게 얼마나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었을까? 난 뭐든지 꼼꼼, 최선, 문제해결 등의 성향이다. 그런 나와는 반대로 남편은 단순, 쉽게, 대략, 편함을 추구하면서 산다. 너무 다른 성향들이 만나 결혼생활을 하며, 왜 내 기준에 맞추지 않느냐고, 자주 남편을 재단했다. 남편의 고유 성향이 있는데, 그걸 인정하지 못하고 내 잣대가 옳다고 확신했다. 나의 시선은 남편의 단점에만 맞춰져 있고 장점들은 공기처럼 느끼지 못했다.


평소에 같은 취미생활을 하며 한 번씩 어울렸던 동생이 있는데, 서로의 남편에 대해 안 맞다며 둘이서 각자의 남편 흉을 보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 남편이 출근한 지 2시간 만에 직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엊그제 그 동생과 통화를 했다.


" 살아있을 때는 몰랐는데 죽고 나니까 남편만 한 사람도 없었어요."

....... 중 략......

" 난 요즘 일 그만두고 좀 쉬고 있어."


"부럽네요. 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만둘 수도 없어요."


회한이 묻어있는 그녀의 고백이 내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나도 늘 남편 단점만 보는데, 남일 같지가 않았다.

가톨릭에서는 올해가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해인데, 고백성사를 볼 때 왜 남편에게 내가 잘못한 것만 떠올랐는지 알 수 없었다.



함께 사는 동안에 가정이라는 끈으로 묶인 상태라면 내 생각보다는 상대방과 속도를 맞추려는 태도가 먼저다. 우리는 서로에게 맞추려는 생각보다 각자의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래서 어깨에 손을 올리지 않고 각각 다른 곳으로 시선이 향했고, 대화가 없다 보니 구령을 맞출 수가 없었다. 나의 핀잔이 남편의 입을 닫게 했던 것 같다. 구령이 없으니 걷는 속도에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자주 넘어지고, 왜 못 맞추냐고 언성이 높아졌던 거다.


이제는 따로 구령이 필요 없을 만큼 세월 속에서 걸음 속도를 알고 있다. 2인 삼각 경기에서 끈은 풀렸지만, 다시 끈으로 묶지 않았다. 그저 옆에서 동반자로 걸으며 목마를 때 물을 나눠주고, 비가 오면 우산을 씌워준다. 그냥 내 곁에 동반자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유행가 가사가 맴돈다.


그동안 한강의 기적 연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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