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시작은 독해력
민호가 어렸을 때부터 부부싸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민호는 엄마가 아빠와 싸운 후, 기운 없어 보일 때 자신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빠의 성격이 강해서 아빠에게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아마도 스스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무기력함을 느끼고 공부도 회피한 것 같았다. 민호의 내면을 어머니에게 전달해 주니까 어머니도 그간의 가정사를 털어놓으며 민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민호의 성적이 그 정도로 바닥이 된 것에는 부부간의 불화와 공부에 대한 동기부족이었다.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경제적인 역할이 부족하다 보니, 늘 다툼이 잦았다. 민호 어머니가 꽃가게를 하고, 아버지는 가끔씩 가게에 나가서 화분을 들어다 주는 것 등 간단하고 힘이 필요한 부분만 해 주고, 가게 일은 거의 민호 어머니가 꾸려가는 형국이었다. 민호 아버지는 집안일도 거의 하지 않거나, 가끔 술과 도박에 빠져서 가게 일조차 소홀한 경우였다.
민호가 나와 수업을 시작한 이후 집중을 잘 한다거나, 숙제를 잘 한 것은 아니었다. 수업시간에 졸기도 했고, 내가 한참 설명을 하고 나서 제대로 이해했나 질문해보면 모르는 내용도 많았다. 대부분 민호를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수업을 진행했지만 때로는 따끔하게 혼내주기도 했다. 사교육 교사가 학생을 혼낼 때는 학생과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인 상태에서 가능하다. 자칫 처음부터 학생에게 훈계를 하면 수업을 안 하겠다고 한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아이가 싫어하는 수업이니 어차피 효과가 없기 때문에 수업을 그만두게 된다.
독해력을 익혀가면서 시험이 든 달에는 국어 시험대비만 지도했다. 각 단원의 기본 개념과 의미를 설명해주고, 문제집을 함께 풀었다. 문제에 나오는 용어들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성적이 낮은 것은 당연했다. 문제나 선택지에 자주 출제되는 용어 설명이나 문제 유형별로 문제 푸는 방법을 설명했다. 민호는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에 상당히 기뻐하면서 수업에 따라왔다. 천성이 밝은 아이여서 마음을 공감해주고, 공부를 조금만 이끌어주어도 잘 따라왔다. 첫 기말고사 시험을 쳤는데, 국어가 40점이 올라서 60점대가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성적에 민호는 의기충만해졌다.
“선생님, 민호가 공부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기쁘네요. 너무 감사해요.”
그동안 민호 어머니는 가끔 문자 정도만 주고 받았는데, 성적 향상 후 한 번 통화를 하고 난 뒤였다. 한동안 민호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아서 민호에게 물어보니 엄마가 가출했다고 힘없이 말했다. 민호는 가끔 우울한 기색이 보였지만, 나와 수업하는 시간은 좋아했다. 매월 초에 입금되던 회비가 1개월이 지나도록 입금이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조금 늦는가보다고 문자만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 가끔씩 낮 시간임에도 집에서 보였던 민호 아버지도 볼 수 없었다. 엄마가 가출하고 나서 민호 아버지가 꽃가게 일을 한다고 했다.
가정사의 극심한 혼란을 겪으면서 민호는 여동생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2개월 즈음에 회비가 입금되었는데, 통장의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그 즈음 어머니에게 연락이 와서 몸이 아파서 수술하고 좀 쉬고 왔다고 했다. 민호는 나와 수업한 이후, 국어 성적이 오르면서 수학도 개인과외를 통해 조금씩 성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와 개인수업이라 수학과외까지 하다보니까 비용면에서 부담을 느끼면서 수업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심리상담 전문가도 아니었고, 공부코칭 전문가도 아니었지만 민호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면서 진심으로 민호를 아껴주는 마음으로 다가갔기 때문에 민호가 마음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민호는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였는데, 어머니는 일로 부부불화로 늘 지쳐있었고, 강한 아버지와도 좀체 대화가 거의 없었다. 그런 민호에게 나는 정신적 엄마이자, 멘토이자, 깊은 대화를 나누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민호가 나와 수업을 통해 기본 독해력 향상과 공부 습관을 갖게 된 것은 기본적인 학습능력과 의지가 있었는데, 다만 스스로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국 심리학회의 동기 강화 상담에서는 내담자와 상담자가 위계적인 관계가 아닌 협동 정신을 가지고 작업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따라서 상담자는 권위적인 자세를 취하기보다 내담자와 동등한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권고, 설득, 논쟁보다는 지지적인 태도로 양가감정과 동기를 탐색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상담자는 내담자가 스스로 자신의 문제 행동과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편안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든다고 한다.
심리학 상담기법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지만 민호가 마음을 열고, 공부를 하게 되기까지 민호에게 공감과 지지는 학습동기부여를 해 준 것임에는 맞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