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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Sep 08. 2019

이제 그녀와 멀어져야 한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됐다.

연애 기간까지 포함해 약 10년 동안 그녀와 나는 이렇게 붙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물론 결혼이라는 건 잠에서 깨고 다시 잠에 들 때까지 같이 있다는 걸 의미할지 모른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의 대부분의 시간을 바로 옆에서 같이 한다. 그러다 보니 서로가 몰랐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고 그로 인해 또 몰랐던 나의 모습도 보게 된다. 좋든 싫든 매일 매 순간에 새로운 발견의 순간들이고 또 깨달음 시간들이다.


우리 둘 다 동시에 일을 중단하고 같이 프랑스 유학을 오면서 피치 못하게 같이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학원이나 알바 스케줄 때문에 잠시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그건 해봐야 하루 2~3시간 정도. 그 외에는 항상 같이 있었다. 결혼에 앞서 장거리 연애에 익숙해져 있던 우리에게 이 시간들은 커다란 축복임과 동시에 이 사이에 낀 시금치처럼 불편한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무사히 잘 뺘내면 괜찮지만 그렇지 않으면 금세 곪아 고름이 생기고 터지곤 했다. 물론 이내 우린 다시 서로의 옆에 다가섰지만.


얼마 전에 만두도 같이 빚었다.


낯선 타지에 사실상 둘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새 서로에게 더 의지하게 됐다. 아무래도 혼자보단 둘이, 무엇보다 그 상대가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있다는 건 더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을 테다. 가끔 우리는 다른 유학생들과 대화할 때 조금 놀라곤 한다. 심심찮게 인종차별이나 성희롱을 당하는 경우가 있고 가끔은 그 수위가 잠깐의 조롱으로 넘기기엔 심각한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우린 그런 것들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우리가 모르고 지나친 것들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혼자가 아닌 둘이다 보니 별 탈이 없었던 거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린 "프랑스에, 파리에 질렸어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한편으론 공감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솔직하게 공감을 못할 때가 많다. 사실 우리에게 이곳은 우리가 오롯이 둘로 있을 수 있게 해 준 곳과 다름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의존도는 더욱 커진다


예를 들어 그녀는 벌레가 나타날 때마다 부리나케 나를 부르고 예전이면 혼자 잘 다녔을 거리도 어지간하면 같이 나가려고 한다. 그녀는 네덜란드에서 1년간 교환학생을 하면서 혼자 무수히 많은 여행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프랑스어를 써야 하는 경우에 자연스럽게 그녀를 찾는다. 아무리 봐도 언어능력은 그녀가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데다, 실력도 그녀가 훨씬 좋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내가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먼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준다.


얼마 전 대학원 행정 등록을 해야 해서 학교에 간 적이 있다. 그동안 프랑스어 공부를 미뤄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면서 부랴부랴 서류를 준비하고 현장에서 할 말들을 정리했다. 예를 들어 "등록금은 어떻게 내면 되나요?" "석사 행정 등록하러 왔어요" "다음에 또 해야 할 건 없나요?" 등등 다급히 문장을 만들고 연습했다. 그래도 불안감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왜냐면 상대의 답변을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프랑스어는 연음도 많고 비슷한 발음들도 너무 많고... 하아... 실제 프랑스어 시험에서 듣기 영역은 낙제를 가까스로 면한 수준이었다.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그리고 또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가 함께 가기로 했다. 건물 문 앞에 들어서기 전부터 심장은 나대기 시작했다. 너무나 두렵고 무서운 순간들!


아니나 다를까 일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담당자에게 서류를 내는데 합격자 명단에서 내 이름을 찾지 못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흔히 상대가 못 알아들을 때 아니면 본인이 답답해서, 혹은 배려한고 흔히들 하는 강한 어조의 또박또박 말하기를 하는데 그럴수록 더 큰 심리적 압박을 느꼈다. 그 압박감에 눈앞이 하얘졌고 나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봤다.


보다 못한 그녀가 나 대신 이야기하려고 하자 담당자는 "아니 아니, 학생이 직접 말하세요"라며 퇴로를 막았다. 가까스로 정신줄을 부여잡고 반 이상은 이해하지 못한 상태서 일을 처리했다. 결과적으로 등록은 마쳤지만, 담당자가 던진 한마디가 내 가슴에 확 꽂혔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 내가 알아듣지 못하자 그녀가 "다른 서류 가져온 거 있냐는데"라며 알려줬다. 그러자 담당자는 "그녀가 수업까지 같이 들어가진 않을 텐데?"라며 농담을 던졌다. 근데 나는 이 말도 나중에 그녀가 알려줘서 알았다.


오늘은 어쩌다 보니 술도 혼자 마신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다


지금껏 우리는 항상 같이 있으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관계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 줬을지 모르지만 이제 혼자 짊어져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다다음주 개강할 학교 수업에는 나 혼자다. 내가 알아서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가야 하고 친구도 만들어야 한다. 그 사이 그녀는 집에 나타난 벌레를 혼자 잡아야 한다. 


우리는 혼자서도 알아서 잘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 왔다. 서로 있든 없든 자신들의 일은 잘 챙겨서 해왔고 혼자라는 것을 잘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여기 있으면서 명확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그래도 우리는 같이 있을 때 더 나은 사람들이라는 거다. 단지 생활의 문제들을 떠나 서로에게 주는 안정감과 신뢰, 의지가 있었기에 그나마 여기까지 올 수 있지 않았을까? 몰론 지금 나에게는 혼자서 이겨내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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