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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 ater Aug 09. 2021

우리 집에 왜 왔니, 꽃 찾으러 왔단다_1

단편소설

1



 그 집은 고급 저택들이 즐비한 거리에 위치해 있지 않았다. 그 집이 위치한 삼거리는 무채색 빌라들이 늘어선 빌라 촌이었다. 노인들이 즐비한 공원에서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생명력을 뽐내며 뛰노는 어린아이같았고,  유럽 감성을 지향하는 카페들 사이에서 뜬금없이 나타나는 오래된 한국식 벽돌 건물같았다. 예측할 수 없이 꼬여버린 의도들 사이에서 홀로 타인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그 집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은 느티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늘을 즐기며 골목을 지나다녔다. 행인들은 고개를 돌려 그 집과 담 위로 보일 듯 말 듯 한 정원을 바라보다가,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는 앞을 보며 방향을 다잡으려 했다. 그 집의 대문 앞까지 다가가 명패를 쳐다보는 무례한 행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명패에 한자로 새겨진 이름과 주소를 떠듬떠듬 읽어 보고는 대단한 비밀을 안 것 마냥 서둘러 자리를 떴다.

 토니 또한 그 집 대문 앞까지 다가가 명패의 이름까지 읽어본 무례한 행인들 중 하나였다. 늘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를 산책했는데, 그 집 앞 골목을 항상 산책 코스에 포함시켰다. 때로는 홀로 산책을 나섰지만, 대부분 그의 직장동료인 제임스와 함께 산책을 나섰다. 토니는 늘 자조 섞인 말로 그 집을 시기했지만, 온전히 자신이 닿지 못하는 높이로 떠 있는 곳은 아니라고 여겼다. 그는 창원의 버스터미널 근처에서 족발 집을 운영하는 부모님과는 다르게 살아보겠다며 서울로 상경한 야망 있는 젊은이였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과는 상관없이 긍정적인 사고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으며, 큰 목표를 향해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서울, 특히 회사가 위치한 강남 인근의 집값은 그의 야망에 너그럽지 않았지만, 3년간 평일에는 정수기 렌탈 회사의 영업 관리 사원으로, 주말에는 배달원으로 생활하면서도 그는 먹고사는 것 다음 단계의 야망들을 저버리지 않았다.

 산책하기 좋은 어느 가을날, 토니와 제임스는 여느 점심시간처럼 그 집 앞을 걸어가면서 집주인의 삶에 대해 얘기했다.

 “옥자씨의 일과는 어떻게 됩니까?”

 토니가 제임스에게 물었다. 제임스는 토니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일단 10시에 기상합니다.”

 제임스가 말을 더 이어가기도 전에 토니가 “에!? 10시요? 부럽다.”라고 말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제임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일어나자마자 저 큰 창문을 열고, 일단 커피를 내립니다. 그리고 신문! 신문은 뭘 읽으려나? 뉴욕 타임즈로 하죠. 신문을 보면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외출 준비를 합니다.”

 “어 뭐야? 일하러 가나요? 혹시?”

 “아니죠! 저 정도 집에 살려면 불로소득이 있지, 직접 일하지는 않죠.”

 그들은 그 집과 전방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럼 어디 가요? 골프클럽?”

 토니가 물었다.

 “오전부터 바로 골프 치기는 좀 이르고, 임대업자 모임에 갑니다. 가서 일상 얘기도 하고, 부동산이나 경제, 정세에 대해 얘기하는 거죠.”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네요. 저런 집을 갖고도 돈 벌 궁리나 계속하고 앉아 있다니.”

 토니가 비아냥거렸다. 그들은 그 집의 담이 끝나는 곳이자 빌라들이 나타나는 삼거리 막바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담장 위로 솟구친 느티나무가 바람에 흔들렸다. 나무를 따라 길게 늘어선 골목의 그늘도 살랑살랑 흔들렸다. 

 “저분들은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아무 고민 없이 먹겠죠? 저희 매주 두 번만 커피 사 마시기로 한 게 떠오르네요.”

 토니는 앞을 보며 말했다. 제임스는 별다른 대꾸 없이 그늘을 즐기며 걷고 있었다. 제임스가 그 집의 지붕 색깔을 눈여겨본 적은 없었다며 토니에게도 한번 보라고 권유하고 있을 때, 토니가 말했다.

 “제임스, 저는 옥자 씨가 그렇게 엄청나게 비현실적인 인물은 아닐 것 같아요. 의외로 직장에 착실히 다니거나, 유명한 음식점 같은 걸 운영하는 자영업자 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왜 서민 갑부 같은 티비 프로그램도 있잖아요.”

 제임스는 그 집의 지붕에서 눈을 떼고 앞을 바라보며 토니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는 웃으며 토니에게 말했다.

 “토니, 여기 평당 땅값 보셨어요? 저 정도 저택이라면 이미 말도 안 되는 부자예요.”

 토니는 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정원을 투시하듯 응시하며 말했다.

 “제임스, 평생 동안 저런 집에서 한번 살아볼 수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여기 다니면서 돈 모아 가지고는 어림도 없죠.”

 제임스는 호탕하게 웃으며 답했다. 토니는 여전히 그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괜히 오르지 못할 나무 쳐다보면서 자학하는 걸까요? 왜 저번에 말씀하셨잖아요. 행복은 해브 분의 원트(Want/Have)라고. 근데, 이 원트가 무한대인거 아니에요?”

 “아뇨, 원트 분의 해브. 원트가 분모예요. 그리고 원트가 무한대인건 관점 차이인 것 같은데, 저는 무한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임스가 말했다. 토니는 잠시 생각에 잠겨서 멍하니 걷다가 소리쳤다.

 “아, 어쨌든 저는 원트를 낮추지는 못하겠고 해브를 불려서 행복에 다가가겠습니다!”

 “오 야망 있는 남자!”

 제임스는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토니는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일단 초기 자본금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뭐든 투자를 하죠.”

 어느덧 그들은 회사 근처에 도착했고, 걸음이 무거워졌다. 회사 건물에 도착하자, 둘 중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제임스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산책도 만족스러웠습니다. 점심시간이 너무 짧아요.”

 일주일 후 월요일의 점심시간 역시 토니와 제임스는 점심을 일찍 먹고 산책을 했다. 그들은 산책하며 주말 동안 뭘 했는지 얘기했다. 제임스는 여자 친구와 카페에 앉아 신문을 읽으면서 커피를 마셨다고 했다. 토니는 뜨문뜨문 들어오는 배달을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는 잠을 잤다고 했다. 산책의 마지막 코스인 그 집 앞에 다다랐을 때도 토니는 졸려서 멍한 낯빛이었다.

 “제임스, 저희가 당장 저런 집을 사지는 못하더라도,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토니는 그 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날은 날이 흐려 회색 담이 더 높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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