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데 너 잘걸렸다

by john ater


"심심한데 너 잘걸렸다(너 아주 잘 걸렸다 심심 했는데)"



올해(2025년) 자주 들었던 유형어/밈 중에 인상 깊은 말이 '심심한데 너 잘걸렸다'임



주로 유명 인사가 어떠한 논란에 대해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적반하장 등의 태도를 보이는 등 대중의 화를 더욱 키운 상태에서 해당 사안에 대해 깊게 파고들 수 있는 사람의 '선전포고'의 의미를 담고 있음.


때문에 하나의 논란이 생긴 인물에게 이 말이 찍히는 순간, 태초부터 현재까지 모든 논란거리들이 까뒤집혀 문제를 더욱 크게 만드는 현상이 관찰됨






%EB%84%88_%EC%95%84%EC%A3%BC_%EC%9E%98%EA%B1%B8%EB%A0%B8%EB%8B%A4_%EC%8B%AC%EC%8B%AC%ED%96%88%EB%8A%94%EB%8D%B0.jpg?type=w1 "심심한데 너 잘걸렸다"의 시초이자 근황*



* 직업 체험을 주요 콘텐츠로 유튜버 활동을 하고 있는 잡재홍이 '메이플 스토리'의 오랜 플레이어임을 자처하며 본인의 메이플 스토리 캐릭터를 인증하였으나 이에 대한 진실성이 논란이 되었다. 이 논란을 시작으로 한 시청자가 '너 아주 잘걸렸다 심심했는데'를 시전, 메이플 스토리 사건 이전 잡재홍이 업로드했던 과거의 영상들을 하나하나 프레임 단위로 쪼개며 분석하는 광기를 보이며, 사전 협의 없이 생생한 현장 상황을 담아내 인기를 끌던 그의 콘텐츠가 조작된 것임을 주장하며 논란을 키웠다.




이 유형어/밈의 적절한 사용자는 해당 논란거리에 대해 전문가적 소양을 가졌거나, 오랜 시간 추적/관찰을 해온 사람으로서 일반 대중이 알 수 없거나 귀찮아서 찾지 못하는 사실들에 대해 파헤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때문에 이런 소양(?)을 갖고 적극적인 행동을 행하는 사람들을 '시간 빌게이츠'라고 놀리기도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가 갖고 있는 재산만큼 '여유 시간'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


'시간 빌게이츠'의 경우 멸칭의 의미가 내포된 듯 한데,

보통 사람들이 근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데 반해 이러한 사람들은 근로소득이 없거나 필요 없는 사람임을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서 쉬고 있는 상황이거나 근로에 시간을 할애할 필요 없이 자본만으로 의식주 해결이 가능한 상황임을 뜻한다.

하지만 '시간 빌게이츠'의 경우에는 후자보다는 전자를 뜻할 가능성이 높다.


'심심한데 너 잘 걸렸다'라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들이 무작위적으로 화를 분출할 대상을 찾아 헤매다가 대상이 포착되는 순간 물어뜯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만한 전문성과 집요함을 보이며 논란을 파헤치는 데는 단순한 분노 표출을 넘어서는 어떠한 동력이 추가적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그 동력은 논란이 생긴 해당 분야에 대한 애정이 아닐까 한다






어떠한 것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 어떠한 능력을 수반하는가?


'시간 빌게이츠'가 어떠한 논란에 대해 딥하게 파헤치는 것이 해당 분야에 대한 애정에 의한 것이라면, 이 애정(원동력)은 어떠한 능력을 확장시킬까


어렸을 적, 그러니까 지금보다는 음악을 듣는 것에 관심이 많고 정서적 영향을 더욱 많이 받았을 때가 있었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주위 친구들과 지인들 또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언젠가는 그들과 ‘음악을 듣는 취향에 귀천이 있는가’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내 주위 사람은 ‘음악 취향에 귀천은 있다. 멜론 TOP 100만 돌려 듣는 사람과 대화가 통하겠느냐? 할애한 시간과 관심을 고려한다면 멜론 Top100은 음악을 듣는 것에 관심이 없는 상태다.’라는 식의 입장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나는 ‘음악 취향은 말 그대로 취향일 뿐이고, 그 취향은 개인별 기호에 의한 선택이지 높고 낮음(고급과 저급)이 존재하지 않는다. 멜론 Top100을 듣는 사람은 멜론 Top100을 듣는 취향을 갖고 있을 뿐이다.’라는 식의 입장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렵다.


확실한 건 그때와 같이 당당히 음악 취향의 고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애정을 갖는 것, 즉 어떠한 것에 시간을 할애할수록 (현재는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어떠한 능력이 개발된다는 전제에 믿음이 생겼기 때문인듯하다.


다만 그 능력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외적인 요소(시공간 등)로 인해 규칙성 없이 드러나기 때문에, 폄하 받거나 무시당하는 일이 부지기수 일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반대로 해보자.


어떠한 능력이 어떠한 것에 애정을 가질 수 있는 전제조건인가?


닭이 먼저이냐 계란이 먼저이냐의 문제인 것 같지만,

최근 읽고 있는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Incognito)>에서 의식/무의식의 문제를 물리적(전기신호) 환원주의로 설명하는 내용을 통해 닭과 계란 중 하나가 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매력이나 맛이라는 개념에 이미 익숙한 사람이 많지만, 진화 과정에서 새겨진 이런 특성들이 얼마나 깊이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아내기 힘들 때가 많다. 우리가 개구리보다 인간에게 더 매력을 느낀다거나, 배설물보다 사과를 좋아한다는 단순한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회로에 새겨진 생각이 지침 역할을 한다는 원칙이 논리, 경제, 윤리, 감정, 아름다움, 사회적 상호작용, 사랑 등 우리의 광대한 정신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과 관련해서 우리가 깊이 품고 있는 믿음에 언제나 적용된다. 진화 과정에서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우리 생각을 이끌고 구축한다. 이 점을 곱씹어 보자. 이 말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Incognito)> - 데이비드 이글햄


이에 따르면 음악 감상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뇌의 회로 구조가 형성되는 어린 시절에 음악 감상을 통해 어떠한 감정적 만족감을 얻은 경우 일 것 같다.

(혹은 그렇게 태어났던가)


그리고 그 만족감은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차 무뎌지고, 기존에 듣던 음악들과 유사하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서 계속 헤매게 되었을 것이다.


이 관점은 '시간 빌게이츠'들의 활동에도 유사하게 적용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들이 대다수가 하지 않는(못하는) 지리멸렬한 뒷조사를 하는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고, 이 애정을 키울 수 있을만한 능력(혹은 상태)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이버 불링', '살인 스텝'이란 부정적 측면이 부각되기도 하지만, 적어도 무지성/인신공격성 악플보다는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 파헤침의 대상이 비교적 큰 규모의 법인이 아니라 인플루언서 등 소규모 대상에 한정된다는 것인데, 이러한 일들은 '시간 빌게이츠'가 할 일이 아니라 검사, 헤지펀드 등 난이도에 맞는 능력을 갖추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집단들이 행해야 할 것이다.





대체로 어려운 순서대로 부가가치가 높다.





남양유업의 상근감사로 활동하고 있는 심혜섭 변호사님이 블로그에 언급한 내용이 맥락에 참고가 될 듯하다.


대체로 어려운 순서대로 부가가치가 높다.

그리고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어떻게 배분할지 매일매일 고민하는 그 연속된 선택의 기로에서 (시간 빌게이츠 들도) 폼은 덜 나지만 가치를 투자한 것이다.






P.S

1) 여행도 이와 비슷한 성격을 갖고 있는 듯하다. 낭비인가? 축적인가? 논란이 많으며, 축적되는 것이 있다면 본인 및 타인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개인적 경험이자 무형의 것이다.


2)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Incognito)>에서는 뇌의 환원주의를 통해 인간을 단순한 화학적/생물학적 전기신호의 집합체로 보고 있지 않다. 이보다는 타고남과 주위 환경이 닭과 계란 처럼 복잡하게 얽혀 인간을 구성한다고 주장한다.




* 본문에서 언급한 가치투자자이자 행동주의 투자자 심혜섭 변호사님 블로그의 글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진로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