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기술을 배웁니다 04
코치님이 "두 번째 손가락은 왜 그래요?" 웃으셔서 알았다. 주먹을 꽉 쥐어도 모자랄 판에 나는 계란 하나를 쥔 것처럼 살포시 손을 모아 두 번째 손가락 관절이 톡 튀어나온 상태로 잽을 날리고 있었다. 콩! 콩! 꿀밤 때리려고 그러시냐는 말에 내 손을 생전 처음 본 것처럼 한참 들여다봤다.
'내가 이러고 있었다고?!'
손가락이 길어서 그런가?(그럴 리가) 나는 주먹을 단단하게 말아 쥐는 동작부터 어설프다. 손톱 끝이 손바닥에 꾹 닿는 감촉이 영 불편하다. 그러고 보니 살면서 주먹을 이렇게 꽉 쥐어본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다. 화가 나서 주먹을 꽉 쥐고 손을 부르르 떠는 장면을 드라마에서는 본 적 있지만, 현실에서는 거의 본 적도 없거니와 내가 그래본 적은 더더욱 없다.
주먹 쥐는 것도 어색한데 가드(guard) 올리는 자세는 더 어설프다. "가드 올려!"라는 말을 영화에서 들어본 적은 있는 것 같다. 가드는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하는 자세이다. 양쪽 주먹을 잘 말아 쥐고 얼굴 가까이 들어 올린다. 팔꿈치는 몸통 가까이 모아 겨드랑이를 닫고, 한 손은 뺨 앞에 다른 손은 얼굴 앞에 올려 내 몸을 보호하면 된다.
그런데 나는... 주먹을 날렸으면 얼른 다시 가드를 올려야 하는데 뻗었던 팔이 제자리로 돌아올 줄을 모른다. 두 주먹은 얼굴에서 저 멀리 떨어져 허공에 둥둥 떠있고, 겨드랑이도 활짝 열려 마치 '여기로 공격하십쇼~' 문을 열어주는 꼴이다. 턱을 잘못 맞으면 기절할 정도로 치명적이라서 턱을 보호하기 위한 자세라는데 내 턱은 매우 쉽게 노출된다. 심지어 펀치를 날릴 때 턱도 같이 앞으로 쑤욱 따라가기 일쑤다.
"저희들은 거북목이 많아요.
거북목이 맞는 자세예요."
코치님이 턱을 내리고, 윗등을 살짝 말고, 그렇다고 어깨를 들지는 말라고 하시는데 이런 동작은 정말이지 난생처음 연습해 본다. 무용을 배울 때는 목을 최대한 길고 우아하게 몸통에서 뽑아내고, 정수리를 하늘로 밀어 올린다는 생각으로 허리를 곧게 세우고, 가슴은 움츠러들지 않게 쇄골이 양 옆으로 길어지는 느낌으로 자세를 연습했다. 어깨를 으쓱 들지 않는 것만 똑같지 나머지는 정반대다.
그런데, 내 자세가 어설퍼서 그렇지 이 가드 자세, 아주 마음에 든다! 두 팔을 들어 올려 내 얼굴을 보호하고 코어에 힘주고 준비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딱 다잡아진다. 비장해진다. 턱을 바짝 당겨 보호하고, 눈을 힘껏 치켜뜨고 거울 속의 나를 노려보면 저 깊은 곳에 숨어있던 공격성이 스멀스멀 눈동자로 차오르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그래서, 나는 수시로 가드를 올린다. 샤워하고 거울 보면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심지어 길 가다가도 두리번두리번 사람이 없으면 슬쩍 가드를 올려본다. 잽! 잽! 주먹 날리는 연습까지는 아직 길에서 못하겠다. 너무 록키 같을까봐. 아, 록키.. 옛날 사람 인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