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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Feb 06. 2023

내가 이렇게 싸우길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싸우는 기술을 배웁니다 03

격투기 PT 코치님은 매번 수업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주신다.


'그치, 모니터링이 중요하지!'


나도 중요한 강의를 준비할 때는 영상으로 찍거나 목소리라도 녹음해서 모니터링해 본다. 처음엔 '와, 내 목소리가 이렇다고? 표정이 이렇게 어색하다고?' 나를 직면하기 싫지만, '강의 듣는 사람들은 무슨 죄야~' 생각하면서 목소리를 더 듣기 좋게 다듬고 편안한 표정도 연습한다.  


'팔자 주름이 언제 이렇게 깊어졌지?'

'등살은 왜 이렇게 찐거야?'


외모부터 눈에 들어오는 건 잠시, 잽! 잽! 주먹을 힘없이 날리는 내 동작에 웃음이 나온다. 마음만 앞서고 있는 와중에도 모범생 기질은 어딜 가지 않아서 코치님이 말씀하신 것들을 열심히 생각해서 착실하게 몸에 담으려는 게 훤히 보인다. 생각할 겨를 없이 반사적으로 몸이 움직여야 하는데 말이다.


하나. 코어에 힘주고,

둘. 팔엔 너무 힘주지 말고,

셋. 팔을 끝까지 뻗으라고 그러셨지?


삐걱삐걱.


아차차! 발 뒤꿈치도 같이 움직이랬지?

아, 맞다. 몸을 쓰라고 하셨지?


삐걱 삐거걱.


이렇게 머리로 생각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몸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몸이란 어찌나 솔직한지!




거울을 보고 원투~ 원투~ 기본자세를 익힌 다음에는 코치님과 마주 보고 동작을 하는데, 막상 사람이 눈앞에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물론 나의 미약한 펀치로는 선수 출신 코치님에게 타격이 전~혀 없을 걸 알면서도 '잘못해서 얼굴을 치면 어떡하지? 나 때문에 다치시면 어째...' 괜한 걱정에 팔을 제대로 뻗을 수가 없다.


게다가 코치님 손에 끼워진 미트가 눈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왼쪽을 쳐야 했다가 오른쪽을 쳐야 했다가 순식간에 동작을 바꿔야 하니 마음이 급하다. 몸도 덩달아 허둥댄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와중에 어쩌다 글러브가 미트에 제대로 맞으면 팡! 속 시원한 소리가 체육관을 울린다.


팡! 팡팡!!

이 소리는 또 사람을 얼마나 흥분시키는지!

'이번엔 제대로 쳤구나!!' 하는 쾌감과 '오~ 나 힘 좀 센가 본데?!' 착각이 뒤섞여 점점 더 신나고 흥분된다. 그리고, 흥분할수록 동작은 더 엉망이 된다;


'내가 이렇게 때리고 싸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나... 평화주의자 아니었나??'


뜨뜻한 물로 샤워하고 머리까지 야무지게 감고 나오는데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분명 숨도 못 쉬게 힘들었던 것 같은데 몸이 왜 이렇게 가볍지?

진짜 못한 것 같은데 왜 이렇게 기분 좋고 신나지?


집에 오는 길에 수업 영상을 보고 또 보며 동작을 분석해 봤다.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고 솜방망이 냥냥펀치가 따로 없지만, 그래도 인스타에는 멋있게 올리고 싶어서 그나마 괜찮은 부분을 2배속으로, 아주 짧게 편집했다.


마음 같아서는 3배속, 4배속도 걸고 싶었지만 양심상 2배속까지만.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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