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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Feb 03. 2023

현대무용 하지 마세요~

싸우는 기술을 배웁니다 02

격투기를 막 시작했을 때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이 “현대무용 하지 마세요~”였다.

나를 가르치셨던 무용 선생님이 들으면 “저건 무용도 아닌데?!” 노발대발하실 일이지만.


“동작은 예뻐요~”라는 칭찬도 종종 들었다.

가볍고 우아하게 팔을 날리지 말고 더 힘 있게 끝까지 뻗고,

몸에 힘을 주라는 얘기를 돌려서 하시는 거겠지.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혼자 피식 웃었다.

칭찬에 기분 좋아서가 아니다.

무용이 아닌 무술을 배우는데도 자세와 각도에 신경 쓰고 있는 내가 웃겨서다.


싸우는 기술 아니던가?

힘 있게 주먹을 날려 상대방을 공격하는 게 목적인데, 발레 배울 때처럼 곧은 허리, 긴 목라인, 팔꿈치 각도에 집착하고 있다니. 아무리 오래 쉬었어도 몸 쓰는 즐거움을 처음 알게 해 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직업을 바꾸는 계기가 될 만큼 강렬하게 나를 사로잡았던 무용이 몸에 남아있긴 한가보다.  




어른이 아이보다, 운동을 오래 한 사람이 초심자보다 몸에 익은 습관을 바꾸기 힘들다.

늘 쓰던 대로 몸을 쓰기 마련이다.

몸 쓰는 것만 그럴까?

나이가 들수록 살던 대로 살고, 보던 사람들만 보며 편하고 안전한 쪽으로만 마음이 기울기 쉽다.


자기만의 취향과 라이프 스타일이 확고한 것도 좋지만 나는 물 흐르듯 유연한 게 더 좋다.

'내가 모르는 세상이 있지 않을까?'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건 아닐까?'

자꾸 두리번거리고 엉덩이를 들썩댄다.


이렇게도 살아봤으니 저렇게도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강해진다.

‘이번 생은 망했어’가 아니라

남은 생은, 인생 후반전은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마음을 들쑤신다.


그래서,

주먹 쥐는 것도 어설픈 몸으로 격투기를 다 배워보고 싶은 거겠지.




오랫동안 나를 봐온 사람들에게도 펀치 날리는 내 모습이 낯설고 재밌는지 인스타에 첫 수업 영상을 올렸을 때 댓글이 주르르 달렸다. 멋있어요, 대단해요, 귀여워요 등등 ㅎㅎ

귀엽고 싶어서 배우는 건 아닌데 주먹을 말아쥔 모습이나 힘없이 펀치를 날리는 모습이

내가 봐도 참 어설프고 귀엽다(?)


몸 잘 쓰게 타고나질 않아서 연습과 시간만이 답인 걸 안다.

부지런히 몸에 익히자.

부지런히 몸에 입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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