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기술을 배웁니다 01
몇 달 전 남동생 인스타그램에 격투기 PT 영상이 처음 등장했을 때, 첫 번째 든 생각은 ‘격투기도 PT가 있어?', 두 번째는 ‘그래, 일하랴 육아하랴 힘들 텐데 스트레스 풀 데도 있어야지’였다. 그 후로도 펀치를 날리거나 킥을 배우는 사진과 영상이 종종 올라왔지만, 동생을 응원하는 마음만 있었지 ‘나도 해볼까?’하는 마음은 1도 없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던 코로나 탓인지 사십 대가 원래 이런 건지 사는 게 지루하고 다 재미없던 늦여름.
오랫동안 익숙하게 해온 일이나 취미 말고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꽉 차 있던 때.
무엇보다 생존을 위해 무술 하나쯤은 배워야겠다는 갈망이 꿈틀거리던 어느 날.
동생이랑 이런저런 안부를 묻는 통화 끝에 날숨처럼 자연스럽게
"나도 배워볼까, 격투기?"
라는 말이 훅 나와버렸다.
무술, 싸우는 기술에 관심이 생긴 건 나도 몇 번은 무심코 들렀을 지하철 역 화장실에서 스토킹 범죄가 일어나 세상이 뒤숭숭하던 때부터다. 흉흉한 뉴스야 TV만 틀면 늘 나오지만 신당역이 전에 살던 동네와 가까워서인지, 셀 수 없이 많이 갔던 온갖 지하철 역들의 화장실이 떠올라서인지 유난히 내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넷플릭스 <수리남>에서 유도 선수였던 주인공이 위급한 순간마다 몸을 써서 살아남는 걸 보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싸울 줄도 좀 알아야겠어!'
'무술이란 걸 배워둬야겠어!!'
휴대폰이나 호신용 도구를 꺼낼 여유도 없을 때, 나를 해치려는 자와 맨 몸으로 대면해야 할 때,
본능적으로 나를 방어하고 결정적으로 한 방! 먹이는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
어떤 운동이든 1:1 PT로 배우면 좋기야 하겠지만, 늘 가격이 부담이다. 동네 헬스장이나 요가원도 계산기 두드려보다 매번 마음을 접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이건 지금 꼭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커리어에 도움 되는 게 아니면 돈을 편히 쓰지 못했는데 이건 생존을 위한 거라며, 이거라도 안 하면 숨 막힐 것 같다며 스스로를 설득했다.
'홈트처럼 영상 보면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딱 열 번만 해보자!'
'반도 못 채우고 포기하면 동생한테 양도하지 뭐.'
동생이 코치님과 나를 초대해서 단톡방이 만들어졌고, 코치님과 서로 인사하는 순간 동생은 쿨하게 방을 나갔다. 나도 톡으로 긴 얘기 하는 걸 안 좋아하기도 하고, 톡으로 응대하는 것도 코치님한테는 업무일 것 같아서 최대한 간결하고 예의 바르게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수업 날짜를 잡았다. 첫 운동 언제부터 가능하냐는 질문에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고 싶은 마음 반, 최대한 미루고 싶은 마음 반이었다. 최대한 미루고 싶은 마음은 내가 얼마나 하찮게 허둥대면서 못할지 눈에 선해서다. "깊게 호흡하세요~ 편안하게 이완하세요~"하는 강의는 많이 해봤지만, 빨라야 하고 강해야 하는 운동이라니. 평생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잠깐. 그래서 내가 배우려는 게 뭐지?
그제야 코치님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하고, 검색도 해봤다.
MMA가 뭐지? 종합 격투기라고? 복싱이랑 또 다른 건가?
MMA(Mixed Martial Arts)
종합격투기. 킥복싱, 복싱, 주짓수, 레슬링 등 다양한 격투기 기술을 종합하여 맨 몸으로 겨루는 무술
'아, 그러니까 결국은 복싱부터 레슬링까지 다 배우는 거구나. 딱 좋아!'
코치님은 코리안좀비 MMA 소속으로 종합격투기 선수뿐만 아니라 래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인스타를 보니 배우 변요한 님, 가수 박재범 님도 코치님께 배우러 오나 보다. 오.. 박재범..!! 혹시 마주친다면 우아하게 “어머, 안녕하세요~ 팬입니다.” 쿨하게 인사해야지.
그러나, 내가 얼마나 연예인 앞에서 얼어붙는 사람인지는 체육관 오픈파티 때 제이팍을 코 앞에서 마주치며 밝혀지고야 마는데... 휴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