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는 기술을 배웁니다 06
훅(hook)을 배웠다. 훅은 옆으로 돌려 치는 펀치로, 팔을 ㄱ자로 만들어 수평으로 들어 올리고 몸통을 비틀어 주먹을 날리는 동작이다. 마치 갈고리(hook)로 훅! 낚아채듯. 주먹을 앞으로 뻗는 스트레이트(straight)보다 힘이 더 실리는 기분이라 꽤 신난다. 몸에 힘을 실어 훅! 한 방 날리고도 비틀거리지 않으려면 다리와 코어 힘이 필요한데, 힘껏 훅! 을 날린 다음 몸이 단단하게 버텨줄 때의 기분도 제법 짜릿하다. '오... 나 쫌 세 보여! 훗'
처음 동작을 배울 땐 이런 멋진 동작을 하고 있는 내 몸이 신기해서 훅! 한 다음에 자꾸 팔꿈치랑 주먹만 쳐다봤다. 손목, 팔꿈치, 어깨 관절이 만들어내는 각진 모양새가 어찌나 폼나던지. '오올~ 내 눈앞에 내 주먹이 있어!' '팔이 직각으로 잘 만들어졌나?' 팔을 들썩들썩.
“앞에 보세요~!”
“아, 맞다! ㅎㅎ”
실전이었다면 상대방이 '쟤 어디 보는 거야?' 바로 얼굴을 공격했을 거다.
한창 훅! 에 심취해 있던 어느 날. 무례한 업무 담당자와 통화를 하는 내내 속이 부글부글, 전화를 끊자마자 욱! 분노가 치밀었다.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그렇게까지 화 날 일은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대방이 그렇게까지 무례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매우 예의 바르고 똑부러졌다. (시간이 좀 지난 지금은 누구였는지, 어떤 일이었는지도 가물가물하다.)
흥분하면 머리가 하얘지고 목소리가 떨리는 나는 최대한 티 안 나도록 적당히 웃음을 섞어가며 어찌어찌 현대인답게 통화를 마무리했다. 아, 그런데 분명히 속에선 화가 치미는데 명확하게 상대방 탓도 아니니 더 짜증이 났다. 평소처럼 남편한테 조잘조잘 하소연하고도 분이 안 풀려서 달그락 달그락 소란스럽게 저녁을 준비하다 문득 알아차렸다.
나한테 화가 난 거구나.
더 매끄럽게 대처하지 못한, 더 잘 설명하지 못한 나 자신이 싫어서.
그게 제일 화가 나는 거구나.
밤늦게 샤워를 하고 머리를 말리다가 아직도 꽁한 표정의 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때다! 지금이야말로 훅! 을 연습할 때다!' 싶었다. 그동안은 앞을 노려보는 게 그렇게 어색하더니 거짓말 좀 보태서 눈빛에 살기가 가득하다. 코어에도 힘이 확 실린다.
"호흡을 내뱉어야 돼요!
선수들 하듯이 쉭! 쉭!
그래야 코어에 힘이 들어가요."
그동안 코치님이 얘기하실 땐 '그렇겠거니' 싶으면서도 소리 내서 숨을 뱉기가 민망했었다. 내 숨소리 듣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잘하지도 못하는데 센 척하는 것 같고. 그래서 나만 들리도록 숨소리를 죽이거나 아예 숨을 흡 참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런데 웬걸! 후! 후! 쉭! 쉭!! 숨이 저절로 뱉어진다. 몸에 덕지덕지 쌓여있던 짜증과 분노를 토해내듯 숨을 뱉어버리니 배와 옆구리가 조여지면서 코어 힘이 저절로 잡힌다.
오!! 이거였구나!
몸이 가볍고 스트레스도 다 풀린 기분이다.
도저히 화를 낼 수 없는 대상일 때. 화가 날 상황도 아닌데 화가 치밀 때. 스스로도 과하다 싶게 거친 감정에 사로잡힐 때. 적절히 내 마음을 표현하고 상황을 해결하고도 몸속에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있는 것 같을 때.
경직된 몸부터 풀어주면 꽁한 마음도 풀리기 쉽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머쓱하게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한다. 마음이 산뜻하게 풀리지 않을 때도 곧 터질 듯 압력이 꽉 찬 압력솥에서 김을 빼주는 정도는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러면 내가 어떤 상태인지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생긴다.
오래도록 익숙한 글쓰기, 음악, 산책과는 또 다른 결의 김빼기 방법을 득템 한 것 같아서 든든하다.
좋았어! 마음이 시뻘겋게 불타오를 땐 훅이다.
거칠게 숨을 뱉으면서. 쉭! 쉭! 훅! 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