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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부는날 Oct 16. 2019

그 때, 정말 고마웠어.


"저희 왔습니다, 왔어요. 이제 갑니다, 안녕히 계세요!"


삼인방이 나타났다! 그 날은 가을 소풍날이었다. 내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느라 보낸 열흘 정도의 휴가 이후 첫 출근날이기도 했다. 소풍의 테마는 경복궁에서 한복 입기. 한복집 사장님께서 담임선생님은 서비스로 해주겠다며 공주 같은 한복을 입히고 머리까지 땋아주셨다. 그 차림으로 걸어가는데 삼인방이 달려와 내 눈앞에 떡하니 선 것이다.


좀처럼 등교하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출석부엔 이름이 있지만 거의 불리지도 않는. 대신 내 핸드폰 발신목록 위 쪽에 언제나 조로록 떠 있는 이름들. 셋 중에 한 명이 나타나도 신기한 마당에 세 명이 세트로 등장했다. 버스를 한번 갈아타고 와야 하는 이 곳까지, 심지어 아침에! 간지가 생명인 녀석들이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겠다고 오진 않았을 테고. 도대체 얘네 왜 왔지?


"증거 있냐?"

"네?"

"니네 왔다는 증거 있냐고."

"아 진짜, 무슨 말이에요, 얼마나 힘들게 왔는데!"

"증거 남기자, 사진 한 장 찍고 가."


능글능글 웃으며 다가온 세 아이들과 조선시대 공주 복장을 한 나는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근데 , 진짜 안 어울려요. 알죠?"

킥킥대다 손을 흔들며 어딘가로 사라진 아이들.  웃으며 함께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장난스런 눈빛 사이사이에 내 얼굴의 그늘을 살피는 눈길을 느꼈다. 세 아이들 모두 부모와 이별한 경험이 있었다. 내가 없는 동안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던 아이들. 하지만 딱 오늘, 오늘부터 다시 학교에 가기로 결심한 아이들.

 

그 날 이후로 삼인방은 학교에 왔다. 하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어떻게든 최소 출석일수를 채워 3학년으로 올려 보내는 게 그 해 나의 목표였지만, 두 아이는 자퇴했고 한 아이 겨우 진급했다.


아이들은 마지막 담임인 나를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이 들지 모르겠지만, 실은 내가 훨씬 더 미안하다. 잘 잡아주지 못해서, 힘든 마음 더 알아주지 못해서.


하지만 그 해 가을 소풍날 그 햇살처럼, 남아있는 우리 사진처럼, 따뜻한 그 마음이 너희에게 있으니까. 학교와 잘 맞지 않았을 뿐, 너희 있는 그대로 그렇게 괜찮은 사람이니까. 잘 살고 있겠지.  때, 정말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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