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번의 이사와 5번째 집
맨 처음 어떻게 연락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인터넷에서 용달이사 혹은 이삿짐 용달 등을 검색하며 연락을 드렸던 것 같다. 2005년 자취를 시작하면서 이사를 수없이 다녔는데, 가장 최근의 4번의 이사를 같은 용달 사장님과 하게 되었다. 어림잡아 2년에 한 번씩 다니던 이사를 4번이나 같이 했으니, 꽤 오래된 인연이 되었다. 게다가 이사가 보통 큰 일인가. 그 큰 일을 주기적으로 함께 치러 주셨다는 감사함도 있고, 더군다나 사장님은 대전 출신인 나에게 더 정겹게 들리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를 쓰시는 우리 아빠뻘의 연배셨다.
내가 용달 사장님께 특별한 마음을 갖는 이유는 4번의 이사가 모두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맨 처음 이사는 부평에서 동대문구 이문동 까지였다. 회사에서 발령을 받아 근무하게 된 인천에서는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월세와 보증금 일부를 지원해 주어, 가장 호사(?)스러운 오피스텔에서 지낼 수 있었다. 처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던 집이었고, 세탁기도 빌트인으로 깔끔하게 들어가 있었다. 그곳에서 근무를 마치고 서울 본사로 발령을 받으면서 다시 원래 살던 동대문구 동네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아주 낡고 오래된 동네여서(지금은 재개발로 그 일대가 싹 밀렸다) 1톤 용달트럭이 집 앞까지도 갈 수 없는 좁고 가파른 골목에 있는 2층 다세대 주택이었다. 트럭을 가파른 골목 초입까지 아슬아슬하게 대 놓고, 짐을 내려 들고 날랐다. 그 어려운 곳에 짐을 들이고, 또 거기서 나오는 이사를 바로 이 용달 사장님이 함께 해 주셨다. 사실 그 집에서 나올 때는 다시 사장님께 연락을 드리기가 죄송스러웠다. 얼마나 고된 방법으로 짐을 날라야 하는지 알고 계시기 때문에 나 같으면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집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장님은 허허 웃으시며 그 집 기억난다며 기꺼이 이사를 함께 해 주셨다.
이문동에서 나와서 간 곳도 망원동 좁은 골목에 있는 2층집, 여전히 엘리베이터는 없고 짐을 허리에 그대로 이고 계단을 올라야 하는 힘이 드는 이사였다. 3번째 이삿날은 (벌써 4번째 집) 비가 왔다. 하필이면 태풍 경보가 뜨는 날 이사를 하게 되어, 아주 조금이라도 일찍 이사를 시작하고 빨리 끝내려고 새벽같이 짐을 싸러 집으로 와 주셨다. 결국 중화동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을 때 비가 뿌리기 시작했고, 우중 이사를 무사히 마치고는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에 원래 가격보다 조금 더 돈을 얹어 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드디어 엘리베이터로 내리고, 엘리베이터로 올린 집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집이다. 대신 이번에는 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이나 내려와야 하는 경기 남부 끝단, 오산까지 짐을 실어다 주셨다. 같이 이사를 해 주신 친구 사장님과 남편과 넷이 짐을 넣어 놓고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같이 먹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나이 지긋하신 두 사장님이 부엌 잔 살림까지 모두 깔끔하게 정리해 주셔서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에 복직하며 회사와 가까운 군포로 이사를 앞두고 이사를 준비해야 하는데, 이제껏 내 이사를 책임져 주신 사장님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 혼자 사는 자취녀의 짐 수준이 아니라 아예 가정집 이사가 되어 버려서 이걸 어쩌나 하고 있었는데, 남편도 아쉬운지 용달이사를 할 수는 없지만, 아시는 업체나 함께 하시는 이사크루(?) 분들은 없는지 알아보자고 했다. 나는 우선 문자로 새해인사와 함께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짐이 많이 늘어서 용달로는 어려울 것 같다, 혹시 사장님이 아시는 업체나 함께 일하시는 분들이 계시느냐고 연락을 드렸다.
조금 지나니, 전화벨이 울리고 한번 들으면 여간해서 잊기 어려운 음성과 억양으로 사장님이 반갑게 인사해 주신다. 짐이 얼마나 늘었는지, 어떤 큰 짐들이 있는지 대강 들어보시더니 이번 이사는 본인이 하시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고, 큰 짐이 많아서 집 근처 이삿짐센터를 알아보고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고는 연락해 주어서 고맙다, 이렇게 목소리 듣는 기회가 되어 좋다고 이야기해 주시니 순간 마음이 왠지 먹먹해진다. 아마 이제부터는 또 이사를 하더라도 내 자취시절 크고 궂은 이사를 함께 해 주신 사장님과는 다시 만날 기회가 없다는 생각과 이제 나이가 있으셔서 크고 무거운 짐 옮기는 일은 그만하셔야 하는데 라는 오지랖이 같이 떠올랐던 것 같다.
서울에서 혼자 이사할 때면 항상 와 주셨던 엄마와도 종종 용달 사장님 이야기를 한다. 참 좋으신 분이었다고. 낡은 다세대 주택에서 신축빌라로, 그리고 아파트로 이사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면서 혼자 나름 뿌듯한 마음도 있었는데...ㅎㅎㅎ 아쉬운 마음으로 사장님과의 인연은 추억 한켠으로 보내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