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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겨울의 향기는 나무 태우는 냄새

by 고랑이

정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온 게 몸으로 느껴진다. 온도도 온도지만, 가을이 오면 주변 냄새가 달라진다. 낙엽도 아직 지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을만의 냄새가 성큼 다가왔다. 바람 끝에 묻어나는 투명한 향기. 그 냄새가 지속되다 보면 금세 겨울이 된다. 사실 나는 겨울을 제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그 공기의 향이 너무 매력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눈을 냄새로 만들면 그런 느낌일까.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청량한 박하향 같은 시원함이 온몸을 가득 채운다.


캐나다에 간다고 하니 다들 겨울을 걱정해 줬다. 12개월 중 6개월이라는 겨울, 항상 눈이 쌓여있고 자칫하면 동상을 입고 염화칼슘 때문에 차가 망가진다는 그곳. 그래서 그곳에서도 가을의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나는 겨울을 걱정했다. 하지만 다녀온 지금은 나에게 캐나다의 가을과 겨울을 생각하면 눈도 장갑도 염화칼슘도 아닌 매력적으로 차가운 공기 속에 흐르는 나무 타는 냄새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내가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나무를 태워본 것은 8월 말이었다. 8월 중순이 넘어가면 캐나다는 가을에 돌입한다. 캠프도 끝났고 물놀이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된다. 9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잠시 몸과 마음을 추스를 때이다. 그 무렵 캐나다인 멜로디와 일본인 마나미가 스코츠 베이라는 바닷가에 놀러 가자고 했다.

"추워서 물놀이는 어렵지 않아?"

"아, 물놀이하러 가는 곳 아니야. 캠프 파이어 할 거야."

"오, 나 캠프 파이어 처음해봐. 뭐 가져가야 해?"

"내가 성냥 챙겨갈 테니까 그냥 와. 장작은 가서 주으면 돼."


장작이 있어? 해변에?


스코츠 베이는 조수간만의 차가 꽤나 심한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둥글둥글한 자갈과 해변을 타고 흘러온 나무인 유목이 많은 곳이었다. 멜로디와 마나미의 친구들까지 모인 그날의 모임에서는 각자 조금씩 주변에서의 유목을 주워오자고 해서 나무를 주웠다. 사람이 많아서인지 그 양은 생각보다 상당했다. 어떤 책에서 모닥불 장작 쌓는 걸 배웠다는 지노가 나무를 산 모양으로 배치했고, 사람들은 지노에게 "Fire master" (불 마스터)라며 추켜올려줬다. 주변 바다를 타고 온 유목들은 이미 잘 말랐는지 불을 붙이자마자 바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소금기를 머금은 나무는 종종 파란색으로 타올랐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나누지 않기도 했다. 대화를 나누지 않을 때면 모닥불을 바라보며 각자 생각에 잠겼다. 심지어 말을 멈추지 않는 걸로 유명하던 지노도 모닥불을 피울 때면 조용해졌다. 종종 마시멜로우를 구워 먹기도 하고 나무가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누군가 일어나 나무를 더 주워오곤 했지만 그 외엔 우리는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시간을 함께 보냈다. 그렇게 캐나다 가을을 맞이해 나갔다.


그 이후 우리는 불 피우는 것에 몹시 열정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특히 엄마가 그랬다. 엄마는 주말에 하고 싶은 걸 물으면 "해변에 가서 불 피우자."라고 말했다. 친구네랑 같이 가기도 하고 우리끼리만 가기도 했다. 우리는 종종 피자며 소시지며 다양한 음식도 준비해 가서 불을 피웠다. 마시멜로우는 아이들이 갈 경우 필수품목이었다. 유목이 부족한 날도 있었기 때문에 장작을 한 번씩 사가는 날도 있었지만 주워오는 것만으로 충분한 나날이 많았다. 인터넷도 잘 안 터지는 곳이라서 핸드폰으로 할 게 없었는데 그래서 할게 더 많았다. 사는 이야기, 나무 줍기, 동그란 돌 모으기, 무엇을 어떤 각도로 구워야 맛있는지, 연기가 오는 방향이 변하는 이야기, 지노는 같이 간 아이들과 떠들다가 웃다가 달리다가 나무를 주워왔다. 아이의 미소와 웃음소리가 바람에 나무 태우는 향과 함께 퍼졌다.


나무를 태우면 특유의 향이 남는다. 숯불고기 집에 가서 고기향을 묻혀 온 적밖에 없는 우리에겐 신선한 경험이었다. 우리는 탄 냄새가 심할 때는 하루 정도밖에 잠바를 걸어두었다. 그럼 그 냄새는 싹 사라지고 없었다. 사실 그런 냄새가 조금 남아있겠지만 큰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다들 이미 집에서 나무를 떼고 생활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살던 곳 캐나다 시골집들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집이 우리나라처럼 보일러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곳의 많은 집들이 아직도 거실이나 주방 화목난로에서 나무를 뗀다. 놀라울지 모르겠지만 그게 제일 저렴하므로 별 수 없는 거 같다. 캐나다집들을 보면 장작이 벽 바깥쪽이나 헛간 안쪽에 가득 쌓여있는 집들이 많았다. 1년 전에 집을 지었다는 폴란드에서 이민온 친구는 그 해에 난로를 설치했는데, 트럭 한가득 나무를 시키면 30만 원 정도 하는데, 그 나무로 2개월이나 거실을 따뜻하게 할 수 있음에 대해서 극찬을 했다. 난로 위에 올려진 주전자에서 흘러나오는 차 향이 집을 가득 채웠다. 우리는 창으로 언 듯 보이는 불길을 바라보며 차를 마셨다. 물론 화목난로만으로 생활하지 않고 히팅펌프라고 해서 뜨거운 공기가 나오는 기계도 쓰는데, 전기세가 어마어마하게 들어간다고 했다.


각 집마다 불을 때는 곳이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겨울 철 아침에 학교를 위해 걸어가면 동네는 은은하게 불이 붙은 나무의 향이 난다. 폐 속까지 차가워지는 것 같은 청량하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무 타는 향이 난다. 집들의 굴뚝에서는 희미한 회색연기가 올라간다. 만약 한국에서 그랬으면 자욱한 연기가 가득했을 거 같은 이미지지만 겨울철엔 바람이 강하고 집이 띄엄띄엄 있다 보니 연기보다는 나무나 타는 향만 느껴진다. 다들 아침에 추워서 불을 때고 있구나. 아침마다 보던 그 광경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물들여주었다.



나는 아직도 캐나다의 겨울 하면 나는 이 나무가 타는 향과 그 연기가 떠오른다. 이제 다시 겨울이 되면 캐나다 주택에 살던 프랑스 친구 집에선 지난번에 탄 나무의 재를 긁어내고 그 재를 따로 버린 다음 나무를 넣고 종이를 몇 장 넣어 불을 붙일 것이다. 방안 공기는 천천히 달아오르면서 은은한 나무가 타는 향이 나고, 밖으로는 희미한 회색연기가 나겠지.

"이게 낭만적으로 보여도 힘들어. 진짜 힘들어. 난방비 줄이려고 이거 하는 거야."

투덜거리던 친구의 목소리가 문득 들려온다.


그 불길이 오늘따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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