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수아이 Sep 01. 2021

셋째 날, 이스탄불이 꾸는 꿈

이스탄불

3일 차 되는 아침에 나는 이 여행의 목표에 대해 생각했다.


이 여행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있었다. 별다른 계획 없이 이리저리 누비고 다니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는 것. 그러나 그건 목표라고 하기엔 좀 막연한 감이 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뭔가 이 여행에서 이것 하나만큼은 해야겠다는 것이 내겐 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던 나는 꽤나 선명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다는 걸 기억했다. 그래, 나는 '아다나에 가서 아다나 케밥'을 먹고 싶었어. 한국으로 치자면 평양에 가서 평양냉면을 먹어보고 싶다, 정도의 소망이라 할 수 있었다.


터키에서도 음식이 맛있기로 유명한 도시 '아다나'에서 유래한 '아다나 케밥'은 다진 고기(양과 소)와 작게 썬 채소, 매운 양념을 반죽으로 만들어 꼬치에 뭉쳐서 구운, 작은 핫바처럼 생긴 평범한 모습의 케밥이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동안 터키인 현지 인부들에게 은근슬쩍 터키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냐, 라고 물어보곤 했었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히 '케밥!'. 그러면 케밥 중에서 가장 맛있는 케밥은 뭐냐, 라는 질문에 고민하던 그들은 신기하게도 같은 대답들을 했다. '아다나 케밥.'


단순한 논리였지만 나는 '아다나 케밥'을 터키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생각해버리기로 했다. 아다나에서 먹는 게 아니면 맛이 없다는 그들의 말에, 언젠가 공사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아다나로 훌쩍 떠나 아다나 케밥을 맛봐야지, 라는 소망을 가졌었다. 그리고 이제 6개월의 계약기간이 끝났고, 나는 자유의 몸이 되어 언제든지 그 소망을 이루러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지금 당장 아다나로 날아갈 필요는 없었다. 여행은 이제 막 시작되었고, 최소한 10일이 넘는 시간이 내겐 있었다. 지금은 이스탄불을 좀 더 즐겨도 좋겠지.

숙소를 나와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향한 곳은 갈라타 다리 근처의 어시장이었다. 이곳에는 내가 7년 전 터키를 처음 여행할 때 가장 인상 깊게 먹었던 음식이 있었다. 발륵 에크멕(생선 빵)이라고 불리는 고등어 케밥이 그것이었는데, 한국인들에게는 콧수염 난 에밀(사실은 Emin이지만) 아저씨로 유명한 에민 아저씨가 오랫동안 시장 한구석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다. 생선과 빵이라는 상상할 수 없는 조함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막상 먹어보고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 바삭하고 쫄깃한 빵과 가시 하나 없이 잘 발라 노릇하게 구운 고등어 필렛, 그리고 비린내라는 걸 느낄 틈을 주지 않는 신선한 야채와 레몬, 향신료, 소스. 평생에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은 음식 중 하나였다. 이렇게 빨리 터키로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는 건 몰랐지만.


그러나 인터넷을 뒤져가며 찾아낸 이름의 가게에서는 에민 아저씨의 콧수염 끝자락도 보이지 않았다. 장사를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사람조차 없이 열어둔 남루한 부엌 앞에 망연자실하게 선 나는 부엌 안쪽으로 성큼 들어가 소리쳐 사람을 불러보았다. 잠시 후 안쪽에서 미적거리며 나온 남자에게 혹시 발륵 에크멕을 먹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조금만 기다리면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무척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콧수염 아저씨는 은퇴하신 거고, 이 남자는 그의 제자일지도 몰라. 그래도 이렇게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게 어디야. 그런 나의 기대는 곧 내 식탁 위에 올려진 고등어 케밥을 보고 무참히 무너졌다. 별다른 소스도 없이 쪼끄만 고등어가 생색만 낸 야채와 함께 두터운 빵에 파묻혀 있을 뿐인 이 빈약한 것이 내 추억 속의 고등어 케밥일 리가 없었다. 아마도 가게를 잘못 찾은 것이라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빵과 생선을 씹었다. 아까운 허기를 이런 것으로 채워버리게 되다니. 아침부터 뭔가 꼬이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으로 속을 썩인 건 이스탄불의 교통카드 '카르트'였다. 슬슬 이런저런 교통수단들을 이용해야겠기에 카르트를 하나 마련하려고 마음을 먹고 무인 충전소를 찾았다. 대충 혼자서 읽어보고 카드를 하나 발급받으려 했는데 옆에서 서성거리던 남자 하나가 슬금슬금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사실 뻔한 레퍼토리였다. 교통카드 충전기 앞에서 씨름하는 관광객들에게 다가와 친절한 척 도와주고는 돈을 요구하는 클리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눈앞의 남자를 보자 공사장에서 함께 일했던 터키인 친구들이 문득 생각났다. 그래, 최소한 이 사람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 수는 있지 않을까. 그는 자신은 아무런 대가도 필요가 없고 그저 외국인 친구를 도와주고 싶다는 걸 강조했다. 그러더니 내가 발급받은 카드를 대신 기계에 집어넣고는 충전하는 법을 알려준다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버튼을 몇 개 누르며 화면을 넘기다 코로나 때문에 교통카드를 이용하려면 인터넷에서 해시 코드를 등록해야 한다며 자신의 해시 코드 넘버를 내 카드에 적용하려는 찰나, 나는 그쯤에서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그에게 단호하게 필요 없다고 말했다. 노노노, 노 프로블럼이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키려는 그에게, 그가 포기할 때까지 '필요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자 드디어, 그 남자는 들고 있던 쇼핑백에 숨겨두었던 향수 상자들을 꺼내며 본색을 드러냈다.


이것은 좋은 향수다. 내겐 아내와 아이가 있다. 당신이 이것을 사줘야 그들을 먹여 살릴 수 있다.


어쩜 그렇게 뻔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지. 나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는 이번엔 화를 내며 자신이 아무런 대가 없이 시간을 내서 그런 서비스를 해줬겠냐고(실제로 내가 받은 도움은 없지만)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필요 없다'는 터키어밖에 보르는 사람처럼, 필요 없다고 했다. 결국 그는 내게 기분 나쁜 말을 뭔가 거칠게 뱉고는,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사라졌다.


비록 그 남자는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고 나는 끈질긴(왜 내가 끈질겨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거절로 무사히 그를 보내는 데 성공했지만, 아침부터 그런 일을 겪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왜 나는 내가 전혀 원하지 않았던 일로 이렇게 기분이 상해야 하는가.


그럴 때면 나는 70%의 법칙을 생각했다. 나의 자유로움은 70%까지만. 내 삶을 침범하는 30%의 부당한 불쾌함(물론 이 수치에 별 근거는 없다)을 막을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것은 내가 햇빛 아래 살아가며 물리적으로 생겨야 하는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100%의 자유로운 나'란 '그림자가 존재하지 않는 사람' 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마음은 조금 편해졌다.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불쾌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은 아닐 거다. 하지만 동시에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이스탄불의 모습 또한 전혀 상상이 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음에 발생했다. 그 남자가 떠난 뒤 혼자 힘으로 카르트(카드)에 돈을 충전한 나는, 교통카드가 생긴 김에 이스탄불의 아시아 지구로 넘어가기 위해 카라쿄이 선착장에서 배를 타려고 했다. 마침 배 시간도 딱 맞아떨어져 기분 좋게 배를 타려고 카드를 찍고 들어가려는 순간, 강렬한 경고음이 뜨며 게이트가 열리지 않고 나를 막아섰다. 화면에는 빨간색 경고와 함께 알 수 없는 터키어가 적혀 있었다. 나는 두세 번 더 시도를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내가 카드를 들고 게이트와 씨름하고 있으려니 선착장의 경비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상황을 보더니 게이트 너머에서 몸을 내밀며 내게 말했다.


이 카드를 사용하려면 인터넷에서 해시 코드를 등록하여 적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벽에 붙어 있는 관련 안내문 포스터를 손으로 가리켰다. 배가 출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2분 남짓.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그러나 겉으로는 평온한 행동으로 포스터에 적힌 사이트에 들어갔다. 터키 역시 코로나 확진자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서인지 특정한 장소에 출입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에 해시 코드를 발급하여 체크하도록 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내겐 공사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멧과 함께 백화점에 놀러 갔을 때, 그의 도움으로 발급받았던 해시 코드가 있었다. 나는 이 해시 코드를 내 이스탄불 교통카드에 등록하기 위해 나름대로 빈칸을 모두 메우고 등록 버튼을 눌렀지만, 어째서인지 유효하지 않다면서(이런 유의 등록이 항상 그렇듯이) 더 진행이 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딱 맞춰 왔던 행운의 배는 떠나버리고, 나는 빈 선착장에서 분노와 허망함이 뒤섞인 마음으로 우두커니 서있다가, 포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물에 가까운 벤치에 앉아 발밑으로 찰랑거리는 바닷물을 보면서, 오늘따라 뭔가 일이 단단히 꼬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배 하나 타지 못하다니. 그냥 그대로 숙소로 들어가 잠이나 자버릴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조금 더 부딪쳐 보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선착장 내의 경비에게 가서 등록 과정을 다 거쳤는데도 제대로 등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잠깐 고민하는 표정을 짓더니, 기계에 한번 카드를 찍어 보라고 했다. 삐익. 아까와 마찬가지로 빨간 불과 함께 경고문이 떴다. 내가 바라보자 그는 이번에는 다른 기계에 한번 갖다 대보라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다른 기계에 카드를 댔는데... 띠링, 하는 소리와 초록 불빛과 함께 문이 열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경비에게 엄지를 척 지켜들고는 선착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대체 뭘까.


인터넷으로 한 카드 등록이 진행이 되진 않았지만 확인 버튼을 누르는 순간 등록 자체는 된 것일까. 아니면 누구나 통과를 시켜버리는 특정한 기계가 있는 것일까. 어이가 없긴 했지만, 어쨌든 나는 통과를 했다. 아무렴 어때. 더 깊게 고민하지 않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뭐 이렇게 될 때까지 카드를 찍어보면 되겠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음 배가 왔고, 바닷바람을 맞으며 이스탄불의 아시아 지구로 건너가는 동안 내 마음은 서서히 풀렸다. 천천히 이동하는 배에 올라 바람을 맞으며 갈매기들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한창 일하던 때의 휴일들이 생각났다. 배를 타고 랍세키와 겔리볼루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생각하길, 오늘 하루만큼은 유럽 여행을 하는 게 아닌가, 스스로 즐거웠던 시절들.


불과 한두 달 전의 일인데도, 벌써 그날들은 '시절'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한걸음 멀리 비켜나 있었다. 나는 맡은 지 6개월이 넘어가 이제는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터키의 바다 공기를 힘껏 들이켰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이 일상적인 냄새가, 먼 훗날 기억의 앨범을 펼칠 때, 한없이 아련하고 그리워지겠지. 그때는 아무리 맡고 만지고 싶어도 결코 닿을 수 없는 추억 속의 한 페이지일 '지금'. 그래, 나는 지금 앨범 속의 한 페이지를 지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도착한 아시아 지구의 첫인상 두 가지.


첫 번째. 아시아 지구는 전혀 '아시아' 같지 않았다.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자리 잡은 터키. 유럽 지구와 아시아 지구를 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만 건너면 곧바로 뭔가 중동스러운 느낌의 시가지가 펼쳐질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기대했던 걸까. 유럽 지구와 눈에 띄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이곳은 주거 지역의 느낌이 강하다는 것. 낮은 아파트와 정원을 가진 집들, 여유로운 열대 분위기의 나무와 공원. 지금은 출근한 사람들이 퇴근을 하고 배를 타고 밤바다를 건너 잠들기 위해 돌아오는 곳. 그런 느낌이었다.


두 번째. 그나마 몇몇 상점들이 문을 연 관광 지구인 유럽 쪽과는 달리, 이곳은 그야말로 거의 모든 상점이 셔터를 내리고 닫은 상태였다. 점심으로 먹으려던 유명한 이스켄데르 케밥(토마토 소스를 뿌린 케밥)집도 마찬가지. 유리 너머로 불 꺼진 실내를 들여다봤더니 배달용 오토바이가 아예 가게 안에 떡 하니 들어가 있었다. 코로나와 라마단, 두 가지 악재를 만나 아예 장사를 당분간 접은 모양이었다.


볼 것도, 먹을 것도 없어진 아시아 지구를 조금 허탈한 마음으로 걸어 다녔다. 사람이 사라진 거리를 메운 것은 나무 사이사이에서 들리는 새소리. 나는 혹시나 어젯밤에 보았던 그 골목과 같이 영감을 주는 장소를 찾을 수 있나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곳은 없었다. 어쩌면 그냥 배가 고파서 그런 건지도. 나는 일단 식사를 해결해야 할 것 같아서, 핸드폰으로 근처 식당을 검색했다. 우연히 마주치는 식당에 들어가는 것도 좋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행운을 바라는 건 무리였다.

그렇게 찾은 곳은 아다나 케밥이 맛있다는 고급진 레스토랑이었다. 다행히 2층에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넓은 가게에 손님은 오직 나뿐이었다. 부드러운 카펫이 깔리고 하얀 냅킨과 식탁보가 즐비한 2층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런 풍경이 내 여행 내내 계속되리라는 걸 알았다. 웨이터가 내려가자 2층엔 나 외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다. 마치 환갑잔치 세 시간 전에 파티장에 혼자 도착해버린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음식이 올 때까지 정말 음식이 올까 의심을 했다. 이렇게 큰 레스토랑이 나 하나만을 위해 움직일 수 있을까.


내 쓸데없는 걱정을 안심시키듯, 나를 위한 아다나 케밥은 오래 걸리지 않아 따끈따끈한 상태로 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나는 코로나와 라마단이라는 이중고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내 앞에 도착한 이 식사에 작은 감사함을 느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래도 먹고 다닐 수는 있구나, 하고.


아다나 케밥은 사실 내가 그리 좋아하는 메뉴는 아니었다. 그냥 편의점 핫바처럼 생긴 작고 볼품없는 이 케밥은 다른 케밥들과 달리 화려하지도, 특별히 맛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터키 친구들이 하나같이 최고라고 치켜세우자 이 케밥은 내게도 조금씩 특별해지고 있었다. 아다나에서 아다나 케밥을 먹을 그날을 상상하며, 나는 휴일에 들르는 가게마다 한 번씩 아다나 케밥을 주문해 연습(?)삼아 먹어보곤 했다. 그러면서 점점 눈을 뜨게 되었는데, 아다나 케밥에는 겉보기와는 다른 것이 있었다. 다른 케밥들과는 달리, 구수하고 진한 풍미가 단단히 뭉쳐져 있다는 것. 강한 감칠맛에 이게 무슨 고기냐고 물어보면 그때마다 대답이 달랐다. 어떨 때는 양고기, 어떨 때는 소고기, 어떨 땐 그 둘을 반반 섞는다고. 물론 그 때문인지 거북한 느낌이 드는 누린내가 날 경우도 있긴 했지만.


그렇게 나는 아다나 케밥에 점점 익숙해져갔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놓인 이 이스탄불의 아다나 케밥은 뭔가 달랐다. 그간 봤던 것보다 훨씬 큼직하고, 딱 봐도 부드럽고 기름지게 구워졌다는 느낌의 붉은색 아다나 케밥이 얇고 납작한 라바쉬 빵을 이불처럼 덮고 있었다. 빵과 야채와 함께 먹기 전, 나는 아다나 케밥의 끝부분을 포크로 뚝 잘라 입에 넣어보았다. 역시 생긴 것에서 벌써 느낌이 오듯이 그간 먹어왔던 아다나 케밥과는 한층 차원이 달랐다. 역시 이스탄불이란 것을 실감했다. 물론 가격도 이스탄불답게 한층 차원이 달랐지만.


구운 고추와 구운 토마토는 케밥에 있어 빠질 수 없는 필수 요소다. 겉이 살짝 탈 정도로 노릇하게 구운 고추는 씹으면 불맛과 감칠맛을 잔뜩 머금은 즙이 혀 위로 쏟아졌다. 맵지 않고 즙이 많아서 고추라기보다 구운 파프리카에 더 가까운 맛. 이걸 터키인들은 한국인의 김치처럼 식사에 곁들여서 먹었다. 보통은 칼로 썰어 먹어야 할 정도로 커다란 고추를 구워주지만,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절제미가 돋보인 크기라 조금 아쉬울 뿐.

식사를 마치고 유럽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카드쿄이 항구를 향했다. 아시아 지구에서만 두 시간이 넘을 정도로 꽤 오랜 시간을 이리저리 걸어 다니느라 슬슬 발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징표였다. 대학교 2학년 시절, 생전 처음 갔던 이탈리아 여행에서 물집이 잘 잡히는 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날이면 날마다 점점 크게 부풀어 오르는 물집 주머니가 마침내 또 하나의 발가락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느껴졌을 때, 나는 그 물집을 바늘로 일부러 터뜨렸었다. 개운함도 잠시, 이후에 이어진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쓰라린 살갗의 통증과, 여행 중 계속 흘러나오는 진물,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자라나는 물집 주머니였다. 실을 잘라 물집 주머니에 꿰어 놓고 진물을 계속 빼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온갖 요법들을 다 써가며 얻어낸 교훈은 하나, 물집은 그냥 두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


나는 이번에도 기어코 찾아온 반갑지 않은 손님인 발가락 물집을 그냥 두기로 했다. 이 녀석은 점점 위협적으로 커지다가도, 일정 수준이 되면 통증이 사라지고 굳은살로 변할 것이다. 그럼 안심하고 그 상태로 걸어 다니면 된다.


코로나와 라마단이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을 문 닫힌 거리를 걸으며 생각했다. 만약에 그렇게 가게마다 문을 닫지 않았다면, 아마도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을 것들을.

나는 이스탄불을 하나의 커다란 갤러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갤러리가 조금 크고 길어서, 끝까지 다 관람하려면 교통카드와 씨름을 하거나 발에 물집이 잡히거나 해야 한다고. 이번 전시의 제목은.. <이스탄불의 꿈> 정도 되려나.


어쩌면 나는 잠들어버린 이스탄불이 꾸고 있는 '꿈'을 목도하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유사 이래로 눈을 감은 적이 없었던, 너무나 바빴던 도시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폴리스, 혹은 이스탄불. 그 역사 깊은 도시가 잠시 눈꺼풀 같은 셔터를 내리고 꾸고 있는 그 꿈들은 너무나 형형색색하고 다양한 욕망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래피티들은 정말로 꿈처럼, 무질서했지만,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각자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관람'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다시 갈라타 항구 근처의 어시장을 찾았다. 아침에 미처 찾지 못했던 에민 아저씨의 고등어 케밥을 한번 더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문을 연 해산물 식당들 근처를 기웃기웃하고 있으려니, 한 남자가 나를 손짓하며 불렀다.


"에민 레스토랑. 슈퍼 마리오 레스토랑. 히얼."


슈퍼 마리오라면 콧수염 난 에민 아저씨를 말하는 걸까. 속아주는 척 그를 따라갔더니 그곳에 있는 것은 굉장히 사기꾼 같은 모습의 2인조(한 명은 선글라스를)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그들은 한창 석쇠에 고등어를 구우면서 동양인인 나를 발견하자 에민 레스토랑이 이곳이라며 자신 있게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것은 에민 아저씨인지 아닌지 알기도 힘든, 콧수염 달린 누군가의 실사 얼굴 사진이 기묘하게 박혀 있는 커다란 홍보용 풍선이었다. 의심의 눈초리로 그 풍선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들은 내게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거기엔 틀림없는 에민 아저씨가 눈앞의 두 남자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었다. 그럼 이 두 사람은 에민 아저씨의 제자일까. 나는 그들에게 에민 아저씨는 지금 어디에 있냐고 물었고, 그들은 시익 웃으며 홀리데이, 홀리데이라고 답했다. 하필이면 내가 온 날이 그가 쉬는 날이라고? 그 말을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곳이 내가 찾던 그 에민 아저씨의 가게고, 이 남자들이 그의 제자인 것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리하여 주문해서 마침내 7년 만에 마주하게 된 내 최고의 터키 음식이었던 에민 아저씨의 고등어 케밥은.. 뭔가 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바게트 같은 에크맥 빵에 온갖 야채와 향신료와 소스를 뿌려 나오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가고, 내가 받은 것은 겉에 무슨 동양적인 빨간 소스를 발라 구운 뒤림(얇은 빵으로 동그랗게 말아 내용물을 감싼) 고등어 케밥이었다.


충격을 받은 멍하니 그 케밥을 들고 바닷물 근처의 벤치로 가서 앉았다. 그토록 그리던 친구를 만났는데,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나는 서글픈 마음으로 바닷바람을 맞으며 뒤림 케밥을 뜯어 먹었다. 닭갈비 소스를 살짝 태운 듯한 맛도 나름 나쁘지 않기는 했지만, 분명 이것을 원한 건 아니었다. 동양인들이 하도 많이 찾으니 아예 동양인 입맛의 소스로 바꿔버린 걸까. 왜 그랬을까. 터키에 다시 온다면 꼭 다시 먹어보고 싶은 단 하나의 음식이 있었다. 이제 그것은 아마 꿈에서나 먹을 수 있겠지.

누군가 잠든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은 꽤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풍경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있다. 나는 텅빈 거리를 걸어 숙소로 돌아오면서 슬슬 이스탄불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7년 전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환율 덕분에 6개월간 한국 돈을 열심히 벌었던 나는 터키 여행을 하며 나름 풍족한 생활을 마음껏 할 수 있었지만, 이래서는 도무지 돈을 쓸 곳이 없었다. 도시의 풍경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사람들이 멈추고 잠들어 있다면, 도시는 볼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로 갈까. 나는 숙소로 돌아가 그것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눈화장을 예쁘게 한 고양이를 만났다. 터키의 길고양이들은 처음 보는 사람을 마치 다시 찾은 주인처럼 좋아하며 따른다. 조금 쓰다듬어주면 내 쪽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정도로 필사적으로 머리를 손바닥에 힘껏 들이미는데, 그때 내 손에 느껴지는 고양이의 생각보다 작은 두개골의 감각이 무척 좋다.


혼자 하는 여행의 좋은 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일정과 선택의 자유로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 가서,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면 된다. 내가 선택해 들어간 레스토랑에서 음식이 맛이 없어도 된다. 대충 먹고 나와서 다른 걸 또 먹으면 그만이다.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헤맨다면, 그냥 사실은 이것저것 골목길을 구경하고 싶었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 된다.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무언가가 그리워진다. 무척이나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주위를 둘러봐도 그걸 말할 사람이 없다는 것. 하루의 여행을 끝내고 숙소에 돌아갔을 때, 오늘의 여행이 어땠는지 말할 상대가 컴퓨터의 빈 메모장 밖에 없다는 것. 그런 것들이 내게 '반응'의 부재를 상기시킨다. 투명인간처럼 낯선 거리를 그저 걸어 다니기만 하는 나는 그저 풍경에 섞이지 못한, 도드라진 실루엣을 가진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나의 말소리, 나의 손길은 어디에도 닿지 않고, 나는 내가 정말 살아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관찰하고 서술할 뿐인 소설 속의 어떤 시점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나는 이 이야기에 정말로 관여하고 있는 것일까?


그럴 때 고양이가 다가온다. 녀석들은 나를 확실히 인식하고 있다. 녀석들이 내 손바닥에 들이미는 그 작지만 선명한 압력은 내가 확실한 몸뚱이를 가진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살을 가진 발로 걸어 다니고, 어디엔가 손을 뻗으면 무언가에 반드시 닿게 되는. 여기는 열매가 떨어지면 툭 하는 소리가 나는 세상.


고양이와 작별하며 문득 궁금했다. 저 고양이는 자기 눈이 예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고양이들 세계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무작위의 무늬에 불과할까.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려면 뭔가를 먹는 것만큼 빠른 방법이 없다. 드물게 연 가게들 중에서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비쥬얼의 음식을 파는 곳이 있었다. 레벤트 뵈렉이라는 곳이었는데 치즈가 듬뿍 들어간 네모난 뵈렉(내용물이 들어간 일종의 파이)을 주력으로 파는 것 같았다. 슬슬 마트도 문을 닫을 시간이라서 생수 두 통과 함께 뵈렉을 구입했다. 오늘의 저녁 식사는 이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낯선 곳을 오래 걷다 와서 그런가, 숙소로 올라가는 골목길이 무척이나 정겹고 반가웠다. 이스탄불 여행 삼일 차. 슬슬 숙소가 집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뵈렉은 딱 생긴 것만큼 맛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켜고 여러 블로그의 터키 여행기를 뒤져보며 다음 목적지로 갈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7년 전 여행에서 가본 적 없고, 가게 문이 다 닫혀도 여전히 볼만한 자연 풍경이 있을만한 곳. 트라브존? 율귭? 부르사? 수많은 선택지를 두고 결정장애가 왔다. 밤이 깊어지고도 결정이 나지 않는다. 오늘 오랫동안 걸어서 그런지 쏟아지는 잠에 고개가 자꾸 끄덕거렸다. 그래, 하루 더 쉬고 생각해 보자. 나는 이스탄불처럼 잠이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