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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수아이 Nov 06. 2022

열두째 날, 길 위에 떨어진 노란 것

안탈리아

7년 전,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함께 여행하면서 M과 나는 몹시 싸웠다.


카파도키아를 떠나기 전에 나름의 화해의 제스처를 서로 취하긴 했지만(아직 여행의 중반에 불과했으므로) 그건 그저 잠깐 상황이 중단된 것에 불과했다. 버스를 타고 말없이 창밖의 풍경을 보면서도, 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통증을 달랠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펄펄 끓는 물을 한 컵 그대로 삼켰는데 그것이 위장에서 몇 시간 동안 식지 않고 있는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그토록 선명하고 물리적인 고통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그러면서 어떤 긍정적인 생각과 다짐으로도 그것을 이 여행 기간 내에 지워낼 수 없을 거라고 여기며 낙담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버스가 우리의 다음 목적지였던 안탈리아에 도착했다. 나는 그때의 그 순간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무척이나 맑았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그것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뻗은 야자수 나무.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들과 매일이 축제날이라고 말하는 듯 바람에 힘차게 펄럭이는 깃발들.


닫혀 있던 유리창문을 열면 금방이라도 떠들썩한 축제 음악이 들려올 것 같은 그 풍경에, 나는 분명하게 손에 꼭 쥐고 있던 그 통증이 손바닥에 올린 사소한 눈송이처럼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저 머릿속에서 환상처럼 떠돌던 메아리에 불과했다는 것처럼.

안탈리아에 도착해 예약했던 숙소를 찾아 걸어가는 길 위에서, 나는 이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를 이곳으로 잡았던 이유가 내 몸이 무의식중에 '회복'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다나의 매캐한 쓸쓸함 때문이었든지, 아니면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있었던 공사장 일에서의 피로 때문이었든지 간에.


후덥지근했던 동쪽의 아다나에 비해, 여름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곳 안탈리아의 공기엔 서늘한 느낌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는 지나가버린 계절을 거슬러 올라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다시 봄의 세계로 서둘러 돌아온 것이다.

보도블록 위에 떨어져 터져 있는 샛노란 오렌지를 보았을 때, 나는 안탈리아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곳은 가로수로 오렌지 나무가 자라는 곳. 그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싱그러운 느낌이 들었다. 길바닥에 뒹구는 노란 것들. 나는 과즙이라고 할 만한 것이 내 안에 서서히 다시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안탈리아에 발을 들이자마자 나는 실감했다. 안탈리아는 여전히 회복의 도시였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아다나에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안탈리아의 숙소를 고르는데는 꽤나 정성을 들였다. 조건은 싸고 깔끔할 것. 싼 데다 깔끔하기까지 하면 그냥 좋기만 한 숙소가 아니냐 싶지만, 거기엔 보이지 않게 어떤 희생이 감수되고 있었다. 넓지는 않아도 될 것. 다행히 좁은 곳에서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는, 오히려 좁을수록 더 좋아하는 내 성격상 숙소의 넓이는 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좁으면 취향에 맞아 좋고, 넓으면 넒은 대로 좋고.


도착한 숙소는 사진에서 보았던 그대로 깔끔한 곳이었다. 짙은 색 나무로 곳곳이 몰딩 된 깨끗한 흰 벽으로 이루어진 부티크 호텔이었다. 내 방은 아마도 이곳에서 가장 좁은 것으로 생각되는, 1층의 작은방이었다. 무언가 건물적으로 필요한 공간에 의해 일부가 밀려난 듯 좁은 방이었지만 작은 박스에 몸을 밀어 넣는 고양이처럼 나는 그런 점이 좋았다. 침대를 위한 자리만이 빠듯하게 남은 방. 내겐 충분한 조건이었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방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화장실은 대리석 느낌이 나는 내부로 깨끗했고, 유난히 넓은 샤워 부스와 파전만큼 커다란 헤드의 샤워기가 마음에 들었다. 저곳에서 온수를 폭포수처럼 틀어놓고 몸을 씻으면 어떤 피로든 순식간에 날아갈 것 같았다. 망설일 것 없이 나는 바로 샤워를 했다. 몸이 익어버릴 정도로 뜨겁고 오래.


체온이 5도는 올라간 느낌으로 마른 시트가 깔린 침대에 벌렁 누웠다. 하늘하늘한 커튼 너머로 열어둔 문에서 바람과 함께 바깥소리가 넘어왔다. 1층이라 그런지 간간이 지나가던 사람들의 조용한 발자국 소리나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다나에서 창문 너머로 들려오던 자동차 경적소리와 고함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호기심이 들어 오히려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는 소리. 나는 이 숙소가 무척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좋은 징조였다.

숙소에서 잠시 쉬면서 밤새 야간버스를 타느라 생겼던 피로를 다스린 뒤에,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는 거리, 문을 닫은 상점. 안탈리아 역시 텅 비어있었다. 그러나 아다나와 비교하면 신선한 느낌이 있었다. 사람이 빈자리를 매캐한 공기가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다나였다면, 이곳은 싱그러운 나무와 맑은 공기가 공백을 채우고 있었다.


사람이 없는 공원에 졸졸거리며 물을 뿜어내고 있는 분수. 암벽 동굴처럼 인기척 없이 까맣게 비어 있는 창문의 건물들. 녹음으로 뒤섞인 도시의 보이지 않는 어디선가 끊이지 않고 소곤대는 새소리. 나는 오래전에 멸망했지만 여전히 동력이 작동하고 있는 유적을 돌아보는 심정으로 조용한 안탈리아의 거리를 산책했다.

안탈리아 관광의 명소라 언제나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아서, 사람이 나오지 않는 사진은 도저히 찍을 수가 없었던 하드리아누스의 문 역시 텅 비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혹시 안탈리아에 있는 관광객이 정말로 나 하나뿐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북적대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렸을까.

작은 공원 한구석에 멈춰 있는 개구리 동상들을 보면서, 나는 동화적인 생각을 했다. 어쩌면 안탈리아의 사람들이 모두 개구리 동상이 되어버린 시점에 내가 도착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동상이 되기 이전에 먼저 개구리가 되어버린 사람들의 표정은 그것이 전혀 비극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그저 즐거워 보였다. 아마도 천벌을 내렸던 신은 인간들이 개구리가 되었다는 것에 좌절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이례적으로 두 번째의 천벌을 내려버린 것일 테지.


그것이 그들의 즐거움을 결국엔 멈췄을까. 애초에 그 즐거움은 천벌을 받아야 할 만한 것이었을까. 나는 문득 코로나 시대에 별안간 생겨버린 풍습을 떠올렸다. 즐겁기 위해 모여있는 것이 죄악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그것을 죄악시 여기는 시선 속에는 즐거움 자체를 향한 증오가 어느 정도로 몰래 섞여 있을까.


미로같이 얽힌 시가지의 길을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걷다가 마침내 문을 연 식당을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없었고 가게 안도 카운터도 텅 비어 있어서, '영업을 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정말 '문을 열어 놓았다'는 인상의 가게였다. 실내에는 불은 꺼져 있었지만 사방에 뚫린 창문들로 들어오는 아침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다. 작은 뷔페처럼 간단한 식사 요리가 몇 가지 큰 그릇에 담겨 진열되어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헛기침을 하며 인기척을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엌 쪽에서 사람 두 명이 나왔다.


그곳은 어머니와 딸 두 사람이 운영하고 있는 가게인 것 같았다. 그들은 둘 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식사를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밝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하고 나를 가게의 뒤뜰로 안내했다.

뒤뜰은 아담한 공간에 밝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곳에는 테이블과 의자를 비롯해 파라솔과 해먹, 대형 축구 브로마이드 등의 모험적인 물건들로 가득했다. 덕분에 혼자 그 공간에 있는데도 어딘가 시끌벅적한 휴양지에 와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으로 느껴지는 그 시끌벅적함과는 달리 실제로 귀에는 짹짹거리는 아침 새소리만 들릴 정도로 고요한 분위기였다. 그 묘한 간극 속에서 나는 주문했던 음식들을 기다렸다. 라마단 덕분에 온 동네 가게의 신기하고 비밀스러운 뒤뜰들을 전부 구경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주문했던 음식은 렌틸 콩 수프와 고기가 든 스튜, 터키식 볶음밥인 필라흐였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터키식의 소박한 아침식사였다. 안탈리아에서 맞이한 신선한 첫 아침에는 이런 걸 먹고 싶었다.


깨끗한 흰 그릇에 넘친 자국도 없이 고요하게 담겨 있는 살구색 수프를 한 숟갈 떠먹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첫 숟가락 만으로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적당한 선에서 맛이 꽉 차있는 담백하고 고소한 수프였다. 따뜻하게 데워져 나온 스튜와 간을 잘 맞춘 필라흐도 좋았지만 곁들여져 나온 에크멕 빵이 이스탄불의 카이막집에서 먹었던 것 다음으로 칠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럽고 맛있었다.


나는 이 음식들을 햇빛 아래서(비록 파라솔이 식탁 바로 위를 가려주고는 있었지만) 새소리를 들으며 먹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싱그러운 세상에서 새로 태어나 첫 끼를 먹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손님에게 불편한 것이 없는지 기웃기웃 지켜보는 세심한 종업원이 없어서 더욱 좋았다. 고맙게도 그녀는 음식을 전달해 준 뒤에 가게 안의 깊은 곳 어딘가로 완전히 사라져주었다. 덕분에 이 기분 좋은 공간을 온전히 혼자서 누릴 수 있었다. 누구도 보지 않는 작은 뒤뜰에서, 어떤 일정에도 구애받지 않는 느긋하고 충실한 아침식사. 바로 이런 순간을 위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행복했던 식사를 마친 뒤에는 동네를 정처 없이 걸었다. 오늘은 아무런 일정 없이 온전히 몸을 회복하는 데 시간을 쓰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던 안탈리아는 좁고 예쁜 구시가지의 길을 파도치는 인파에 밀려 따라다니다 보면, 길가의 양옆으로 저마다의 앞뜰에서 음악을 틀고 파티를 하고 있는 호텔들이 도원향처럼 펼쳐져 있는 곳이었다. 비록 불쑥 그곳에 들어가 술을 주문하고 함께 파티를 즐길만한 성격은 되지 못했지만, 단지 그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축제 속에 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그리고 그 축제는 그날뿐만 아니라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영원히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안탈리아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이 사라진 자리를 채운 것은 오래된 건물과 어울린 온갖 식물들의 싱그러움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축제의 분위기는 이미 오래전에 끝나 있었고, 나는 그 흔적으로 가득한 유적 위를 걷고 있었다.

그렇게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이 사라진 이곳의 새로운 주민들은 고양이들이었다. 그들은 샛노란 열매가 달린 오렌지 나무 아래서 햇빛을 받으며 벌렁 누운 채로, 낯선 이방인의 모습을 그저 눈으로만 쫓았다.


그들은 사람에게 먼저 와서 안기는 그런 터키의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랐다. 자신들은 이미 이곳을 점령했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듯이, 그런 무관심한 눈으로 지나가는 나를 잠깐 쳐다볼 뿐이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고양이의 보은>을 떠올리며, 나는 그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한참 동네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어떤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한쪽 벽을 완전히 개방해서 내부를 훤하게 드러낸 가게였다. 어디서부터 실내고 어디서부터 야외 테라스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개방적인 가게였다.


나는 정말 충동적으로, 바로 저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충동을 실행하지 않아야 될 이유를 떠올려보았다. 물론 그런 것은 없었다. 배는 적당히 꺼져 있었고, 달리 알아 놓은 식당도 없었다. 무엇보다 그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온 충동은 절대로 지나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것들은 언제나 결과가 좋았다. 가창 처음 '소설'이란 걸 읽어 보겠다고 아무렇게나 집어 들었던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 감는 새>였던 것처럼, 도서관에서 아무런 정보도 근거도 없이 불쑥 뽑아 든 노랗고 두꺼운 책인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 만화>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설책이 되었던 것처럼.


나는 성큼성큼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터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을 겸하는 '카페'였다. 역시나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식당의 주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만이 홀 중앙의 테이블에서 느긋하게 신문을 읽고 있었다. 내가 식당 안으로 발을 들이자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고,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나는 그에게서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는 건장해 보이는 노인(어쩌면 중년일 수도 있었겠지만)이었다. 주름 없이 탄탄한 피부와 굵은 팔뚝은 서핑을 하다가 햇볕에 그은 것처럼 건강한 느낌으로 까무잡잡했고, 뒤로 넘겨 묶은 꽁지머리와 풍성하지만 낮은 잔디밭처럼 보기 좋게 다듬은 수염은 멋진 은백색이었다. 본인이 휴가를 즐기고 있다는 듯이 시원한 느낌이 드는 반팔 알로하셔츠와, 세련된 반바지를 입은 그는 몸 전체에서 어떤 야성미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데, 그가 코에 걸친 안경 하나가 그 모든 야성미를 억누르고 그를 어딘가 지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는, 대체로 헤밍웨이를 닮아 있었다. 그 유명한 작가와 다른 점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짙고 검은 눈썹과 쌍꺼풀이 진 크고 또렷하게 잘생긴 눈이, 그를 '선명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지 확실하게 인식되는 눈. 그는 사람이라기보다 '캐릭터' 같았고, 어디선가 그를 본 적이 있다는 착각이 들게 했다. 나는 이 사람을 알고 있었다. 본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에게 지금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가 그저 잠시 외출한 주인 대신 가게를 보고 있는 단골손님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있었다. 이 사람이 보던 신문을 내려두고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 가서 내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그는 식당의 주인이 맞았지만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의 고민이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 때문인지, 아니면 코로나나 라마단으로 인한 식당 영업 금지 방침인지, 그도 아니면 그저 음식을 할 기분이 아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터키어로 이리저리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눈치를 보이자 뭔가를 혼자서 포기하고는 금방 오케이, 라고 말하고 내 주문을 받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가 하나뿐인 손님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나는 입구와 가까운 테이블에 앉아 기다렸다. 그리고 어째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에게 이런 친근감이 드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는 한마디로 굉장히 '멋진' 사람이었다.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노년의 모습을 가진. 그러나 성격상으로나, 신체적(나는 그처럼 수염이 풍성하게 나지 않는다)으로나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종종 내가 플레이하는 게임 캐릭터를 만들 때 그런 모습으로 나의 아바타를 만들곤 했다. 백발의 꽁지머리와 덥수룩한 수염. 그제야 나는 그 친근감이 어디서 오는지 알게 되었다. 언제나 나 대신, 다른 세계를 탐험하던 그 캐릭터. 터키의 해양 휴양지의 카페에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그는 나의 아바타였던 것이다.

주방으로 들어갔던 그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내가 주문한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다주었다. 빨간 토마토소스의 펜네 파스타였다. 접시를 내 앞에 놓은 그는 접시 위를 손으로 가리키며 내게 무언가 말했다.


프레시. 베리 베리 프레시.


파스타가 신선하다고? 무슨 말인가 해서 자세히 보니 그의 손가락은 파스타 위에 익어서 구겨져 있는 푸른 것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바질 잎이었다.


그는 내게 그것들은 이 식당에서 직접 기르는 거라고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말했다. 이 파스타를 위해 방금 땄다고. 나는 무척 근사하다고 답했다. 그는 오랜 친구처럼 웃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아까 자신이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다시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나는 음식을 먹을 때 주변에 누군가 없는 것을 좋아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만큼은 내 주변에 계속 머물러 있어주길 바랐다. 내가 앉은 곳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앉아, 자신의 할 일을 하면서.


그가 만들어준 파스타는, 내 모든 기억을 통틀어서, 터키에서 가장 맛있는 파스타였다. 터키에서 '마카르나'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파스타(터키어로 파스타는 케이크를 의미했다)는 이런 '카페'가 아니면 거의 찾기가 힘들뿐더러, 찾는다 해도 대체로 면을 푹 익혀버려서 별 맛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파스타는 씹는 맛이 살아 있는 완벽한 알덴테 상태였고, 바질 향이 스민 새빨간 토마토소스는 그의 말대로 무척이나 신선했다.


입안을 가득 채우는 개운한 맛에, 나는 그동안 아다나 케밥에 나도 모르게 물려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터키의 고기는 맛이 진하고 구수했지만 며칠간 매 끼니마다 먹었더니 혀가 지쳐버렸던 것이다. 그러다 오늘 아침으로 먹었던 담백한 식사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제대로 된 파스타를 이렇게 먹으면서, 나는 내 몸에서 마지막으로 혀가 치유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혀에 있었던 그 피로함은 단지 아다나가 아니라 터키에 일하러 온 6개월 전,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파스타를 갈구해왔던 것이었다. 한국 음식이 아니라.


근사한 식사를 마친 뒤에 식당을 떠나기 전 계산을 하면서, 나는 그에게 이 파스타가 터키에서 가장 맛있는 파스타(그에겐 마카르나, 라고 했지만)였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동의하진 않는다는 듯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나는 그와 조금 더 우정 같은 것을 나누고 싶었지만, 딱히 그럴 구실도, 언어적 능력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쉽지만 나는 그와 작별했다. 돌아선 나의 머릿속엔 그의 얼굴과 눈빛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드문 일이었다. 낯선 사람의 얼굴이 이렇게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는 것이.

숙소로 돌아와 잠깐 낮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해가 거의 지고 있었다. 잘 먹고 잘 쉬었더니 컨디션이 좀 올라와 있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기로 하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 가까이 아래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안탈리아의 명물인 칼레이치 항구가 나왔다. 7년 전의 이곳은 생선 요리를 파는 가게와 호객꾼, 그리고 생선 요리를 먹으려는 관광객들로 시끌시끌한 곳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터키인들이 직접 입으로 말하는 '형제의 나라'라는 말을 처음 들었었다. 그 남자는 나를 자기네 가게로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려는 호객꾼이었다. 물론 그 집으로는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생선 요리를 먹었었다. 터키에서 생선 요리는 고급 별식이라는 이미지였다. 자신의 레스토랑에 진열해놓은 깨끗하고 큼지막한 생선을 자랑스럽게 들어 보여주던 상인들. 자부심 넘치는 손길에 찬란하게 빛나던 생선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있는 것들은 미동도 없이 배에 박혀서 잔잔한 파도를 따라 출렁거리는, 해적 마네킹들뿐이었다. 그것들은 정박해놓은 배들을 따라서 무척이나 많았지만, 나는 이 항구에서 전혀 인기척을 느낄 수가 없었다. 죽어버린 유원지에 온 것처럼 기괴한 느낌마저 들었다. 서둘러 계단을 올라 그곳을 빠져나왔다. 어쩌면 풍경이란 어느 정도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차로에는 죽은 새가 방치되어 있었다. 도시에서 살아가는 그 많은 동물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들이 최후를 맞은 모습을 보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아마도 도시 안의 어딘가에, 빽빽한 건물들의 사이에, 폐쇄된 골목의 쓰레기 더미 근처에, 그들의 무덤이 있을지도 몰랐다. 누구도 그런 것을 상상하지 않던 세계에서 문득, 한 청소부 소년만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잔뜩 쌓여 있는 뼈와 깃털들을 발견하게 될 지도.


더 멀리 걸으면 걸을수록, 풍경은 점점 더 쓸쓸해지고 있었다. 셔터가 내려진 가게와 불이 꺼진 집, 자물쇠로 잠긴 자판기. 하늘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저녁을 먹는 것은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담벼락 너머로 불이 켜져 있는 레스토랑을 보았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으므로, 아마도 지인들끼리 개인적인 모임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밝은 곳. 나는 또다시 성냥팔이 소녀 같은 기분을 느꼈다. 저 불빛에 참가하여 한쪽 구석진 자리에서 케밥을 한 접시 먹을 수만 있다면.


그러나 그것은 내가 속할 수 없는, 담벼락 너머의 풍경에 불과했다. 나는 파트라슈가 없는 네로와 같은 심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끔씩 고개를 돌려보면 레스토랑의 불빛은 점점 작아지면서도 붉고 선명하게 남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 불빛은 점차 어두워져가는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남은, 인기척이 느껴지는 불빛이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다시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몸을 달궜다. 돌아오던 길에 맞바람을 맞았는데, 그때 정신이 잠깐 아찔해지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것은 종종 걸리곤 하던 몸살감기의 전조증상 중 하나였다. 때가 때인 만큼 그 증상은 불길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공사장에서 6개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부대끼면서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를 여기서 걸리게 된 걸까. 만약 그렇다면 야간 버스에서 옮았던 것일까. 그때 사람들은 마스크를 다 하고 있었던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푹 자는 것 외에는 없었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명확해지겠지. 컨디션이 괜찮다면, 내일은 커다란 모험을 할 생각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에 대해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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