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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Mar 26. 2022

‘독자 품앗이’, 안 써질 때도 쓰게 한다

글쓰기 모임 하는 법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5. 독자이자 편집자가 있으면 뭐가 달라질까 



기자 8년 차쯤 됐을 때, 문화센터 소설 쓰기 강좌를 신청했습니다. 기사를 송고하고 퇴근해도 밤 열한 시까지는 수정 지시가 내려올 수 있어서 매번 불안했지만 큰돈을 내고 듣는 수업이라 빠지고 싶지 않았고, 한 번 빠지면 계속 안 나가버릴 것 같아서 꼭 출석했습니다. 10회 차 정도 되는 수업은 작법 강의였고, 6회 차부터는 그동안 쓴 자기 글을 제출해 선생님의 평가를 듣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작법 강의는 모두 들었지만 “자, 이제 다음 시간까지 글을 제출하세요.”라는 말을 듣고 나서 6~10회차 수업은 결석했습니다. 일 핑계를 댔지만, 실은 제 글을 남 앞에 내놓는다는 게 너무나도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기자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지만, 스스로는 “나, 명색이 기자인데……”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혼자 쓰자, 싶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평일엔 회식자리에 불려 나가고, 주말에는 소파에서 와식생활을 하면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노트북 앞에 자발적으로 앉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당연히, 소설 쓰기는 실패했죠.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일까, 좌절하고 있을 때 우연히 읽고 도움이 된 책이 있습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의 즐거움》입니다. 그는 우리가 매번 실패하는 이유를 의지력 부족에서 찾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무언가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돼야 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첫 번째, 명확한 목표. 게임이나 스포츠처럼 목표가 확실하면 뭘 해야 할지 우왕좌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빠른 피드백. 피드백이 없거나 너무 느리면 몰입이 어려워진다고 합니다. 마지막은 적절한 난이도. 아주 어렵거나 아주 쉽지 않은 것, 도전해볼 만한 과제가 가장 몰입하기에 좋다는 얘기였습니다. 


일단 출간 계약을 맺으면 이 세 가지 조건이 바로 충족됩니다. 저는 출간 계약을 맺고 나서 일주일에 두 편씩 쓰기로 하고, 되도록이면 한 달에 열 꼭지씩 쓰자는 편집자와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한 권의 책 분량을 네 번의 마감일로 나눠 보냈고, 초고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매달 보내는 글에 대한 구체적인 편집자의 피드백을 받아서 다음 글을 쓸 때에 반영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글을 쓰니 지치지 않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힘들긴 해도 견딜만했습니다.


이 세 가지는 글쓰기 모임에도 해당됩니다.      


·명확한 목표 = 모임 참가자는 일주일에 글 한 편씩 마감한다. 

·빠른 피드백 = 어떻게 읽었는지 감상평을 모임 자리에서 공유한다.   

·적절한 난이도 = A4 1~2장 분량의 에세이를 완성한다.  


몰입의 3대 조건이 충족된 것이죠. 


글쓰기 모임은 독자이자 편집자를 서로서로 '품앗이' 하는 자리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글을 읽는 독자이자 동시에 편집자입니다. 작가는 초고를 보내면 그때부터 개운하기는커녕 초조해집니다. 내 글을 읽은 편집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입니다. 그의 마음에 들고 싶고, 좋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좋았다고 칭찬받고 싶어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작가는 동력을 얻습니다. 편집자는 작가에게 힘을 주는 '특별한 독자'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내 글을 읽어봐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축복입니다. 내 글의 장점이 뭔지를 알게 되니까요. “저자는 자기 책의 단점을 알게 되는 첫 번째 사람이고 장점을 알게 되는 마지막 사람이다. 원고를 1년 넘게 붙들고 있다 보면 이따위 책은 내지 않는 게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몇 번은 온다. 그럴 때마다 손을 잡아주는 편집자가 곁에 있다는 것은 그 책의 행운이다.”라고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자신의 책에서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가들은 자신의 아내나 가족, 가까운 편집자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소설을 쓰기도 합니다. 저도 매주 제 글을 기다려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에세이를 써 내려갑니다. 지속적으로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으면 안심이 됩니다. 

이들이 늘 좋은 말만 해주는 건 아닙니다. 음식점에서도 맛이 없어도 사람들은 “잘 먹었다.”라고 주인에게 말하고 나가고,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하죠.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뭐가 이러쿵저러쿵 일일이 말하지 않습니다.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쓴소리를 해주는 것도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맷집’이란 말은 글쓰기에도 해당됩니다. 피드백을 하다 보면 '두드려 맞는 기분'이 정말로 들 때가 있어 며칠 동안 얼얼해지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만들어진 맷집이 우리를 계속 쓰게 해 줍니다. 그런 게 없으면 우리의 글쓰기 실력은 별로 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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