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저 Mar 26. 2022

글쓰기 모임에는 누가 오나

글쓰기 모임 하는 법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4. 내가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며 경험한 참가자들



제 경험상 보면 독서모임과 비슷하게 글쓰기 모임도 다섯 명에서 열 명 사이가 적당합니다. 두 명과 오붓하게 하기도 했고, 스무 명 가까운 인원과 하기도 했습니다. 다섯 명보다 적으면 당사자들이 부담을 느끼기도 하고요, 글에 대한 피드백도 매번 비슷한 시각만 들을 수 있어서 양쪽 모두에게 한계가 있습니다. 반대로 열 명이 넘어서면 하나씩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촉박해서 대충 넘어가거나 모임 진행자 역할을 맡은 사람 위주로 간단히 얘기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열심히 써온 글에 대해 모두가 집중력 있게 읽고 함께 얘기하기 위해서는 일곱, 혹은 여덟 명이 가장 만족도가 좋았습니다. 


잠깐 딴 얘기를 하자면, 열명 남짓의 글쓰기 모임에서 남자 참가자가 두 명을 넘는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여자 성별이 압도적입니다. 소수자인 남자분들은 맨 뒤에 과묵하게 앉아 있거나 멋쩍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특이한 점은 그렇게 참석한 남자분들은 도중에 그만 나오는 일이 드뭅니다. 그만큼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 오신 분들입니다.  


초심자들이 글 말고도 가장 걱정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목적이든, ‘모임’이란 말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러 사람이 한 자리에 모이는 걸 뜻하니까요. 그런 자리에 나오려면 두려움이 생기고, 그 두려움을 이겨낼 정도 크기의 용기가 필요한 것이겠죠. 여러 생각이 듭니다. 글을 너무 잘 쓰는 사람들만 모이는 건 아닐까? 내 글을 신랄하게 까대는 말에 상처받으면 어쩌지? 내가 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거나 SNS에 올려서 비웃는 상황이 생길지도? 말은 안 해도 속으로는 나를 완전히 한심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저는 사람이 아니라, 일단 글 자체에 집중해 보자고 얘기합니다. 처음 자기소개 시간에 자신의 직업이나 나이 같은 배경보다는 내가 왜 글을 쓰고 싶은지, 왜 이런 글쓰기 모임에 나오게 됐는지에 포커스를 맞춰 얘기하도록 합니다. 물어보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사람들은 이유가 각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뭐라 설명할 수 없어도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이 분명하게 들었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더 자세히 들어가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일상의 기록 

제가 만났던 한 분은 육아를 하면서 하루하루 똑같이 살고 있지만 문득 아이가 하는 말 한마디가 영롱하게 빛나면서 어른인 자신에게 큰 울림을 주는 걸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순간들을 그날 저녁 남편에게 얘기하면서 한번 웃고 잊는 것보다, 그 순간을 글로 남겨서 아주 나중에 아이가 커서 그 글을 읽어보게 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쓰기 모임에 참석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 아이가 했던 말은 모임의 다른 사람들에게 웃음을 짓게 하는 귀여운 말들이었습니다. 평범히 보이는 일상에 다양한 의미로 채색하는 일, 에세이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복잡한 마음 정리 

죽음, 이혼, 퇴사처럼 어떤 인생의 큰 고비를 지난 분들은 글을 쓰고 싶은 기분을 느낍니다. 뭔가 뒤엉킨 마음을 말로는 풀 수 없어서 글로 한 번 써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글은 말과 달라서 정확한 단어를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그 문장을 고르고 고르면서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제대로 된 이름표를 달아줄 수 있습니다.  

다만, 제 경험으로 보면 그 시기가 좀 지나야 글로 쓸 수 있더라고요. 우리의 뇌는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그 일의 한복판에 있으면 잘 정리가 되지 않아서 글로 잘 풀기도 어렵습니다. 소설가 줄리언 반스의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가장 또렷이 보여야만 하는데, 오히려 가장 심하게 흔들려 보인다.”는 말이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은 글쓰기 모임을 완주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안타깝지만, 여분의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겠죠.     


   

실용적 목적 

명확한 글쓰기 목표를 세우고 모임에 오신 분들도 있습니다. 주기적으로 회사 사보에 글을 싣는데 부족함을 느껴서 평가를 받고 싶다는 분도 있었고, 자신이 강의를 하는데 정리를 해서 나중에 한번 책으로 써보고 싶다고 말한 분도 있었습니다. 그 지식에 대한 글을 써 보고 다른 사람의 생각과 반응이 궁금해져서 오는 분도 있습니다. 자서전처럼 인생을 정리해서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주고 싶다는 목표를 갖고 계신 분도 있었습니다. 브랜딩의 목적을 갖고 오신 분도 있었고요.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스토리텔링 하지 않으면 온전한 자기 것으로 남기 힘듭니다. 글로 쓰는 과정이 그래서 필요한 것입니다. 



작가의 꿈

바쁠 땐 잊고 살았는데 조금 시간적 여유가 생겨 돌아보니 뭔가 글을 쓰는 일을 해보고 싶었던 꿈이 떠올랐습니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죠. 소설가 박완서는 마흔에 등단했고, 20년간 미디어 회사에서 일하다가 허리 통증으로 일을 멈추고서 이제야 소설에 도전할 만큼 성숙해졌다며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쓴 스웨덴 작가도 있지요. 글쓰기 수업에 오는 칠십 대 분들도 생각보다 많아 깜짝 놀랐습니다. 어릴 적 작가의 꿈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이제야 한번 써볼 용기를 내신 분들이요. 존경합니다. 어릴 적 소설가가 꿈이었는데 이제야 시간이 좀 생겨 글을 써 볼까 한다는 분들은 특히 어릴 적 얘기를 많이 하시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체로 그렇게 글을 쓰려는 분은 그동안 매우 성실한 독자이기도 합니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글을 쓰고 싶기도 하는 거니까요. 다만 자신이 실제로 쓴 글과 그동안 자신이 읽던 글과의 괴리감에 머리를 쥐어뜯는 경우도 많이 봤습니다.      



친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인 독서토론의 확장 버전입니다. 독서모임에서 글쓰기 모임으로 확장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런 모임들은 처음엔 책을 읽고 얘기하다가 점점 욕심이 생겨서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한 편의 글로 쓰기도 합니다. 자신이 쓴 글을 공개하며 대화하는 것은 가장 친밀한 모임의 경험을 선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왜 글을 쓰고 싶은지 그 ‘욕망’의 실체를 입으로 내뱉고 알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두 가지 이유가 아니라서 딱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일단 뭔가 배우는 게 좋아서 모이기도 합니다만, 글을 쓰려고 하는 데에는 뭔가 약간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 글쓰기 모임의 기본은 '조심스러움'과 '다정함'입니다. 각자 글을 쓰는 목적은 달라도 일단 둥글게 모여 앉아 보면, 비슷한 점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더라고요.   





이전 04화 혼자 오래 쓴 글은 티가 난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