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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Mar 26. 2022

혼자 오래 쓴 글은 티가 난다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3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3. 미룰 수 없는 '마감일'과 다정한 '독자'를 한꺼번에 갖는 특별한 경험 



글쓰기 모임의 시작은 첫 만남이 아닙니다. 첫 글을 써서 다른 사람 앞에서 그 글을 선보이는 바로 그 순간부터입니다. 아무리 매주 모인다고 해도 어물쩍거리며 글을 쓰지 않고 있다면 그건 시작도 안 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일단 뭐라도 끄적여서 한 장을 채워봅시다. ‘아무거나’라는 단어가 가장 싫다고요? “설득력 있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작가라면 감정에 다소 휩쓸릴 필요가 있다. 반감, 불쾌감, 원한, 책망, 상상, 열정적 항변, 억울함. 이 모든 게 글을 쓰기 위한 훌륭한 연료다.” 소설가 에드나 퍼버의 말입니다. 최근에 소리를 지를 정도로 화가 났거나 너무 슬퍼서 혼자 몰래 훌쩍였던 일을 떠올려서 한 번 써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모두 자신 없는 표정으로 첫 모임이 끝났지만 일주일 뒤 메일함에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글을 보냈습니다. 발송 시각을 보니 마감을 넘겨 새벽 세 시에 도착한 글도 있습니다. 세상이 잠든 시각, 식탁에 혼자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평소라면 몇 줄 끄적이다가 이내 포기하고, 찜찜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겠지요. 우리는 지금 그 유명한, 마감이라는 이름의 ‘마법’에 걸린 걸까요?   

마감은 우리에게 압박을 주고, 동시에 용기를 줍니다. 글쓰기 모임을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에 많이들 비유합니다. 각자 집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요리 중에서 그래도 자신 있는 요리를 냄비에 담아서 하나씩 가져옵니다. 그렇게 한 상을 차리면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고 즐길 수 있죠. 풍성한 파티에 혼자만 빈손으로 온다고 누가 대놓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좀 찔립니다. 위축이 되고, 잘 익은 김치라도 숭숭 썰어서 좀 가져올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심란한 마음이 생기면 파티를 제대로 즐길 수 없습니다.  

글쓰기 모임에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몇 줄이라도 써서 가져와야 다른 사람 글을 읽을 때도 마음이 덜 불편합니다. 너무 창피하다고요? 작가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부족한 내 글을 ‘인정’하는 것부터입니다. 이성복 시인이 말했죠. 글은 나보다 더 잘 쓸 수도, 더 못 쓸 수도 없다고요. 어떤 글을 써 오든,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 낫습니다.          


발송시각이 새벽 세시 반인 이메일 한 통이 와있습니다. A4 한 장이 조금 넘는 분량의 글입니다. 어릴 적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형편상 그 꿈을 펼쳐볼 기회가 없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글쓰기는 생각도 못했다는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최근에서야 좀 시간이 돼 도서관에 와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못다 핀 꿈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는, 학창 시절을 떠올리고 현재를 아쉬워하는 글이었습니다.  

다른 메일을 클릭해 글을 열어봅니다. 그리고 다음 글, 그다음……. 

다른 글감이지만 비슷한 느낌이 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기'를 몰래 읽고 있는 기분입니다. 


‘일기 같다’ 란 평가는 어떤 의미일까요.  

첫 에세이집을 출간하고 나서 댓글을 확인하다가 “일기 같다”는 독자 리뷰에 흠칫 놀란 적이 있습니다. 맥락으로 보면 일기처럼 솔직하게 쓴 글이라 좋았고, 문장이 담백해 잘 읽었다는 내용이었지만, 저는 그 당시 잔뜩 쫄아있는 초보 작가여서 칭찬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고 어쩌다 시큰둥한 반응이라도 읽으면 밤새 괴로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이후 어느 북토크 사회를 보다 소설가에게 “제 책이 일기 같다는 평을 들었어요.”라고 털어놨더니 그분이 그러시는 겁니다. “그거 굉장한 칭찬 아닌가요?” 

둘 다 맞습니다. 상대의 글에 일기 같다고 하는 건 솔직하다는 칭찬이기도, 어떤 맥락에서는 '너에게만 중요한 이야기'라는 혹평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글은 아마도 혼자 오래 쓴 글입니다. 그래서 무슨 말인지 본인은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구체적으로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 말은 불친절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불친절한 첫 글은 무반응일 확률이 높습니다. 무반응이라는 것은 아예 반응 자체가 없는 글입니다. 이 글을 다 읽고 나서 아무런 반응을 안보였다기보다는 어쩌다 읽게 됐지만 몇 줄 읽고 그만 읽고 싶어졌다거나, 딴생각이 날 정도로 지루하다거나, 그래서 끝까지 읽지도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기 같은 첫 글을 가져가더라도 모임에서 서로서로 적극적으로 물어봐야 합니다. 여러분이 쓴 이 문장, 이 주제에 대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읽었는지 물어보세요. 그것이 내가 쓴 독자의 ‘반응’을 실제로 보는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이뻐하는 나를 보며 어느 날 딸이 질투를 했다는 내용의 글을 쓴다고 하면, 글에서 딸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결혼하고 나서 가끔 집에 방문하는 딸인지, 같이 살고 있는 열두 살짜리 딸인지. 나와 딸의 관계에 대해 글에 아무런 세부 정보도 없이 이 글을 계속 집중해서 읽어가기는 어렵습니다. 

글을 쓴 사람이야 “당연히 내 딸은 다 커서 이제 대학생이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굳이 쓸 필요를 못 느낍니다.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사전 정보도 없이 읽어도 무리가 없게끔, 설명이 더 필요합니다. 때로는 우리는 그것을 묘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언론사에서 쓰는 기사는 ‘중학교 2학년이 이해할 수준으로 쓰라’는 말이 ‘기사 쓰기 제1원칙’처럼 내려옵니다. 독자를 낮춰 보는 게 아닙니다. 애들도 이해할 정도로 쉬운 글만 쓰라는 말도 아닙니다. 그 말은, 자신이 하려는 말을 조금 더 친절하게 전달할 방법을 고민해 보라는 의미입니다. 혼자만 신나게 달려가는 게 아니라 속도를 맞추며 걷는 산책이라고 생각해 보자고요. 독자가 지루해하는지, 이해하고 있는지, 내 얘기에 흥미를 느끼는지, 공감하고 있는지를 살피며 속도를 조절하는 글이 바로 에세이입니다.  


요즘은 컨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읽을지 말지 결정하기까지 고작 0.3초밖에 안 걸리고, 우리가 제목에 흥미를 느껴 클릭하더라도 그 글에 머무는 시간은 평균 4.4초뿐이라고 합니다. 그 순간을 잡지 못하면 글은 끝까지 읽히지 않습니다. 독자의 시선은 그렇게 생각보다 예리합니다.  나 혼자만 보려고 쓴 글은 금방 알아채고 외면합니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작가의 ‘꿈’을 이룬다고 무작정 달려다가 금세 지치고, 서운해지고, 시든 상추 잎처럼 얼마 못 가 포기하기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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