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저 Mar 26. 2022

기자였던 내가 어쩌다 글쓰기 모임을 이끌게 됐을까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1

얼마 전 광화문 근처에서 옛 직장 후배를 만났습니다. 그 후배는 5년 전 제가 신문사에 다닐 때 같은 부서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와 만나자더니, 어떻게 하면 에세이를 쓸 수 있는지 대뜸 물었습니다. 아니, 에이스 기자님이 마음먹고 시간 내서 글을 쓰면 되지, 왜 그걸 나에게 물어보냐고 가볍게 웃어넘기려다가 후배의 막막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습니다. 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기사를 쓰는 것과 자기 자신이 글감인 글을 쓰는 것은 다른 문제란 걸요. 


저도 똑같았습니다. 십 년 넘게 뉴스 리포트를 쓰고, 신문기사도 썼습니다. 중간에 회사에서 보내서 시사고발 프로그램 피디까지 했으니까 언론사에서 쓸 수 있는 형태의 글은 거의 다 써본 셈입니다. 

스물다섯, 처음 기자를 꿈꿨던 때가 떠오릅니다. 면접장에선 (꽤 많이) 다르게 말했지만 지금에서야 털어놓자면,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건 사회를 향한 정의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단순했습니다. 월급 받으며 글을 쓰는 직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우리 사회를 많이 보고 듣고 경험해 보고 싶은 호기심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매일 썼습니다. 나중에는 글 자판기가 된 기분마저 들더군요.  


어찌어찌, 좌충우돌, 여차저차, 직장인의 희로애락을 골고루 다 겪고 나서 결국 기자일을 관뒀습니다. 마냥 “야호!” 외칠 기분은 아닌 거 아시죠? 저는, 제 자신이 그러고 나서 글을 아예 안 쓸 줄 알았습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징글징글했으니까요. 뭐든 글에서 먼 일을 해 보자 싶었습니다.  

다행히 최적의 환경이었죠. 집에는 데스크톱도 노트북도, 태블릿 PC도 없었습니다. 구형 휴대폰 하나 달랑 있는 청정구역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반년쯤 지나니까 마음 한편에서 스멀스멀 뭔가가 올라왔습니다.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를 ‘쓰고 싶은 기분’이었습니다. 오 마이 갓. 그 기분은 끈질기게 달라붙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최저가 노트북 하나 사서 몇 달 동안 낑낑대며 글을 썼고, 우여곡절 끝에 첫 에세이집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책이 나오는 과정을 겪고 나니 가장 좋았던 건 내 책이 광화문 교보문고 매대에 진열된 순간이 아니라, 초고를 쓰던 그 조용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글감이 생각나서 잠결에 벌떡 일어나 날을 꼬박 샐 때까지 노트북 앞에 앉아있던 그 시간, 회사에서 힘들어했던 사건을 쓰다가 뒤늦게 의미를 찾은 문장을 쓰던 시간, 산책하면서 기똥찬 글감이 떠오른 순간. 그런 게 참 좋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글을 씀으로 인해 일상의 내가 분명히 달라지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야나두’ 모델처럼 제 주변 사람들에게 ‘글을 써 봐라, 일상이 달라진다’ 말하고 다녔습니다. 제 첫 책을 홍보해도 모자랄 판에 말이죠. 당장 우리 집 근처 동네 도서관에서 사람을 모아 글쓰기 수업을 열어서 다 같이 매주 한 편씩 글을 썼습니다. 아주 열렬한 전도사 같은 열의에 빠져, ‘글쓰기주의자’가 된 것이죠.

 

저는 뭐든 느리고,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이번에도 뒷북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임에서 저는 재야의 ‘숨은 고수’도 만났습니다. 책만 안 냈을 뿐 혼자서 웬만한 베스트셀러보다 더 매력적인 글감을 가진 분들이요. “이 얘기, 소설 아니에요?”라고 모두가 깜짝 놀라 되물을 정도로 기기묘묘한 사연도 많았습니다. 다양한 삶을 겪어온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가장 깊은 속 얘기를 종이 위에 옮겨오고, 그것을 매주 읽는 경험은 매번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의 인생 속으로 깊숙하게 들어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기자에서 작가가 되고 나서, 글을 쓰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글쓰기 모임을 이끌면서 보낸 지난 삼 년은 제가 애초에 원했던 꿈― “세상 곳곳을 많이 알고 싶다.” ―을 실제로 이뤄준 시간이었습니다. 

돌고 돌아 결국, 제가 원했던 직업을 찾은 기분입니다. 해외 출장도 많이 가고, 높은 자리의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경제에 대해 준엄한 비판기사를 쓰던 그때가 아니라, 얼굴을 마주 보고 글을 서로 읽으며 어떻게든 더 나은 글을 써보자 으쌰으쌰 하면서 제가 아는 한 글쓰기에 관한 팁과 의견을 공유하는 지금이 훨씬 보람되고 의미가 있습니다. 직업을 에세이 작가로 소개하지만, 작가로서 제 일상의 동력을 주는 건 매주 한 번씩 제가 이끄는 글쓰기 모임 시간입니다. 


특별한 준비도 없이 강렬한 체험 직후에 두려움 없이 글쓰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던 것처럼, 지금 이 글도 그렇습니다. 누가 써달라고 하지도 않았지만,《글쓰기 모임 하는 법》이라는 제목의 이 시리즈를 혼자 쓰면서 챕터마다 누군가를 구체적으로 떠올리면서 썼습니다. 남들에게는 차마 글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사람, 책을 읽다가 문득 ‘나도 이런 글 써보고 싶다’라는 강한 충동이 이는 사람, 글을 완성 짓지 못하고 앞부분만 쓰다 지우다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오가고 있는 사람이요. 그 사람을 상상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잊을만하면 출몰하곤 하는 바로 저의 모습이니까요. 


이전 02화 왜 우리는 모여 써야 하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