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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Nov 25. 2021

왜 우리는 모여 써야 하나?

글쓰기 모임의 힘

글쓰기에 관심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도서관에서 무료 특강을 열었습니다. 에세이집을 내고 작가로서 사람들 앞에 선 첫 자리였습니다. 평소에도 눌변인 저는 미리 연습했던 말들을 뱉어내기 바빴고, 긴장한 탓에 말은 점점 빨라졌습니다. 웃음포인트로 준비한 에피소드까지 몽땅 빠뜨리다 보니 계획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끝내버렸습니다. 어쩔수없이 질문을 받아야 했고, 날카로운 질문 몇 개에 횡설수설하면서 결국엔 하나마나한 답을 내놓고 말았습니다. 그때 맨 앞줄에 앉은 할머니 한 분이 대사를 통째로 까먹은 초보 연극배우같은 저를 잔잔한 미소로 응원하듯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모두 썰물처럼 나가고 강의실에는 얼빠진 표정의 저와 그 분만 남았습니다. 그녀가 다가오더니 거의 속삭이듯 물었습니다.    


“근데……저같은 노인도, 진짜로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저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게 수필이라고, 일단 시작해 보시라고 웃으며 얘기했고, 그녀는 희망을 조금 얻은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몇주 뒤 글쓰기 수업이 개설됐을 때 그녀는 신청자 명단에 없었습니다. 꽤 간절해 보였는데, 아쉬웠습니다.   


제 얘기를 듣고 아마 그녀는 계속 이렇게 글을 붙잡으며 괴로워할 바엔 글쓰기 모임에 나가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자, 잠깐만, “내 글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니, 너무 창피해!”란 다급한 목소리가 속에서 스물스물 올라왔겠죠. 내가 나를 뜯어말리는 순간입니다. 


그런데요. 자신감을 갖고 글쓰기 모임에 나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글쓰기 모임 참가자가 “전 글에 소질이 있거든요.” 라거나 “책을 출간할 계획입니다.” 라고 야무지게 대답하는 걸 아직까지 못 봤습니다. 모두들 어딘가 멋쩍은 웃음을 띠면서 우물쭈물하게 고백합니다. 


“혼자선……잘 안 되더라고요.”   


돈을 벌고 밥을 먹는 것처럼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글쓰기는 늘 후순위로 밀립니다. 혼자서 어떻게든 써 보려고 해도 끝맺지 못한 글만 수북하게 쌓입니다. 바로 ‘좌절 숙성 기간’ 입니다. 그 기간이 길고, 좌절 강도가 깊을수록, 글쓰기 모임에 참여할 최적의 마음의 준비 상태가 된 것입니다. 자, 우리는 글을 짝사랑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데이트 한 번 못 해보고 참담한 실패담만 축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일까요, ‘나만의 이야기’를 한번 써보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이 모인 첫날의 분위기는 참으로 조심스럽고 소년소녀처럼 내내 수줍습니다.      


저는 십여년간 언론사에서 글을 썼습니다. 희한하게도 십 년차 기자라고 오 년차보다 더 대우받지는 않습니다. 글(기사)을 쓰는 동안은 모두 ‘평기자’라는 이름으로 평등하게 불립니다. 일반 회사처럼 처음에 사원이었다가 대리, 과장 같은 것으로 세세하게 진급하는 것과는 좀 다릅니다. 저는 그 이유가 글 앞에선 경력과 실력이 정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언론사는 일종의 ‘모여 쓰는 집단’입니다. 서로의 글을 읽어주고, 고쳐주고, 여러 번의 팩트체크와 필터링을 거치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비로소 괜찮은 수준의 글로 완성을 시키는 작업 방식을 갖고 있는 회사입니다.    


여러분이 펼치는 책도 이런 방식을 거쳐 나온 결과물입니다. 초고는 쓰레기라고도 하잖아요. 수십번씩, 누구는 수십년에 걸쳐서 고칩니다. 볼품없는 글을 포기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읽게 하고, 반응을 살피고, 고치고, 더 나은 글을 써 보려는 노력을 하는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작가가 원하는 글에 가깝게 ‘기어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독자인 우리는 그렇게 안간힘 끝에 나온 글들을 보게 되는 것이죠.     

 

내 책을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정 양의 원고를 쓰면 곧바로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거나, 자기 돈을 투자해 출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낸 책은 천재가 아닌 이상 십중팔구 자기만족에 그치고 맙니다. 독자를 만날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제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압니다. 혹시 이 과정에서 뭔가가 빠진 느낌이 들지 않았나요?   


바로 나의 글을 타인에게 선보이고, 고치는 과정이 빠졌습니다. 프로 작가가 아닌 이상 독자가 알아서 찾아오지 않습니다. 미리 인터넷 사이트에 글을 올려 조회수가 높았다고 위안을 삼을 지는 모르나, 지나가다 들려 ‘좋아요’를 눌렀다고 그게 독자의 반응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반응이 있다면 다행이고, 대부분은 무플입니다. 악플이라도 달리면 의욕은 확 꺾입니다. 저도 한 사이트에 택시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가 택시업계 종사자들에게 악플 수십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글을 편집자의 피드백을 반영해 계속 고쳤고, 책에 실었을 때 독자들이 공감했습니다. 아마 그 글을 혼자서 껴안고 있었다면 내내 괴로워하다 삭제 버튼을 눌렀거나, 노트북 바탕화면의 ‘꿩’ 폴더에다 고이 묻어뒀을 것입니다.      

 

누군가 같이 봐 주는 사람이 있어야 여러분이 쓴 글의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생텍쥐페리는 “자기 안에 있는 생각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우리는 단지 뭔가를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완벽한 글은 애초에 없는 건지도 모릅니다. 단지, 우리의 생각에 근접한 글만 있는 것일지도요.  


글쓰기 모임에 나온다고 글이 한순간에 바뀌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 앞서 달라지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함께 쓰면, 글을 향한 마음이 단단해집니다. 끝내지 못한 글만 쌓으면서 갈팡질팡해 하던 이전 시절로 돌아가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글쓰기 모임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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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독서 모임처럼 글쓰기 모임이 활성화되는 날이 올까요?

이 매거진에서는 제가 도서관 등 공공기관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며 겪었던 일들과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을 올릴 계획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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