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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Mar 26. 2022

내 글을 낭독하는 즐거움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9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9. 내가 쓴 글 읽기, 타인의 낭독 경청하기 



저는 잘 읽어봐야겠다, 싶은 글은 무조건 종이로 읽습니다. 온라인으로 글쓰기 모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문사라는 오래된 인쇄매체에 종사한 경력 때문일까요. 신문사에서는 매일 마감 때가 되면 기자보다 더 바쁜 게 바로 프린터입니다. 고성능 프린터는 저녁마다 낮은음으로 울어대며 뜨끈한 종이를 뱉어댑니다. 그러면 모두가 거북목을 한 채로 그 프린트를 보면서 오탈자를 잡아내고, 애매한 문장에 밑줄을 좍좍 긋습니다.    

“이거... 나무에 너무 미안한 일 아니야?”


저녁만 되면 부서 책상마다 쌓이고 넘치는 A4 종이뭉치를 보면서 모니터에서 꼼꼼하게 보면 될 걸, 왜 이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제가 제일 먼저 프린터 앞에 가서 엉거주춤하게 구부리고 종이가 다 나오기도 전에 손을 갖다 받치고 있게 되더군요. 


책을 낼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종 인쇄를 앞두고 꼼꼼히 봐야 할 때는 100장이 넘는 원고를 다 프린트해서 읽습니다. 노려보듯이 읽다가 오자 하나를 발견하면, 엄마 새치 뽑아주고 백 원씩 받는 어린애처럼 신이 나더라고요. “내가 찾아냈다!”   


꼭 신문기사나 출판물이 아니더라도, 글을 정독하려면 종이로 읽는 걸 추천합니다. 


힘들게 글 한 편을 완성하고 나서 아예 안 읽어보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동안 잡고 있었던 글을 다시 읽으면 골치가 아파서기도 하고, 부족한 글이라 외면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글이 느는 방법 중에서 가장 쉬운 길은 자신의 글을 출력해 읽어보는 것입니다. 집에 프린터를 설치해 글을 완성하고 나서 프린트한 다음 그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 글을 쓰자마자 출력해 읽는 것도 좋지만 하루 이틀, 아니면 한두 시간 지나서 읽어보는 방법을 더 권합니다. 마치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듯, 책장에서 꺼낸 책의 한 페이지처럼 말이죠. 자신이 쓴 글과 거리를 두고 ‘낯설게 하기’입니다. 어릴 적 학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돌아가면서 글을 읽게 했던 기억 있으시죠. 눈으로 읽을 때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자신이 쓴 거라 집중이 되고,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도드라져 보입니다.       


출력한 종이를 들고, 천천히 읽어보세요. 

같은 말도 어떤 표정과 제스처로 하는지에 따라 설득력이 다른데요,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읽으면 더 좋게 들립니다. 목소리가 타고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꾹꾹 천천히 읽으면 됩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를 충분히 쉬어가면서 읽으세요. 낭독에 적합한 속도와 리듬이 있습니다. 그 리듬을 찾아서 즐기세요. 소리 내어 글을 읽을 때 찾아오는 변화가 있습니다.  


한 번은 글쓰기 모임 합평 시간에 낭독을 하다가 울컥한 나머지 갑자기 말을 잇지 못한 분이 계셨습니다. 아마 글에는 미처 담기지는 않았지만, 그 문장 너머의 깊은 감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것을 우리 모두는 느꼈습니다. 충분한 시간 동안 침묵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수습될 때까지 기다려줬습니다. 다음 시간에, 그 분은 자신이 담지 못했던 문장들을 더 담아서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그 마음이 무엇인지 잘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글을 제 입을 열어 말함으로써 온전한 자기의 것이 되고, 더 큰 용기를 얻어갈 수 있습니다. 내 글에 대한 애정을 더 갖게 되기도 하죠.  


글로 소리 내 읽으면 가장 먼저 스스로가 알게 됩니다. 제삼자 입장에서 읽으면서 어색한 부분들, 너무 긴 문장들이 턱턱 걸립니다. 부드럽게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덜 고쳤다는 얘기입니다. 긴 문장도 줄여보세요. 단문의 시대, 왜 문장이 짧은 게 나은지 낭독을 하면 알 수 있습니다. 문장 끝이 매번 ‘~다,~다’로 끝나는 것보다 중간에 다른 변형을 주는 것이 덜 지루하게 읽힌다는 것 역시도 소리 내 읽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글은 ‘말하듯 쓰기’라고 합니다. 작법서를 보면, 대화하듯이 자연스럽게 쓰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쓰는 게 그런 걸까요? 읽어보면 확실히 감이 옵니다. 평소엔 잘 쓰지도 않는 딱딱한 말을 억지로 남발해서 괜히 어렵게 하는 건 아닌지, 이중부정(~지 않는 바는 아니다, ~수는 없지 않다.)을 자주 쓰고 있는지, 말할 때는 안 쓰는 표현(~것이다, ~적이다)을 많이 쓰는지, 이런 것들도 낭독을 하면 고칠 수 있습니다. (잠깐 저, 이 글 좀 프린트하고 와야겠어요...)


내 말(글)을 누군가가 경청해 주는 경험, 어디서 쉽게 경험할 수 없습니다. 여기, 글쓰기 모임에선 가능해요. ‘경청’은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 것을 말하죠. 그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가 전하고자 하는 말과 그 안의 감정에까지 귀를 기울이려는 것이 경청입니다. 요즘은 자기 매력을 발산하려고 애쓰는 '스피커'는 많지만 '리스너'는 희귀한 세상입니다. 가끔은 ‘굿 리스너’로 자리에 앉아있는 시간이 참 좋더라고요. (I라서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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