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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Mar 26. 2022

매번 값진 글을 쓸 수는 없다는 진실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8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8. 내 글이 평가받을 때의 자세



신입사원 때 일입니다. 간단한 보도자료를 받아서 세 문장으로 줄여 쓰는 간단한 기사였습니다. 그런데 제 글을 읽은 기자 선배가 고작 세 줄짜리 기사를 프린트하더나 저를 회의실로 불렀습니다. 그러더니 빨간펜(이때부터 빨간펜 트라우마가 생긴 걸까요.)으로 그 세 문장을 단어마다 ‘난도질’ 했습니다. 순간 울컥해서 하마터면 울 뻔했습니다. 저도 글 좀 쓴다고 생각해서 그 어렵다는 언론고시를 뚫고 입사한 사람인데요. 그 세 문장이 왜 잘못됐는지는 그 당시에는 몰랐습니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 선배가 괜히 트집잡기나, 신입의 기를 꺾으려고 괜히 그러는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문장이 왜 적합하지 않았는지는 일 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 문장은 그럴듯해 보여도 모호하고,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는 쏙 빠진 글이었습니다.  


지금은 제 글을 누군가에게 보일 때 그렇게 복잡한 마음은 아닙니다. 글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서 탄생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내가 쓴 글을 '고스란히' 지키고 싶다면 그것은 일기장에만 써야 합니다. 그것은 아무도 ‘터치’ 하지 못하는 글입니다. 누군가에게 읽히는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는 조금 달라야 합니다.       


“글은 내 손에서 떠나면서는 내 것이 아니다. 독자의 것이다.”


이것이 내 글이 평가받을 때 필요한 첫 번째 자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글을 평가해주는 그 독자의 수준을 평가하는 데에 골몰하는 분도 있습니다. 내 글의 비평을 핑퐁하듯 다시 비평하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하나의 피드백일 뿐, 피드백의 수준을 평가할 필요는 없습니다. 글쓰기 모임은 누가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지, 지식이 풍부한지 대결하는 링이 아닙니다. (아, 아니라니까요. 눈에서 힘 푸세요.)

       

가끔은 반대로 이런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칭찬을 해줘도 믿지 못합니다. 이 사람은 내 면전에 대고 글이 안 좋다고 할 순 없으니까 억지로 끌어내서 잘 썼다고 한 걸 거야. 내가 재능이 있을 리 없어. 그 문장은 내가 어디서 읽고 머릿속에 기억돼 있다가 어쩌다 나온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고 칭찬을 담지 않으려고 귀를 닫아버리기도 합니다. 여러분, 글쓰기 모임에서 칭찬을 들으면 곧이곧대로 믿고 기뻐하고, 기억하세요.          


우리는 매번 값진 글을 쓸 수 없습니다.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일 못한다고 혼이 난 나는 나의 일부분일 뿐입니다. 내가 쓴 글도 오늘 쓴 글일 뿐입니다. 나는 글을 못 쓰는 사람이다, 나는 글쓰기 재능이 없다,라고 이렇게 바로 정의 내려 버리는 것은 자기 스스로를 한계 짓는 것 아닐까요. 글이 내 전부는 아닙니다. 글을 잘 쓸 수도 있고, 못 쓰는 날도 있습니다. 작가들도 매번 괴로워하지요. 이상한 글로 내 평판을 망쳐버릴까 봐, 매번 다시 백지에서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하물며 아직 프로작가가 아닌 우리는 들쭉날쭉한 글을 쓸 수밖에 없죠. 


여러분이 쓴 글에도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하나의 글로 내 점수가 결판나는 것도 물론 아니고요. 그래서 우리는 주기적으로 모여서 글을 써야 합니다. 이런 글을 쓰고 다음 주에는 저런 글을 써서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축적’의 힘입니다. 그런 경험이 축적되면서 평균치의 나를 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독자와 작가의 시각을 번갈아가면서 내 글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들은 피드백대로 글을 뜯어고치란 건 절대 아닙니다. 열린 마음으로 듣되, 최종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 지를 고민해서 정하는 것, 그 과정이 바로 ‘퇴고’입니다. (그래서 저는 Choi가 엑스자로 쳐놓은 ‘노잼’ 문단은 통째로 삭제했습니다. 대신에 빨간색 돼지꼬리 표시가 붙은 그 문장은 고이고이 살려두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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