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 하는 법 07
[글쓰기 모임 하는 법]
07. 글쓰기 모임에서 말하면 안 되는 것들
저는 모임 참가자의 글을 세 번을 정독합니다. 처음은 궁금해서 빨리 읽어버립니다. 두 번째는 조금 느긋하게 읽습니다. 그러고 나서 조금 시간을 둔 다음에 모임에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읽으면서 무슨 피드백을 해야 할지를 머릿속으로 다듬고 정리해 봅니다.
합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일단 한 번 끝까지 읽어주는 일입니다. 누군가 내 글을 주의 깊게 읽어줄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은 글을 쓰게 하는 가장 큰 동력입니다. 구체적인 실체를 가진 독자가 읽어주는 것. 그것이 여러분의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그다음은 최대한 성실하게 피드백을 주는 것입니다. 단순 감상에만 그치면 안 됩니다. “지루하네요.”라고 하면 끝입니다. 이 글을 읽고 제목에서 무슨 느낌을 갖고 본문을 읽어 나갔는지, 작가의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라고 느꼈는지, 작가의 글에서 느낀 감정이 나는 이렇게 느꼈는데 실제로는 어땠는지 궁금해하는 것 등등, 각자 글을 읽고 나서 느낀 점들을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피드백을 할 때는 좋은 점부터 먼저 얘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글에는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거친 글에도 그 사람의 솔직함이 있을 수 있고, 문장이 정확하지 않아도 그 사람이 고른 에피소드의 소중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한 가지씩 말해도 마음속에 오래 남는 건 안 좋은 얘기 쪽이란 건 우리… 모두 너무나 잘 알고 있잖아요? (잠시 회상)
피드백을 할 때는 뭉뚱그리지 않고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예를 들어 “잘 읽었습니다. 살짝 이야기가 늘어지는 것 같았고요. 제목이 내용이랑 좀 안 어울리긴 해도, 전체적으로 잘 읽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건 글쓴이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글쓴이는 "잘 읽었다"라는 말은 사라지고 오로지 ‘이야기가 늘어진다’ ‘안 어울린다’라는 말이 강조체로 머릿속에 남아 맴돌 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같은 말이라도 이렇게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잘 읽었습니다. 이 에피소드를 선택하신 걸 보면 일상에서 글감을 찾아내는 눈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라면 이런 비슷한 경험을 했어도 그냥 지나쳤을 것 같은데 이런 평범한 일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게 좋은 에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요, 에피소드는 재밌지만 묘사가 모든 단락에서 세세한 점이 오히려 글의 리듬을 조금 떨어뜨리는 것 같아서요. 앞부분의 분량을 조금 줄이면 마지막 의미 부분도 더 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호기심이 생기게 하는 이 마지막 문장이 좋은데요, 이걸 아예 제목으로 뽑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개인적으로는 들었습니다.”
조금 긴가요? 하지만 모호한 자신의 독자로서의 감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우리 모임의 중요한 연습이죠. 다른 글이나 책을 읽을 때 리뷰글을 쓰는 것을 말로 옮기는 것과 비슷해요. 리뷰글을 쓸 때도 “이 책 재밌어요, 강추!”라고 하는 것보다 어느 구절이 인상 깊었는지,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지,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고 내가 어떤 부분에 공감했는지/공감이 안 됐는지 이런 것들을 쓰는 것이 바로 한 편의 글이 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칭찬이 필요한 순간에 놓치지 않고 입을 열어서 합니다. 칭찬은 구체적으로! ‘느낌적인 느낌’은 혼자만 알지, 다른 사람은 모르니까요.
일단, 글에서 드러난 고칠 점이 있더라도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말하면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단점을 자칫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의 글을 납작하게 찌그러뜨리는 무례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맞춤법입니다. 맞춤법은 읽을 때 거슬릴 수 있습니다. 본인에게 알려줘야 할 정도로 이해에 심각하게 틀린 것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저도 헷갈리더라고요.” 라거나, “오타가 있네요.”라고 부드럽게 교정해줘야 한다. 맞춤법이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을 지적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하거나, 기본도 안 되는 것처럼 한다면 큰 상처가 된다. 실제로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의 합평에서 이런 지적을 받은 한 참여자가 그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너무 큰 상처를 받아서 다시는 모임에 나오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한 분이 있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몰랐지만 그분은 사회적으로 좋은 직업을 갖고 있는 분이었고, 자존심이 대단했는데 그렇게 기초적인 맞춤법을 지적당하니까 집에 돌아가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모임 시작 때 “요새 맞춤법이나 띄어쓰기는 자동으로 교정되는 프로그램도 많고 그러니까 우리는 내용에 집중해서 피드백을 하기로 해요.”라고 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말 맞춤법, 기자로 십 년 넘게 글을 써온 저도 자주 헷갈립니다. ‘에요 vs 예요.’ ‘금새 vs 금세’는 지금도 헷갈립니다. 이 글에도 분명히 틀린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맞춤법 검사 버튼 눌렀습니다. 5개네요...)
글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그 글에 등장한 등장인물(글쓴이)에 대한 노골적인 평, 특히 부정적 평가와 판단을 내리는 것도 글쓰기에 도움이 안 됩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글쓴이가 자기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거나 매번 바른생활 인간인 것처럼 쓰고, 늘 하나마나만 결말만 내리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를 포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솔직함을 드러내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입니다. 사람에 대한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이 자리에서는 잠시 접어두자고요. 사람이 아니라 오로지 오늘 써 온 글에만 집중합시다.
아참, 심지어 어떤 분은 어떤 얘기든지 자기 얘기를 하기 위한 디딤판처럼 이용해버리고, 자기 얘기를 줄줄 늘어놓으려고만 하기도 해요. 본인이 왜 공감이 됐는지를 얘기하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꺼내는 건 좋은 피드백입니다만, 글과 점점 동떨어진 자신만의 유니버스로 빠지는 건 냉정하게 말해 모임의 다른 참가자들에게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아아, 찔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