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저 Feb 19. 2019

너무 일찍 어른이 된 아이들과의 여행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제2외국어 선택권이 학생에게 없었다. 특정 외국어에 학생들의 선호가 편중될까 봐, 즉 외국어 교사들의 자리보전과 학교의 행정 편의를 위해서였다. 1학년은 무조건 남학생 불어, 여학생 일본어였다. 문명인으로서 표의문자는 배울 수 없다는 이유로(사실은 한자를 잘 못 외웠다) 히라가나조차 안 외우고 한 학기를 뻗댔다. 찍기엔 재주가 없었는지 4지선다형이면 확률 상 25점은 맞아야 했는데 그에도 못 미쳤다. 1학기 내내 일본어 점수는 수우미양가 중 가.

수능을 치르고 대입 원서를 쓸 때였다. 선생님은 내 추천서를 쓰고 있었고, 난 그 옆에서 입학요강을 넘겨보고 있었다.  

“쌤, 낙제가 있으면 입학자격이 안 된다고 쓰여 있는데… 혹시 가가 낙제예요?”

“그렇지.”

“쌤, 저 가 있어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선생님의 그 황망한 표정을.

다행히 낙제생에 관대했던 대학교에 들어가긴 했지만… 결론은, 나같이 대책 없는 사람은 지금의 대학 문턱은 아마 못 넘었을 확률이 크단 거다.

나는 그렇게 과거를 반성하면서 요즘 10대에 안쓰러움을 느끼는 평범한 30대가 되었다.

     

기자로 일하던 중 10대들과 해외에 나갈 기회가 생겼다. 신문사에서 매년 주최하는 발명대회에서 수상한 열두 명의 학생들에게 일본 단기 과학연수가 부상으로 주어졌고, 나에게 연수를 따라다니며 르포 기사를 쓰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이다.    

기자들 사이에선 총경보다 순경이 무섭다는 말이 있다. 눈치 안 보고, 기자라고 겁 안 내고, “왜?”라고 묻기 시작하면 취재가 꽉 막혀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내겐 10대들이 마치 순경 같았다. 열두 명의 순경들과 가는 여행이라니… 일본에 가기 며칠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막상 공항에서 보니 학생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병아리 같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부터 대학원생이라고 해도 믿을법한 고등학교 3학년(미안!)까지 다양했다. 발명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엄마의 치맛바람과 과학교사의 교육열이 제대로 융합돼 상을 받은 게 확실한 아이들도 있었다. 연수 일정은 박물관이나 천문관, 방재센터 등으로 채워졌다. 일정을 함께 돌며 자연스럽게 학생들을 인터뷰해야 하는데 아이들과 대화가 잘 트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저 수업 때 저희들끼리 하는 말을 귀동냥으로 듣고 수첩에 받아 적는 게 일이 됐다.

전망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다 같이 줄을 서 있을 때였다. 고등학생 몇 명이 대회 1등 상을 탄 초등학교 5학년 남자아이와 나누는 대화를 엿듣게 됐다. 형들은 어른이라도 된 듯 5학년 동생을 빙 둘러싸더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쓸 데도 없다. 안됐다.”

나는 궁금함을 못 참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쓸 데 없다는 게 무슨 말이야?”

그러자 당연한 걸 왜 모르냐는 표정으로 고등학생 한 명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아무 도움이 안 되거든요. 중학생 때 상을 받으면 진학에 도움이 좀 되죠. 근데 그것도 중학교 1학년이면 또 좀 별로야. (나머지 학생 일동 일제히 끄덕끄덕) 아니면 초등학교 때 3등 상을 받고 중학교 때 2등, 고등학교 때 1등으로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스토리가 괜찮죠. (학생들 또 끄덕끄덕)”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양이 귀여우면서도, 요즘 아이들은 모든 게 평가와 진학이 기준이구나 싶어 씁쓸해졌다. 교육이 아이들의 사고 체계를 이렇게 바뀌게 하는구나 실감이 났다.  

지금 교육 체제에서 학생들은 모든 순간을 계획하고 작전 짜듯이 목표를 세워서 이행하고 평가를 받게 돼 있다. 그것도 바로 옆 짝꿍과 매번 비교당하는 상대평가다. 운동장 달리기를 하고 선착순으로 줄 세우는 것만큼 빈정 상하는 일이 없는데 아이들은 늘 그렇게 살고 있구나. 안타까웠다.       

     

동행 취재 일정의 마지막 날, 기사를 쓸 때가 됐는데 이대론 도저히 분량을 못 채우겠다 싶어서 열두 명의 아이들을 모두 한 명씩 따로 불러서 인터뷰했다. 되도록 기사에 한 마디씩이라도 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여태 수줍어하거나 단답형으로 일관하던 아이들은 막상 마주 앉아 물어보자 더듬대면서도 최선을 다했다. 면접관 앞에서 답을 하는 듯한 모습에 왠지 또 하나의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발명대회 수상자들인 만큼 공통질문은 ‘발명을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게 됐냐’와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였다. 꿈이 없는 어른인 내가 묻기엔 대단히 송구스러운 질문이었지만 기사를 쓰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한 중학생 남자아이가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며 내 눈치를 슬슬 봤다. 말해봐 괜찮아, 하자 자기가 ○○기업에 들어가고 싶다는 꿈을 기사에 한 줄 넣어줄 수 있냐는 거다.

“왜?”

“나중에 면접 보러 갈 때 증빙자료로 쓰면 진정성이 있어 보이잖아요.”

그러니까 ‘중학교 때부터 꿈꿔온 회사입니다!’ 라고 말하겠다는 계획이란 거니?

 

뉴스에서 A 여자 고등학교 교무부장의 쌍둥이 자녀가 나란히 문과, 이과 전교 1등을 석권했고,

시험지 사전 유출 정황이 드러나면서 한참 시끄러웠다. 학부모들은 공정성이 훼손됐다고 들고 일어섰다. 여태껏 공정한 경쟁이 아니었다며 분노했다.

내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시험지를 훔쳐서 가져다 베끼라고 하고, 결국 수정 전 오답까지 나란히 같게 써낸 쌍둥이 자녀들에게 과연 교무부장은 어떤 부모였는지 같은 어른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교육이야말로 우리 사회 어른들의 현 수준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갈 길이 너무나도 멀다.


뭔가 대단히 어긋나 있는 이 세상에서, 사는 건 그저 스스로를 다독여가면서 한 발씩 가는 것 같다. 한때 까막눈으로 낙제를 받더라도 그게 내 인생 전체의 낙제는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나는 실수에 관대해졌다.       

결국 나는 그 아이의 희망사항을 조금 뭉뚱그려서 기사에 담아주면서 빌었다. 너의 평범한 꿈에도 기쁨이 깃들기를, 좋은 어른이 되기를. 우리 사회에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들이 많아지기를. 나부터 좀 더 나은 어른이 되어가기를.   


《이 매거진은 연재가 끝났어요!
브런치 구독을 부탁드려요~  :D 》

해당 글이 포함된 에세이는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이전 08화 살아있는 너희들을 묻는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