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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Feb 12. 2019

살아있는 너희들을 묻는다는 것

TV를 보고 있는데 영화〈부산행〉을 만든 연상호 감독이 한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좀비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를 수줍게 말하고 있었다.     

“좀비는 다른 괴물이랑 다르게 악의가 없어 보여요.”

패널로 나온 변영주 감독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낯선 판타지로 보는 게 아니라 메르스 같은 익숙한 전염병의 카테고리 안에서 보는 것 같다.”라고 대화에 살을 붙였다.    

그러고 보니 하나의 바이러스가 퍼지고, 인간이 이기성을 드러내며 안전지대와 위험지대를 나누고, 그렇게 구획이 나뉘면 외부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안전을 위해 말살까지 서슴지 않는 현실과 〈부산행〉영화가 어쩌면 그렇게 딱딱 들어맞는지 싶다.

     

이렇게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된 것은 몇 년에 한 번씩 닭오리 농가를 뒤집어 놓는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를 취재하면서 살처분의 무시무시함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살처분殺處分.

사전에서 찾아보니 병에 걸린 가축 따위를 죽여서 없애는 것을 뜻한다. ‘살’은 죽인다는 것이고, ‘처분’은 일을 처리한다는 의미다. 죽여서 처리한다는 무시무시한 의미가 행정적이고 건조한 언어로 바뀌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쓰이고 있다.    

어느 농장에서 AI 양성 반응이 나오면 반경 몇 킬로미터 안의 수많은 닭과 오리들이 살처분된다. 한번 발생하면 전국적으로 많게는 3700만 마리에 달하는 멀쩡한 닭과 오리가 산 채로 땅에 묻혀 죽임을 당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염성이 높은 고병원성 AI 양성 반응이 나온 농장에서 반경 3킬로미터 이내 모든 닭과 오리 농장에 살처분 명령이 내려진다. 감염이 돼서? 아니다. 감염 여부와 상관이 없다. 확산되는 걸 예방하기 위해서다. 구획이 분리되면서 살처분 지역 농장에 취재를 갈 때는 기자들도 일일이 허가를 받고 특수 마스크와 방역복을 반드시 입어야 한다. 취재차량도 들어오고 나갈 때 소독해야 한다.  

살처분 대상 지역은 동네 전체가 초상집이다. 분위기를 과도하게 불안하게 몰아간다며 하나같이 언론에 적대적이어서 취재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취재차량이 지나가면 농가에서는 우리 들으란 듯 욕을 해댔다.

“얼쩡대지 말고 당장 꺼지라고!”

기자가 다가가면 웬만해선 말을 붙여주지도 않는다. 그 당시의 취재를 생각하면 죄인 같은 심정으로 다녔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마을에서 그나마 마음을 열었던 단 한 명이 있었다.  

     

육십 평생 닭을 키웠다는 농장 주인은 양계장 앞 평상에 앉아 줄담배만 피워댔다. 작업복은 닳아서 헤진 곳이 군데군데였다. 그는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도 쳐다보지도 않은 채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왜 멀쩡한 닭을 죽여, 왜….”




마이크를 들고 있었지만 카메라기자와 나는 평상 한쪽 모서리에 그저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을 가만히 바닥만 보고 있었다. 그랬더니 농장 주인은 자식 같은 닭들을 이렇게 묻어버리는 게 말이 되느냐, 목소리를 높이며 하소연을 시작했다. 주름진 얼굴에는 눈물보다 진한 땀이 고이고 있었다. 하루에 몇 만 마리가 살처분되고 있고, 방역의 부실을 지적하는 기사를 모든 언론이 자판기처럼 쓰던 때였다. 우리는 말없이 그저 함께 한숨을 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농장 주인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축사 안으로 들어갔다. 안은 텅텅 비어 있을 텐데 왜 들어가지? 카메라를 켜고 따라 들어가야 하는 건가 잠깐 고민하고 있는데 주인은 품에 뭔가를 한가득 안아 들고 나왔다. 계란이었다. 족히 열 판은 돼 보였다. 닭, 오리와 함께 달걀이나 오리알도 살처분 대상이다.  


“이거 먹어도 안 죽어! 안 죽는데 왜 묻으라고 하는 거여!”

그는 평상에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켠 다음 커다란 냄비에 물을 붓고, 거기에 달걀을 우수수 부었다. 먹어도 안 죽는다며, 땅에 묻어버릴 바엔 달걀을 삶아서 자기가 다 먹어버리겠단다. 진짜로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는지 한번 보라고 했다.

달걀은 요란하게 냄비에서 움직였다. 물이 끓을 동안 우리는 많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는 멀쩡한 닭인데 왜 묻어야 하냐고 우리에게 말해보라며 자꾸 다그치듯이 물었다. 방역복을 입은 우리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조금 움직여 바스락댈 뿐이었다. 삶은 달걀을 깠다. 순백의 흰자는 따스했다. 한입 가득 물었다.  


“너무 맛있네요, 어르신!”  


인간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병에 감염되지 않은 동물들을 무조건 죽이는 게 정말로 최선일까. 인간의 이기심은 어느 선까지 허용돼야 할까. 온기 남은 계란을 먹으며, 무엇이 옳은 것인지 가슴이 턱 막힌 날이었다. 퍽퍽한 기자 생활에 목이 멨다.


《이 매거진은 연재가 끝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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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이 포함된 에세이는 《오늘도 울컥하고 말았습니다》 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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