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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저 Oct 01. 2021

지하철 서바이벌 가이드― 3. 한강을 지날 땐 고개를

서울 서바이벌 가이드


아침의 지하철. 운이 좋으면 앉아서, 보통은 사람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기인 채 몽롱하게 눈을 감고 있거나 기어코 팔을 접을 수 있는 각도와 공간을 찾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지. 지하철 진동이 요람을 흔드는 정도로 익숙해.    


살짝 잠에 들었다 싶은 순간, 갑자기 지하철 안이 밝아져. 문 옆에 서 있던 너는 차가운 창문에 코 끝이 살짝 닿을 때까지 가까이 가서 한강을 쳐다보게 돼. 우리에게 사라지고 있던 낭만이 고개를 드는 유일한 시간이야. 풍경에는 값이 매겨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한강을 보며 그걸 보기까지의 희생과 값에 대해 생각하게 되지.  


지방에서 올라오면 가지고 있는 로망 중 하나가 한강이지 않아? 그 정도로 큰 강이 없을뿐더러 서울 생활의 상징이야. 지하철을 타고 가면 몇몇 호선은 한강을 건너게 되고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에서 고개를 들어 한강을 쳐다봐. 


그러고보면, 서울은 한강이야. 예전에는 한강 다리를 아는 것이 서울사람인지 확인하는 중요한 질문이었어. 한강 다리는 31개에 달하는데 택시를 타면 강북과 강남을 오가는 경우가 많았고, 그렇다면 막히는 곳들이 있어서 “어느 다리로 갈까요?”라고 기사들이 물었고, 우물쭈물하면 일부러 좀 돌아간다는 공포가 존재했었지. 그래서 한강다리를 줄줄이 욀 정도로 마스터하면 서울사람 다됐다는 소리를 들었고.    


한강의 기능 중 하나는 이방인들에게 첫사랑같은 강렬한 감정을 계속 상기시키는 것이애. 처음 서울에 왔을 때 한강을 봤던 기분, 그때 생각, 막연하지만 분명하기도 한 꿈 말이야. 소파에 누워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집과 그런 여유는 사실상 희귀하니까. 그래서 한강을 보는 이 짧은 시간, 소중해.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더니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했다…한강 너머…온몸으로 푸른 하늘을 인 채 수백 장의 금빛 비늘을 얌전하게 펄럭이고 있던 그것.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아! 63빌딩이다.


―김애란, 《자오선을 지나갈 때》,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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