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성공, 인정의 세 마리 토끼
“머슴살이를 해도 대감집에서 해라.”
이 말은 인터넷에 떠도는 격언(?)으로, 회사 생활은 기본적으로 머슴살이와 다를 바 없다는 자조이자 이왕 회사 생활을 할 거면 떨어질 콩고물이 상대적으로 많은, 처우가 좋은 대(大) 기업에서 회사 생활을 하라는 당부를 담은 말이다.
그간 두 개 나라 여덟 개 회사에서 다양한 머슴살이를 해온 나로서도 이 말에 어느 정도는 동의하지만 100% 동의할 수만은 없다. 대감집(대기업)과 여느 양반집(중소기업)을 오간 일곱 번의 이직 과정에서 그때그때마다 나에게 필요한 선택을 해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왕 지난 회사 생활을 돌아보는 큰 회고를 하기로 했으니 하나하나 떠올려 보자. 왜 그 회사를 선택했고 무엇을 얻었으며 무엇이 아쉬웠고 무엇 때문에 떠나기로 했는지. 그 속에서 누군가는 회사 선택의 기준에 대한 작은 힌트라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하며.
지금은 사명이 바뀌었지만 당시 사명은 B 게임즈로, 영화 및 게임을 제작하는 국내 중소기업이었다. 나는 앞서 언급한 메타버스 서비스인 ‘세컨드 라이프’의 국내 현지화 프로젝트 팀에서 약 일 년 반동안 서비스 기획자로 일했는데, 내가 맡은 프로젝트가 이 회사의 주력 아이템인 영화나 게임이 아니었기에 갓 신설된 프로젝트 팀에서 조금은 자유롭게 - 실적 압박 없이 - 일할 수 있었다.
팀원은 팀장 포함 7명 정도로, 멤버 대부분이 주니어인 팀이었다. 메타버스라는 전례가 없던 서비스를 다뤄야 하다 보니 이 분야에 경험 있는 사람 자체가 없어서 모두가 맨 땅에 헤딩을 하며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가야 했다. 때문에 나는 입사 첫날부터 메인 기획자가 되어 근본도 없이 일에 뛰어들어야 했다.
IT 회사의 서비스 기획자가 기획서를 어떻게 써야 하고 프로젝트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참고할 레퍼런스가 없었기에 이 시기의 나는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진심 전력을 다해 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어떤 서비스를 왜 만들려고 하는지, 그것을 기획서에 어떻게 담고 팀원들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해야 일이 잘 굴러갈 것인지 등, 각 과업의 목적을 0에서부터 정의하며 본능적으로 일했다. 돌아보면 이때가 가장 원초적인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며 일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환경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긍정적인 기억을 뒤집어 말하면, 보고 배울 게 그리 많지 않은 환경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후에 좀 더 규모가 큰 다른 회사들을 겪다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야생에서 살아남았다고.
첫 번째 회사에서 맡은 메타버스 프로젝트의 성과가 지지부진해 프로젝트 팀의 미래도 내 커리어도 막막해질 즈음, 한 대기업 IT 계열사에서 인터뷰 제안을 받았다. 메타버스 프로젝트 경험이 있는 사원급 서비스 기획자를 채용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당시 IT 업계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좁았고, 국내에서 메타버스 경험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기에 가능했던 일일 테다.
지나 보니 회사 규모가 작더라도 유니크한 프로젝트를 해봤던 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남다른 한 줄의 유니크함이 또 다른 커리어 확장과 연결될 수도 있으니. 그렇게 나는 두 번째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고, 일 년 뒤 내가 속했던 메타버스 관련 사내 CIC(Company-In-Company) 조직의 해체로 같은 S 대기업 내의 또 다른 IT 계열사로 이동해 세 번째 회사와 만나게 된다.
이 두 대기업 IT 계열사에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회사는 개개인의 기량이 아닌 시스템으로 굴러간다'는 것과 앞의 말과 얼핏 모순되어 보이지만 ‘세상에 날고 기는 사람은 많고 보고 배울 실력자는 도처에 널려 있구나’였다. 한마디로, 회사의 시스템에서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배울 게 많았다. 어찌 보면 체계화된 시스템 속에서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도 상향 평준화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당시 나는 사원에서 대리로 진급해 한참 일을 배워가고 성장하는 시기였다. 체계적인 업무 프로세스(기획 > 디자인 > 개발 > QA > 론칭 > 운영)와 경험 많은 선배들과 능력 있는 동료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문서, 대화, 미팅, 의사 결정 등의 레퍼런스를 재료로, 이후로도 내 업무능력의 바탕이 되어 준 기본기를 갈고닦을 수 있었다. 대기업이었던 만큼 연봉이나 복지도 첫 회사에 비해 나아졌음은 물론이다.
이대로 주욱 좋은 시간이 이어지기만 했으면 좋았겠지만, 모든 것이 좋기만 한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갈수록 대기업 IT 회사가 갖는 경직성과 한계를 목도하게 됐으니. 2009년 말, 한국에 아이폰 3gs가 첫 출시되고 2010년대 초의 한국 IT 업계는 PC 중심의 온라인 서비스들이 스마트폰 기반으로 빠르게 전환되어 가는 대전환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있던 이 대기업에서는 여전히 PC 중심 서비스나 피처폰 기반의 모바일 서비스를 놓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글로벌 SNS와 카카오톡, 왓츠앱 등 스마트폰 전용 메신저앱은 빠르게 시장을 점령해 갔고 PC 시대 SNS와 메신저의 국내 최강자였던 싸이월드와 네이트온을 운영하던 회사는 점점 메인 스트림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주력 서비스였던 포털, 메신저, SNS의 사용자수와 매출 지표만 봐도 회사가 위기를 맞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래도 좀 버티다 보면 다시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희미한 희망을 붙잡기도 했지만, 수많은 동료들이 줄지어 이직을 하는 광경을 목도하면서 나에게도 서서히 ‘이직할 결심’이 선다.
이직을 결심하면서 1순위로 가고 싶었던 회사는 ‘찐 IT 회사’였다. 한국에서 대기업이라는 간판을 떼고 IT 회사만을 놓고 봤을 때, 온라인 ‘플랫폼’이 그 기업의 핵심 비즈니스인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 회사가 1순위, 게임이라는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임 회사가 2순위. 회사의 DNA 자체가 기술 중심적이고 변화에 민감하면서도 이왕이면 업계에서 알아주는 그런 IT 회사들 말이다.
그렇게 무작정 몇몇 IT 회사에 지원서를 내고 인터뷰를 하던 2011년 말, N 포털의 자회사이자 당시 무서운 속도로 서비스를 확장해가고 있던 L 사의 한 계열사로의 이직에 성공한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회사를 가장 오래 다녔으며, 이 시기에 가장 많이 성장했고, 지나고 나서도 이 시절을 가장 그리워했으니, 어찌 보면 이곳에서 내 회사 생활의 전성기를 보냈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서비스가 잘됐다. 정말 잘됐다. 처음으로 내가 기획한 서비스가 시장에서 제대로 성공하는 단맛을 봤으니, 야근을 밥먹듯이 해도 신이 났다. 한 달에 한번 모바일앱 업데이트를 하는 사이클로, 매달 기획 > 디자인 > 개발 > QA > 업데이트 출시의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빠르게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듣고 이를 반영한 개선사항을 다음 업데이트에 반영할 수 있었고, 서비스가 잘 될수록 함께 앱을 함께 만들어가는 전체 팀워크도 단단해졌다. 동시에 서비스 성공에 따른 인센티브와 스톡옵션이라는 달콤한 열매 또한 주어졌으니 이때가 내 회사 생활의 리즈 시절이었음 부정할 수 없으리라.
더불어, 찐 IT 회사에서만 가능한 극강의 효율성도 경험했다. 100명이 조금 넘는 조직 중 열명 남짓의 기획 직군 대부분은 같은 식구인 N 포털이나 H 게임사, 혹은 다른 큰 게임 회사에서 넘어온 사람들이었고 경영진 역시 찐 IT 회사 실무에서부터 차근차근 올라온 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프로젝트 제안, 세부 기획, 디자인, 개발, 출시와 운영의 전 과정이 굉장히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였다. 이전 대기업에서 종종 만들어야 했던 ‘IT를 잘 모르는 경영진을 위한’ 별도의 추가 보고 자료, 일정한 폰트와 형식으로 한 바닥을 채워내야 하는 부서별 주간 보고 문서 같은 건 그 누구도 만들라 하지 않았으며, 의사 결정을 위한 핵심 정보들은 메일이나 위키에 요약되거나 실무를 위해 만들어진 기획서를 참고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IT 환경에서 더 빠르게 움직여 살아남기 위해 찐 IT 회사들이 본능적으로 취하게 된,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습성이리라.
이렇듯 대부분 장점만 기억나는 네 번째 회사와의 인연이 계속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남편의 싱가포르 발령을 계기로 가족이 싱가포르로 생활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아쉽게도 그 인연을 마무리하게 된다. 2017년 봄의 일이다.
2007년 겨울 처음 회사원이 된 이래로 2017년 봄 네 번째 회사를 떠나기까지, 돌아보면 새로운 회사를 선택할 때마다 나를 움직인 건 좀 더 성장하고 싶다는, 좀 더 성공하고 싶다는, 좀 더 인정받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중소 IT 회사에서 대기업 IT 계열사로 옮길 때는 ‘성장’과 ‘인정’, 즉 좀 더 체계적인 시스템과 축적된 레퍼런스를 갖춘 환경에서 업무적으로 마음껏 ‘성장’하고 보다 안정된 연봉과 복지혜택을 받으며 사회에서 더 ‘인정’ 받고자 하는 마음이 컸다. 대기업 IT 계열사에서 찐 IT 회사로 옮길 때는 ‘성장’과 ‘인정’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내가 한 일을 시장에서 제대로 ‘성공'시키고픈 열망이 더해졌다.
회사 생활을 하며 성장, 성공, 인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은 의지만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회사 생활은 다양한 조직, 수많은 사람들 사이의 역학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어느 정도의 행운도 따라줘야 한다. 어느 순간 얼핏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처럼 보여도 업계의 흐름은 변하고 사업은 부침을 거듭해, 손에 쥔 모래알이 새어나가듯 내가 쥐고 있다고 믿었던 성공과 인정이 어느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성장’은 그나마 유일하게 내 의지로 컨트롤되는 영역이다. 십 년간 네 곳의 회사를 거치며 깨달은 바다. 회사가 크던 작던, 시스템이 갖춰져 있던 아니던, 연봉이 많던 적던, 우리는 어디서나 성장할 수 있다. 어쩌면 성장은 성공과 인정의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기 위한 내 안의 힘을 기르는 훈련이 아닐까.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법이니, 지금 내가 성공과 인정에 목말라 있다면 오히려 성장에 더 몰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우리는 어디서든 성장할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기회를 보자. 이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