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조건으로서, 일, 사람, 돈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지난 회사 생활을 돌아보는 중이다. 이왕이면 내가 날마다 하고 있는 일에서 보람과 성취감과 느낄 수 있는, 즉 일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업계나 직무를 만나는 것이 첫째, 더불어 나에게 성장, 성공, 인정을 안겨줄 수 있으면서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나에게 잘 맞는 회사를 만나는 것이 둘째로, 결국 모두 ‘일’이라는 관점에서의 회고였다.
이제부터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관점에서 회사 생활을 돌아보려 한다. 회사 생활에서 얻는 긍정적인 감정들 - 보람, 성취감, 자부심, 인정 등 - 은 그때그때 다르긴 해도 일, 사람, 돈에서 고루 오지만 더 이상 이 회사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부정적인 감정들 - 분노, 모멸감, 좌절 등 - 은 대부분 사람에게서 올 때가 많은 것 같다. 돌아보면 남는 건 ‘사람'밖에 없다는 말도 있듯이, 회사 생활에서 ‘사람’은 중요한 요소다. 회사란 결국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일하는 곳이고 각자 역할을 맡아 때로는 갈등하고 때로는 협력하며, 싫든 좋든 그 성패에 대한 책임이나 보상을 나눠갖는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서 누구를 만났고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2007년 첫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여덟 개의 회사를 거치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여전히 생생히 기억나는 인상적이었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먼저 여전히 내 안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내가 만난 일잘러들에 관한 기억을 소환해 본다.
지나 보면 나는 사수 복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막상 천천히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다 그렇진 않았으니, 내가 사수 복이 있다고 기억하게 된 데는 아무래도 A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회사 생활 3-4년 차까지 나름 몇 명의 사수를 겪었는데 A는 그중에서도 ‘사수 = A’로 남을 만큼, 내 회사 생활의 기본기를 가르쳐 준 어미새 같은 존재였다. 일단 모든 일잘러들이 그렇듯 A는 일을 열심히 하고 효율적으로 하고 그래서 잘했다. 전체를 보면서도 디테일에 강했고 여러 지표를 통해 우리 서비스의 문제점을 찾아내는 분석적인 면과 더불어 생각지도 못한 방향에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던지는 직관적인 면까지 두루 갖춘 사람이었다. 당시 A는 우리 팀의 과장이었는데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웬만한 프로젝트는 혼자 맡아서 다 해낼 수 있음에도, 부사수였던 나를 신규 프로젝트의 메인 기획자로 올려 다방면에서 서포트해 주며 성장의 기회를 줬다.
이런 여러 장점들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A를 남다르게 만들었던 점은 본인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우리 회사가 밀고 있던 서비스는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로, A는 커뮤니티 서비스에 진하게 몰입해 있었다. 사실 회사원으로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기의 취향이나 선호와 매치되는 무언가가 직업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기에, 많은 회사원들이 일과 나를 분리해 일은 일대로 선을 그어 둔 채 흠뻑 빠지지 못한다. 온라인 서비스 기획자의 경우에도, 본인이 기획한 서비스를 업무시간 중에만 사용해 보고 업무 밖 일상에서는 아예 접속조차 안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서비스 기획자라면 본인이 기획한 서비스뿐만 아니라 경쟁 서비스나 다른 트렌디한 서비스의 사용자가 되어 사용상의 불편함, 새로운 니즈, 만족을 느끼는 포인트들을 직접 느껴보고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A는 이 점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국내외 온갖 SNS와 커뮤니티에 본인의 일상과 최신 화제에 대한 의견 등 개인적인 포스팅을 하는 걸 즐기고 거기서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꿰고 있었으며, 각 서비스별 기능과 사용자 분석을 통해 그 서비스 저변에 깔린 사용자들의 욕망을 읽어내려 했다. 왜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왜 이 기능의 사용빈도가 높은지, 왜 이 기능이 망했는지 등등, 틈틈이 의견을 나누고 관련한 책을 읽으며 짧은 세미나를 주재하기도 하는 등, A는 일에 진심으로 몰입하고 있었다.
하지만 간혹 몇몇 동료들은 A와 같은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걸 꺼려한다는 얘기도 돌았으니, 그 남다른 몰입과 에너지의 밀도가 누군가에겐 좀 유난스럽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120%의 속도로 달리는 A의 옆에서 같이 120%의 속도로 달리지 못한다고 비교당할 때마다 억울한 마음이 들 수는 있으니.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A를 찾았으니 A는 누가 뭐래도 회사의 핵심 인재였다. 나 역시 A와 함께 일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내 회사 생활의 거의 모든 기본기는 A에게서 배웠다고 할 만큼, A는 나의 절대 사수였다. A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동료 B는 특이한 사람이다. IT 회사나 게임 회사에 특이한 사람들이 많은 건 주지의 사실이지만, B는 그중에서도 백이면 백, 특이하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다. 일단 B와 대화를 하다 보면 많은 부분이 마치 연관 검색어와 연관 지식을 뱉어내는 검색 서비스에서처럼 ‘정보'를 쏟아내는 식으로 이루어지는 걸 느낄 수 있다. 실제로 B는 무언가를 모으고 저장하는 데 집착(?)하는 맥시멀리스트(Maximalist)로, 회사 업무를 할 때도 일단 모든 정보들을 아카이빙 해놓고 머릿속에서 인덱싱하는 방식으로 기억해 사람들이 물어볼 때마다 뚝딱 꺼내주고는 했다. 살아있는 위키피디아이자, 모든 걸 기록하는 사관이자, 시쳇말로는 기록 성애자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성격 탓에 B는 서비스 기획자로서 기존의 레퍼런스를 찾아내는 능력과 머릿속에 든 다양한 정보들을 조합하고 연결하는 능력이 탁월해, 서비스 내 신규 기능의 로직을 설계하거나 예외 케이스들을 정의하는 데 있어 남들이 생각지도 못하는 세세한 부분까지 빠짐없이 정의하는, 좀처럼 실수하는 일이 없는 기획자였다. 어찌 보면 천재과에 속하는 캐릭터로, 하나를 ‘디깅(Digging)’하기 시작하면 A부터 Z까지, 종으로 횡으로 파헤쳐 끝까지 밝혀내는 탐정 같은 집요함을 지닌, 실무자로서는 경외로스러운 재능을 갖춘 인재였다.
다만, 당시의 B는 본인이 뛰어난 만큼 다른 사람들의 부족함을 보는 걸 힘들어했던 것 같다. 본인이 맡은 일에만 집중할 때는 티가 안 났지만 팀원들에게 업무를 분배하고 팀원들이 해낸 업무 결과를 취합하고 책임져야 하는 팀장 자리에 앉았을 때는 매일매일 B의 신경이 곤두서고 날카로워지는 것을 모든 팀원들이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실무자로서 내가 맡은 업무를 완벽하게 해내는 역할과 팀장으로서 각기 다른 개성과 장단점을 지닌 팀원들이 시너지를 발휘하도록 조율하는 역할에는 완전 다른 역량이 요구되는데, B처럼 본인의 독특한 개성을 바탕으로 그 누구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온 실무자였다면 다소 평범한(?) 팀원들을 이해하거나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가 보여준 강렬한 개성과 뛰어난 업무 능력은 십수 년 넘게 회사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가장 임팩트 있는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사내 위키에 프로젝트 히스토리와 운영이슈 등 서비스 기획에 필요한 필수지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링크를 걸어 남겨두는 습관은 B로부터 시작되어 그 회사를 거쳐간 수많은 다른 기획자들에게 전파되었다. 나도 회사 생활을 하며 업무 매뉴얼이나 인수인계 자료를 꼼꼼하게 잘 정리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B와 함께 열심히 사내 위키를 업데이트하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B에게서 배워 나에게서 발전된, 내 무기 중 하나로써. B와는 나이도 비슷하고 연차도 비슷해 지금까지도 종종 서로의 회사 생활을 허심탄회하게 나누고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친구가 되었다. B 역시 나의 또 다른 회사생활의 스승이다.
C는 가장 최근에 만난 일잘러로, 내 전임자였다. 내가 C의 회사로 이직할 당시, 제법 큰 규모의 신규 프로젝트가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C는 이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회사 내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있는 주요 데이터를 통합하고 시각화하는 대시보드 프로젝트로, 프로젝트 매니저는 여러 국가의 다양한 요구 사항을 조율해 소스 데이터 인터페이스 방식, 데이터의 보관 방식과 갱신 주기, 주요 지표의 계산 공식과 시각화 방식 등을 결정하고 개발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한편, 일정, 비용, 확산 계획 등 프로젝트 전반에 대해 경영진에 적시 보고하고 의사 결정을 이끌어내야 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이 대시보드에서 다뤄질 회사의 주요 사업 지표에 대한 이해, 프로젝트 진행 경과에 대해 경영진과 소통하는 역할 등을 제외하면 프로젝트 진행의 많은 부분이 IT 프로젝트 리딩 경험 없이 해내기에는 쉽지 않은 것들 투성이었다.
C는 IT 프로젝트 경험이 전무한 베테랑 회계 전문가였는데, 당시 회사에서 공공연하게 행해지던 ‘본인 의사와 관계없는 부서 이동’의 영향으로 이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과정 속에서 치열하게 커리어 방향을 다시 고민하며 퇴사와 이직을 결정했고 그래서 나라는 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하게 된 듯했다. 어찌 됐든 인수인계 기간 동안 C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실로 놀라웠다. C는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본인 경력과 아무 관계없는 부서로 어느 날 갑자기 발령나 생소한 업무를 맡게 됐을 때, 당황하고 버벅대거나 경험이 없다는 핑계를 대며 적당히만 해내려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C는 그 상황에서도 본인이 정말 잘 해내야 한다고, 120%를 해내야 한다고 믿는 것 같았다. 기본적으로 이해력이 좋고 일머리가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에 갖다 놔도 기본 이상은 해낸다고 하지만, C는 기본 이상에 만족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 회사가 추진해 온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도 완성도 있게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책임이 본인에게 있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는 듯했다. 개발자들을 찾아다니는 시스템 구조에 대해, 개발 프로세스에 대해 배우고 질문하고, 이를 바탕으로 task를 나눠 일정을 짜고, 이해 관계자들을 만나 요구사항을 듣고 설명하고, 경험이 없던 분야인만큼 더 달려들어 밤낮없이 일하는 모습이 결코 퇴사를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후임자로서는, 이렇게 퇴사 전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엄청난 퍼포먼스의 전임자가 상당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무엇이 C를 이렇게 만들었을지가 궁금했다. C에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조심스레 추측해 보자면, 비록 본인이 원해서 온 자리는 아니었으나 그 자리에서 뭐라도 배우고 성장해서 얻어 가려는 강한 성장욕구, 어떤 일이 주어져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기대와 믿음, 그리고 회사원으로서의 강한 책임감이 그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던 C와의 만남 덕분에, 훗날 나에게도 그 공공연한 ‘본인 의사와 관계없는 부서 이동'이 찾아왔을 때 ‘나는 어디서든 배우고 성장하리라’는 긍정적인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하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C는, 내가 회사라면 언제든 모셔오고 싶은, 내가 만나본 가장 훌륭한 회사원이었다.
세 명의 일잘러를 돌이켜보며 깨달은 것은, '일의 기술’보다 '일에 임하는 태도'가 그들을 정의한다는 점이었다. A의 진심 어린 몰입, B의 집요한 완벽주의, C의 조건 없는 책임감.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고, 결국 내가 회사 생활에서 진정 얻고자 했던 '성장'의 스승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