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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의 배경

by Aaaaana


2014년에 방영한 ‘미생’이라는 드라마에는 박해준 배우가 연기한 ‘천과장'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드라마의 공식 인물 소개란에는 경력직으로 입사해 지지기반이 약한 캐릭터라는 설명이 붙는다. 드라마에서 천과장은 다른 회사에서 경력을 쌓고 입사해 회사 내 기댈 라인은커녕 입사동기도 없는 신세다. 입사초기 본인이 개발한 사업 아이템을 공채 엘리트 출신만 맡아온 아이템이라는 이유로 포기해야 했던 적도 있다. 정말 경력직으로 입사하면 이런 일들을 맞닥뜨리게 될까? 회사 내에 이런 식의 보이지 않는 ‘라인’이 정말 존재하나?


나름 십수 년간 여러 회사를 겪어온 경험에 비추어보면,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인 것 같다. 특히 한국에서는.


공채 vs 경력직

회사란 본질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조직이고 그 안에서 자연스레 조직 간, 사람들 간에 여러 이해관계가 생긴다. 내 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보니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라인을 만들고 그 라인에 속해있음으로써 안정을 느끼기도 한다.


특히 공채 vs 경력직이라는 구도는 대규모 공채 신입사원을 뽑는 한국의 대기업에서 흔한 일이다. 서류전형, 인적성 검사, 실무면접, 임원면접 등 동일한 선발 프로세스를 통해 수만 명의 지원자 중에서 선택된 공채 신입사원들은 몇 주간의 그룹연수를 통해 그 회사의 DNA를 주입하고 OO기업 공채 OO기로서 끈끈한 소속감을 갖는다.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확실한 로열티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나도 한국의 한 대기업에 경력직으로 입사했을 때 공채들과 출발점이 다르다는 걸 느낀 적이 있다. 조직이 작으면 상관없겠지만 2천 명이 넘는 대규모 조직에서 일은 일로만 되는 게 아닐 때가 많다. 조직 간의 관계, 사람 간의 관계, 업무 스타일, 우선순위, 그간의 히스토리 등, 보이지 않는 역학관계들 속에서 크고 작은 의사 결정이 이루어진다. 일례로 우리 팀에서 요청한 디자인 시안 제작이 갑자기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때 나는 디자인팀으로부터 다소 형식적이고 공식적인 답변만 들을 수 있었지만, 우리 팀 공채 출신 팀원을 통해 비공식 루트 - 디자인팀의 공채 동기 - 로 디자인팀의 내부 사정을 파악해 다른 전략을 취할 수 있었다. 그 밖에도 프로젝트의 방향이 바뀔 때, 조직 개편에 대한 소문이 돌 때, A팀장과 B팀장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을 때, 공채 출신들은 특유의 네트워크를 통해 빠르게 정보를 얻고 새로운 대응전략을 취해나가고 있었고 나는 멋모르고 있다 뒷북치기가 부지기수였다. 좋은 팀장과 사수를 만나 팀 내에서는 나름 주요 업무를 맡을 수 있었지만 회사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마치 지방 연극판을 전전하는 무명 배우처럼, 메인 무대에는 오르지 못하는 ‘무명 사원’이 된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이 구도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터였다. 적어도 내가 있던 대기업에서는 3-4년 정도 더 버티면서 나름의 네트워크와 신뢰를 만들어가면 이 구도는 극복 가능해 보였다. 나처럼 대리 즈음에 경력직으로 입사해서 차장, 부장까지 버티며 승승장구하는 분들이 얼마 안 되긴 해도 있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숫자로 봤을 때, 경력직으로 이직해 온 직원 자체가 소수였고 버텨서 ‘유명 사원’으로 살아남는 경력직은 소수였다. 물론 이건 한국 대기업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적어도 내가 겪은 중에는 그렇다. 커리어 성장을 위해 2-3년 주기로 이직하는 게 자연스러운 싱가포르의 회사 문화에서는, 한국 대기업식의 공채 vs 경력직의 구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 신입사원이야 몰라도, 3-4년 차부터는 대부분이 경력직 이직으로 커리어 전환을 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대규모 신입사원 공채를 통해 인력이 유입되고 그렇게 유입된 인력의 근속연수가 상대적으로 긴 한국 대기업에 한해서는, 공채와 경력직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한다. 하지만 절대적인 벽은 아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버티고 버티면 무너뜨리는 것도 가능한 벽이리라.


학연(學緣)과 사연(社緣)

공채 라인 외에도, 회사에는 다양한 라인이 있는데 그중 내가 본 인상적인 라인은 같은 대학이나 학과 출신으로 이루어지는 학연(學緣), 그리고 같은 회사 출신으로 이루어지는 사연(社緣)이다. 공채 선발이 인력 충원의 공식 루트인 대기업에서는 덜하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인재를 검증하고 영입해야 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 회사, 특히 IT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라인인 것 같다.


한국에서 한 IT 회사로 이직한 후였다. 회사는 입사 첫날 사무실을 돌며 전 직원에게 인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로,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그 회사에 지인이라고는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대학 출신은 좀 있었지만 같은 과도 아니었고 대학 시절 아는 사이도 아니었다. 같은 대학원 출신 후배가 한 명 있긴 했지만 같이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 아는 사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했다. 이전 회사가 겹치는 사람도 없었다. 그 회사에 나와 같이 공부했거나 일했봤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0에서부터 나를 증명하고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처지에서 또다시 시작해야 했다.


며칠 지나고 보니 회사에 몇몇 그룹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조직도상의 공식적인 팀 외에, A 대학 OO과 출신, B 회사 출신, C 회사 출신, 이런 식의 보이지 않는 그룹 말이다. 회사의 규모가 점점 커지며 신규 인력 충원이 될 때도 대부분의 인력은 A 대학, B 회사, C 회사 출신들로 충원되었다. 경영진은 두 그룹에 걸쳐있었는데, A 대학 출신이면서 B 회사 출신이기도 한 경영진이 둘 다에 걸쳐있는 새로운 인력들을 데려왔다. 그렇게 온 인력들이 요직에 앉았다. 다음으로는 A 대학 출신은 아니지만 B 회사 출신인 인재들, 그다음으로는 C 회사 출신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회사 내 권력 - 경영진의 신임 및 의사결정에 대한 영향력 - 을 차지하기 위한 세 그룹의 보이지 않는 경쟁으로 각 그룹들 간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하지만 상대 그룹에 대한 험담과 비아냥이 들리기도 했고, 긍정적인 방향으로는 상대 그룹보다 먼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나는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는 않았지만, 조직도 상으로는 C 회사 출신들이 다수인 팀으로 입사해 한참 뒤 B 회사 출신들이 주류인 팀으로 이동했다. 해당 팀의 인력 충원 요청에 따른 이동이었다. 나같이 어느 그룹에도 속하지 않은 ‘용병'들은 이런 식으로 팀을 옮겨 다니고는 했는데, 나는 이전 팀에서 들었던 이야기들 - B 회사 출신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나 험담 - 은 모두 잊은 채,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듯한 자세로 새로운 팀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어차피 어느 라인에도 속할 수 없다면 그저 내가 속한 공식적인 팀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동한 팀에서 추진한 프로젝트가 좋은 성과를 냈고 나 역시 그 성공의 열매를 나눠가질 수 있었다. 승진도 하고 인센티브도 받았다. 그 정도면 됐다 싶었다. 가끔은 B 회사 출신들이 다수인 그 팀에서 자기들끼리만 아는 얘기를 계속할 때, B 회사 출신 경영진이 B 회사 출신 팀원들만 데리고 프로젝트 성과를 자축하는 회식을 할 때,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막연한 소외감을 느끼고는 했지만 어차피 상관없었다. 결국은 나 그 자체로 살아남아야 하는 게 회사 생활이니까.


특히 IT 업계에서 이런 식으로 같은 학과 출신, 같은 회사 출신끼리 뭉쳐 새로운 팀이 세팅되는 걸 자주 본다. C레벨로 다른 기업에 스카우트된 임원이 이전 회사에서 자기 밑에 있던 직원들을 새로운 회사로 끌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디자인이든 개발이든 학부 때부터 같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회사를 창업하거나 같은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해 본 검증된 인재들을 모아 팀 세팅을 하는 게 안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괴나리봇짐을 멘 일꾼

그간 두 나라에서 여덟 곳의 회사를 거치며 나름의 성공과 좌절을 겪었다. 한국에서 대학원 졸업 후, 중소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대기업으로 경력직 이직도 해봤고, 메이저 IT 회사에서 성공도 맛봤다. 싱가포르로 삶의 터전을 옮긴 후에는 컨설팅 회사에서 잠깐, SMB 유통 회사에서 몇 달, 한국 대기업 해외지사에서 몇 년을 버티며, 그때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을 찾아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 다행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내 능력을 알아봐 준 분들이 있어 건너 건너 추천을 받아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봐 이직에 성공하기도 했지만, 어디서든 새로운 곳에서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나를 증명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대기업이나 공기업의 신입 공채, 규모 있는 IT 회사나 외국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면 그곳의 많은 분들이 그렇듯 그 회사에 쭉 다닐 수 있었을까? 지나간 시간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렇게 한 회사에 오래 근무하는 친구들이나 주변 지인들을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중소기업에서 일을 시작해 커리어 점프를 위해 첫 이직을 한 이래로 어쩌다 보니 꽤 많은 이직을 해왔는데, 매번 나름의 이유야 있었지만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한 회사에 장기근속하고 있는 상태로 이직을 고려하고 있는 지인들에게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과 함께, 정말 신중히 생각하라는 조언을 해주고는 한다. 한 회사에 오래 머물며 실력을 증명하고 네트워크를 쌓아온 자체가 이미 엄청난 로열티이기 때문에, 그 모든 로열티를 잃고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웬만한 각오로는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나는 한 회사에 오래 머물며 로열티를 쌓기에는 글렀다(?)는 걸 깨닫고, 생존을 위한 나름의 마인드셋을 장착해 왔다. ‘나는 괴나리봇짐을 메고 일거리를 찾아다니는 일꾼 OO 씨'라는 이미지 트레이닝이자 마인드셋이 그것이다. 어차피 어딜 가나 기댈 데 없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여, 그때그때 나라는 일꾼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나 스스로 성장하는 데 만족하고 성공 보수는 적당히 따라오면 좋은, 그런 마인드 말이다. 특히 중간에 5년 넘게 다녔던 회사가 너무 좋아 계속 다니겠다고 마음먹고 있을 즈음 갑자기 남편을 따라 해외로 오는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면서,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것이 나의 운명인가 싶어, 이 마인드셋은 더욱더 굳어졌다. 일단 신입 공채로 일을 시작한 게 아니니 공채 라인을 탈 일도 없고, 나름 남들이 알아준다는 대학을 나오긴 했지만 법학과 출신으로 IT 업계에 왔으니 같은 대학 같은 학과 출신을 업계에서 만날 일도 없었고, 한국에서 몇 번의 이직을 하면서 나름 나를 인정해 주는 동료들과의 연을 쌓아갈 무렵 싱가포르로 오게 되어 인간관계도 리셋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의 문화 자체도 이런 마인드셋을 굳히게 했다. 이곳에서는 2-3년마다 커리어 점프를 위해 이직을 하는 게 당연시되다 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 업무 능력 외에 다른 배경 - 앞서 말한 공채, 학연, 사연 등 - 은 그다지 영향력이 없었다. 같은 신입 공채 출신이라서, 같은 학교 학과를 나와서, 같은 회사 출신이라서 한 집단으로 여겨지는 법 없이, 그저 개개인이 자기 역량과 성과로만 평가되기 때문이다. 나만 괴나리봇짐을 맨 일꾼이 아니라, 모두들 비슷한 처지였던 것. 그래서인지, 이곳에서 나는 조금은 더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내 배경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음가짐이라도 바꿔보는 거다. 조금 쿨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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