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돈의 무게

by Aaaaana

회사생활을 지속하게 해주는 동력인 일, 사람, 돈 중에 ‘일'과 ‘사람'은 어찌 보면 지극히 상대적이다. 내 일이 세상에 쓸모 있고 나에게 의미 있는, 그래서 자그마한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일인지 판단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경험에 따라 달라진다. 회사에 서로 존중하며 함께 일하고 싶고 교류하고 싶고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판단도 그 사람의 성향이나 성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반면, ‘돈'이라는 기준은 보다 명확하고 직접적이다. 매월 통장에 정확한 숫자로 꽂히는 그 돈으로 먹고 입고 살고 있지 않는가. 먹고살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부정할 수 없는 대명제다. 돈을 안주는 회사를 다닐 이유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자원봉사를 하지.


매월 따박따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의 맛에 중독되면 웬만해서는 회사를 끊을 수 없다. 하지만 돈이 과연 다른 모든 조건을 뛰어넘을 만큼 절대적일까? 무조건 돈을 많이 주는 회사가 좋은 회사일까? 일은 겁나게 고되고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들만 넘쳐나는 회사여도 돈만 많이 준다면 망설임 없이 갈 수 있을까? 돈은 좀 덜 주더라도 일도 적당히 보람 있고 사람들도 무난한 회사가 더 좋은 회사 아닐까? 언뜻 절대적인 숫자로 보이지만 어쩌면 그 상대축에 다른 무언가를 올려놓음으로써 그 진정한 가치가 매겨지는 게 바로 회사생활에서의 ‘돈' 아닐까?


이쯤에서 내 회사생활에서의 ‘돈'에 대해 돌아보려 한다. 나는 어떤 돈을 받아왔고 그 돈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나는 그 돈의 무게를 어떻게 매기고 그 돈은 어떤 식으로 나를 위로했을까?


회사원의 ‘돈’

기본적으로 회사원이 받는 돈은 ‘노동의 대가’다. 노동자로서 내가 가진 경험과 기술, 회사가 나에게 거는 기대치가 반영되어 연봉이 결정되고 매월 월급으로 주어진다. 때로는 매월 주어지는 월급 외에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 돈은 ‘내 노동이 만들어낸 결과에 대한 인정’이다. 그 밖에도 우리 사주, 스톡옵션, RS(Restricted Stock) 등 다양한 방식으로 회사의 주인이 될 권리를 제공받기도 한다. 이는 성과에 대한 인정임과 동시에 회사 입장에서는 인재 확보를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2007년 겨울 첫 월급을 받았을 때 나는 그저 내가 일을 하고 돈을 벌었다는 자체에 감격했다. 실수령액 200만 원이 채 안 되는 중소 IT 회사의 신입 초봉이었지만 부모님 집에서 출퇴근하는 덕분에, 받은 월급 대부분을 차곡차곡 통장에 쌓을 수 있었고 노동의 대가를 받는 사회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마냥 뿌듯했다. 두 번째 회사인 대기업 IT 계열사로 이직하고 나서야 비로소 대기업 직원들과 엇비슷하게 월급을 올릴 수 있었다. 이 회사에서는 고작 1년 근무했지만 그 사이 회사가 상장을 하면서 운 좋게도 우리 사주를 배정받는 혜택을 누렸다. 이때 처음 증권 계좌를 개설하고 주식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세 번째 회사는 두 번째 회사에서 계열사 이동으로 옮기게 된 거라 연봉을 크게 올리진 못했지만 피쳐폰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환되는 시기였던 만큼 회사에서 모바일 요금제와 최신 스마트폰을 지원해 줘서 신나 했던 기억이 난다. 네 번째 회사는 가장 오래 다니기도 했지만 회사의 설립 직후 합류해 회사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함께 했기에 가장 다양한 형태의 보상을 받았다. 연봉은 평범했지만 회사가 성장하는 만큼 흡족한 인센티브가 주기적으로 통장에 꽂혔고 마침내 회사가 주식시장에 상장하면서 모든 직원이 스톡옵션 형태로 성공의 과실을 나눠갖기도 했다. 스톡옵션으로 떼돈을 번 건 아니지만 나와 동료들의 노력으로 우리 서비스가 시장에서 성공하고 회사가 상장해 모두의 노력이 인정받은 듯해, 주식 계좌를 볼 때마다 뿌듯했다.


싱가포르로 이주한 후 입사한 다섯 번째 회사에서는 당연하지만 싱가포르 현지 화폐인 싱가포르 달러(SGD)로 연봉협상을 해야 했다. 환율을 감안하더라도 보통 싱가포르가 한국보다 연봉 수준이 높기 때문에 한국에서 받던 연봉을 기준 삼는 게 불리할 뻔했지만 여기에 약간의 행운이 따랐다. 직전회사에서 받은 소득을 증빙하는 서류로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근무한 2017년도 1-3월까지의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영문본을 제출했는데, 그 해 1월에 있었던 연봉인상과 인센티브가 연간 총소득에 반영되어 월평균 소득이 꽤 높게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꽤 괜찮은 연봉계약을 하고 내심 뿌듯했지만, 이때 처음으로 돈을 많이 받는 게 마냥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첫 해외취업이었던 이 다섯 번째 회사에서 나는 영어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날마다 좌절과 극복을 반복하며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곧 죽어도 당장은 내가 받은 돈만큼의 퍼포먼스를 낼 자신이 없었고 회사와 동료들이 주는 무언의 압박을 버텨낼 만한 뻔뻔함도 없어 하루하루가 괴롭기만 했다. 회사원으로서 ‘받은 만큼은 해내야 한다'는 노동윤리를 지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돈을 받으면서 영어연습부터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결국 여섯 번째 회사로 옮겼다. 이때 월급은 정말로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월급이 주는 부담을 덜어낸 채로 회사생활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매일 영어로 일하는 환경에 노출될 기회를 만들면서 계속해서 실력을 갈고닦으면 월급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거라는 남모를 자신감도 있었다. 높은 싱가포르 월세와 물가에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지만 그렇게 절치부심한 후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회사에서는 다시 연봉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돈의 무게 계산법

돈에 대한 욕망은 사람마다 다르다. 돈은 무조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사람이 상당수겠지만 적당히 먹고 살 정도만 있다면 돈에 집착하지 않고 살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나는 후자에 가까운 편인데, 일단 내가 수백억 자산가가 될 리가 만무하기 때문에 돈이 너무 많은 상황을 굳이 상상하는 수고를 들이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고 왜인지 모르지만 돈의 이면에는 숫자로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대가가 따른다는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노동의 대가이자 성과에 대한 인정으로써 회사에서 받는 돈의 경우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르며, 그 무게를 가늠하는 것도 단순하지만은 않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람에게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비록 그전에 해본 적이 없는 역할이더라도, 그걸 해내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닦아 결국은 그걸 해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걸 잘해서 그 역할을 맡기는 게 아니라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키워내는 전략, 즉 회사가 취하는 고도의 ‘동기부여’ 전략이기도 하다. 이 말을 ‘받은 만큼은 돈값을 해야 한다’는 노동윤리에 접목해 보면 ‘자리=받는 돈’이 될 것이고 결국 ‘받는 돈이 사람을 만든다’로 치환된다. 회사가 내게 그만큼의 돈을 주는 건 그만큼의 성과를 만들어낼 거라는 기대와 그걸 해내야 한다는 약속이다. 비록 지금은 그 정도 성과를 못 내고 있더라도 너는 하루빨리 이 돈값만큼 성과를 내야 하고 그것을 해내지 못했을 때에는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압박인 것이다. 때문에 연봉협상을 할 때는 그 돈의 의미에 대해 신중히 고찰해야 한다. 아무런 기대 없이 주어지는 수십억의 복권 당첨이라면 기꺼이 받아도 뒤탈이 없겠지만, 그것이 회사에서 주어지는 연봉이라면 그 무게를 다각도로 재 볼 필요가 있다.


가령 지금 받는 것보다 20% 높은 연봉을 제시받았다면 일단 지금보다 20%는 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업무 환경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더 나은 상황이라면 말이다. 그 20%의 약속이 내 잠재된 능력을 끌어올리고 나를 더 성장시키는 강력한 동기가 될 수도 있으니 돈도 더 벌고 그만큼 성장도 할 수 있으리라 긍정적으로 기대해 봄 직도 하다. 돌아보면 한국에서의 했던 세 번의 이직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했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보통은 그 20%의 무게를 계산하기 위해 회사생활의 다른 여러 요소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가령 건강을 해칠 정도로 밤낮없이 일해야만 하는 상황에 대한 위험수당, 인력 대부분이 신입이라 0에서부터 다 가르쳐가며 나 홀로 3인분을 해내야 하는 추가역할에 대한 기대수당이 이 20% 안에 숨어있을 수도 있다. 이때는 20%가 추가된 ‘돈’이라는 무게추의 맞은편에 그 일의 의미, 그 일을 하는 업무 환경, 함께 일할 사람들 등 회사생활의 다른 여러 요소들을 올려놓고 그 돈의 가치를 다시 따져봐야 한다. 그렇게 다시 계산해 보면 그 돈이 20%가 아닌 10%, 5%, 어쩌면 -10%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렵다. 회사에서 받는 돈은 숫자로 보이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 특히 내 경우엔 해외 살이를 시작한 이후로 유독 이런 어려움을 겪었다. 숫자로 보이는 돈은 명확했지만 그 상대편에 올려놓을 회사생활의 여러 요소에 대한 정보와 경험이 한국에 비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3개월 만에 그만둔 다섯 번째 회사의 경우, 꽤 만족스러운 연봉협상을 했지만 그 연봉이 그 돈값을 해내기 위해 쏟아부은 내 심신의 고통을 상쇄하지 못했다. 여섯 번째 회사의 경우 받는 돈은 적었지만 부담 없이 영어환경에 스스로를 노출시킬 수 있는 업무 환경에서 얻는 만족감이 그 돈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숫자로 표현되지만 단순히 보이는 숫자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는 아이러니다.


돈의 위로 - 일당 치환법

돈과 관련해 한 가지 더 공유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회사생활의 다른 모든 요소가 나를 괴롭게 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쓰는 극약처방이긴 한데, 순수하게 돈에서 위로를 받으며 버티는 방법에 관한 팁이다.


한참 회사 생활이 힘들 때 회사 건물 입구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을 지날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오늘도 일당을 벌자. 월급을 20일로 나누면 그것이 내 일당. 나는 시간을 파는 노동자. 내 8시간을 팔고 오늘도 소중한 일당을 벌자. 이 정도 일당은 그 어디에서도 얻기 힘들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그 무렵엔 그랬다. 내가 하는 일은 참 의미 없고 쓸데없어 보였고 회사 사람들은 다 영혼 없이 앉아있는 좀비같이 느껴졌다. ‘월급÷20’이라는 이 일당 치환법은 회사에서 하루 8시간을 버텨내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었다. 일당은 월급에 비해 훨씬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대체 왜 이런 쓸데없는 보고서를 써야 하는지 납득은 안되지만 여기저기에 데이터를 달라고 애걸복걸하며 하루 종일 보고서를 붙잡고 있거나 매번 똑같은 얘기만 하는 미팅에 몇 시간째 불려가 있더라도, 이 일당 치환법 - 나아가 일당을 8로 나누는 시급 치환법 - 을 도입하면 ‘아 이런 쓸데없는 일을 하고도 OO를 벌다니, 개꿀이네!’라고 제법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매일 아침 일당을 벌자는 심플한 마인드로 자기 암시를 했더니 그 회사에서 한 일 년 정도는 더 버텨낼 수 있었다. 물론 일 년 365일 내내 그랬던 건 아니고, 이 일당 치환법의 약발이 떨어질 때마다 아주 가끔은 성취감 비스름한 뭔가가 스쳐갔기에 그래도 일 년이나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어쨌든 이 일당 치환법을 통해 괴로운 시간들을 꽤 버텨내고 결국은 계획한 대로, 충동적이지 않은 퇴사를 했으니 적어도 나에겐 이 방법이 회사에서 ‘존버'하기에는 꽤 유용한 치트키였음에는 틀림없없다.


keyword
이전 07화회사원의 배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