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다섯 번째 영화, 아가씨를 보고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을 말한다면 이제 누가 뭐라 해도 봉준호가 0순위로 꼽히지만, 그 이전에는 박찬욱이 있었다. 김기덕, 홍상수, 임권택처럼 너무 작가영화를 표방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색깔이 확실한 감독. 식상한 표현으로 대중성과 작품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감독이었지만, 나는 그 대중에 속하지 못했었다. 강점이기도 한 그 ‘자기 색깔’이 나와는 맞지 않았던 탓이다. 친절한 금자씨를 마지막으로 15년 이상 그의 영화를 본 적이 없는데, 보고 나면 그 말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찝찝함이 남기 때문이다. 블랙 미러의 한 10,000배 정도 남는다.
당연하게도 그 자기 색깔이 이번 작품에도 진하게 남았고, 여전히 눈살을 찌푸리는 장면이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고문과 사지 절단을 좋아하는지. 그런데도 이전 작품보다는 상당히 순하게 느껴진 영화였다. 눈을 정화해주는 화려한 세트가 한몫을 했고, 김민희와 김태리 두 주인공과 어디서나 능글능글한 하정우까지 가세해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진 덕분이다. 역대 최악의 캐릭터를 연기한 조진웅이 주로 등장하는 후반부에서는 박찬욱 영화의 색이 진하게 묻어나왔지만, 그전까지는 영상미가 너무나도 뛰어난 한 편의 아름다운 사기극이었다. 암울하고 어둡지 않아서 좋았다. 물론, 후반부는 여러모로 역겹고 끔찍하지만.
영화는 크게 3부로 나뉘어 있고, 부마다 어느 정도 겹치는 시기가 존재한다. 같은 사건을 다른 캐릭터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방식으로 연출이 되기 때문인데, 그래서 1부는 상당히 압축적으로 진행된다. 즉, 굉장히 속도감 있게 전개되기 때문에 초반부터 바로 빨려들게 된다. 그리고 2부와 3부는 각각 이전에 흘리고 간 떡밥들을 회수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상당히 촘촘히 잘 연결된 느낌을 준다. 영화 보는 내내 원작은 도대체 얼마나 재밌을까 싶었는데, 원작에 해당하는 부분은 1부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800페이지에 달한다고 하여 포기 :)
이전에 본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 모두 복수를 소재로 한 영화이고, 결론만 놓고 보면 복수는 이뤄진 셈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끝이 개운치가 않았었다. 개운한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찝찝했는데, 이번 영화는 유독 상쾌(?)한 느낌이다. 후반부에 김민희가 남장하고 떠나는 모습 등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진 탓인지, 정확히 이유를 짚어내진 못 하겠다. 혹자는 이 영화를 박찬욱 표 로맨틱 코미디라고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이전 작품들에 비하면 분위기가 밝아진 면이 있는 것 같다.
최근 4~5편의 영화 중에서는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라서 오랜만에 박찬욱 관련 자료를 많이 보고 있다. 영화를 보지 않아 킵해뒀던 방구석 1열 아가씨 편도 보고 나니, 또 다른 영화도 보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박쥐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는 손이 가지 않아, JSA를 찜한 리스트에 추가했다. 무려 20년 만에 다시 보면 뭐가 새로 보여도 보이지 않을까. 최근에 본 펄프 픽션처럼 완전히 새로운 영화처럼 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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