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네 번째 영화, 어스를 보고
2년 전, 겟 아웃을 처음 봤을 때의 그 충격은 상당했다. 그냥 넘어가는 장면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굉장히 짜임새가 좋았다. 메시지가 강했음에도 그 메시지를 티 나게 주입하는 장면이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영화 속 다양한 상황과 설정을 통해 관객 모두가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되는 것, 그것이 세련된 스토리텔링이자 매우 영리한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영화를 볼 때는 기묘하게 보인 행동, 예를 들면 관리인이 갑자기 전력 질주를 하거나 가정부가 혼자서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것 등이 영화를 보고 나면 모두 납득이 된다.
그러니 조던 필 감독의 차기작인 어스는 기대작일 수밖에 없었다. 포스터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러나 막상 개봉 이후 평이 안 좋아서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보게 됐다. 평이 안 좋아서 기대치를 많이 낮추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지루하게 봤다.
겟 아웃의 매력은 수많은 떡밥이 모두 깔끔하게 회수됐다는 점이다. 그런데 어스는 메시지에 함몰된 나머지 회수할 생각조차 없는 과한 설정을 아무렇지 않게 깔고 시작한다. 왜 갑자기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전작처럼 영화 밖의 사람들이 보기엔 기묘한 행동들이 영화 속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표현된 뒤, 후반부에서 퍼즐이 맞춰지듯 찜찜함이 해소되길 기대했지만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물론, 중요한 반전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일 뿐, 영화 속 세계관에 대한 이해와는 별개다.
그리고 영화의 기대치가 액션이 아닌 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절반 이상은 쫓고 쫓기는 액션에 할애된다. 왜 싸우는지도 모르겠는 그 싸움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언제쯤 이 세계에 대한 설명이 나올까 기대를 했는데, 그저 피 튀기는 싸움만이 이어질 뿐이다. 더군다나 주요 도구가 가위라서 꽤나 잔인하게 묘사되기 때문에, 슬래셔 무비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편하게 보기는 힘들다.
겟 아웃에서 ‘겟 아웃’이라는 대사가 결말을 알고 볼 때랑 모르고 볼 때랑 다르게 받아들여지듯이, 이 영화의 제목도 중의적인 표현으로 쓰였다. ‘우리’라는 의미와 ‘미국(United States)’이라는 의미. 그래서 겉보기와는 달리 현재 미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담겼다고 한다. 미국인이 아니라서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점을 차치하고라도 영화 밖의 것들을 갖고와야만 영화의 숨은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계층 사회에 대한 메시지가 담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영화 속 설정만으로도 그 의미가 잘 드러나는 점과는 대조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조던 필 감독의 신작은 기대하게 된다. 이번에도 돈 안 쓴 티가 팍팍 나는데, 이렇게 독특한 연출이 빛나는 저예산 영화를 좋아한다. 샤말란 감독이 대표적이고, 니콜 키드먼 주연의 도그빌도 이런 류에 해당된다. 감독 특유의 상상력과 분위기는 유지하면서, 상징과 은유도 좋지만 다음 영화는 좀 직설적으로 다뤄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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