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야 Dec 22. 2022

외동아이를 키운다는 것.

귀하디 귀한




"둘째는 안가져요??"

외동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사실 이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손에 꼽는다. 남편과도 둘째에 대한 계획을 식탁에서 한번도 나눠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가 예전에 가졌던 외동에 대한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났기에 이글을 쓰고자 한다.


 사실 첫째도 계획으로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둘째는 계획으로 더더욱 가지지 않게 되었다. 남편과는 오랜 연애기간 끝에 결혼을 했다. 당시 둘다 적지않은 나이의 사회 초년생에다 부모님 도움을 1원 한푼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남들과는 비교할수 없을 만큼 귀여운(?) 금액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임용고시에 미련을 못버리고 신혼때에도 독서실을 다니며 공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꿈에서 아기 백호가 나를 와락 껴안는게 아닌가.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그렇게 첫딸이 나에게 와주었다. 딸에게 미안하지만 임신소식은 나에게 절망과도 같았다.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는 공부를 해야 하는데.. 시험장에서 몇시간을 앉아있고 고된 면접도 치뤄야 하는데 임신이라니.. 남편은 피우던 담배를 곧장 쓰레기통에 쳐박으며 벌써부터 희생모드에 돌입했지만 나는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다. 새로운 생명은 미래를 방해하는 장애물같이 느껴졌다. 시험은 끝내 좌절되었지만 아이는 예쁘게 쑥쑥 커갔다.


 외동을 선택한 이유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컸음을 고백한다. 결혼하는 순간부터 한사람 월급을 몽땅 저축하고 집을 옮겨다닐때마다 대출을 하고 그렇게 또 갚아나가고를 반복하면서 다시 맞벌이로 정착하여 어느정도 경제적 안정선에 오르기를 원했다. 사실 아이를 둘을 낳는다고 해서 돈이 2배로 드는것이 아님은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였기에 경력단절기간을 최소한으로 하고 맞벌이에 다시 돌입할수 있었다. 가난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안정상태(순전히 내맘대로 기준)를 만들어놓기까지 최대한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원래 K-장남, 장녀로서의 경제적, 정신적 무게도 적지 않을 뿐더러 각자의 형제관계에서 느끼는 만족이나 필요성도 부족했다.


남편에게 물어본적이 있다. 서로 경제적 이유로 외동을 암묵적으로 동의했지만 신랑의 입에서 더욱 구체적인 대답이 듣고 싶었다.

  '지금도 너에 대한 애정이 딸에게 반이상 갔는데 둘째가 생기면 더 나눠야 할 것 아니야? 그럼 너 불만이 더 커질 것 같은데? 무슨 개똥같은 소리인가. 고귀한 사랑은 무한대 아니던가. 하지만 사실이다. 자식을 늘리면 늘릴수록 만족감은 배가 될수 있지만 어차피 내가 쏟을 수 있는 경제적, 정신적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첫 아이를 4살정도까지 키우니 또래 친구들이 하나둘씩 동생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약간 그랬다. 엘리베이터에서 친구동생과 마주친 딸아이는 자기도 동생이 갖고싶다며 울었다. 미안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둘째를 고민하지 않았다. 우유부단의 극치인 내가 자녀계획에서만큼은 이리 단호하다니.


흥미로운 것은 시댁에서도 둘째에 대한 언급을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다. 환갑도 되지 않은 시어머니는 고만고만한 나이의 터울 손녀손자들을 3명이나 줄줄이 보셨으며 생계를 책임지시느라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으리라 본다. 친정아버지는 "그래도 둘은 낳아야지..."라고 딱 한번 말씀하셨지만 목소리 큰 내가 엄포를 한번 놓은 이후로는 일절 입을 닫으셨다.


 외동아이를 키우는 현재 매우 만족(★★★★★)이다. 아이와 더 많이 상호작용 할 수 있고 안아주고 속삭여준다. 혼자서도 잘 놀며 동생이 갖고 싶어한다는 말로 내 가슴을 철렁거리게 하지 않는다.(아이는 이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이제 동생이 필요없다는 자기말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인지) 아무튼 내년에 8살이 된다. 우리 셋은 각자의 인격체로서 동등하게 존재한다. 물론 기본적 의식주를 책임지고 훈육이 필요할땐 따끔하게 하지만 놀때는 친구같은 셋이다. 서로 삐지고 달래주며 하나는 중재한다. 어른의 세계와 아이의 세계에서 서로 넘나들며 존중해주려 노력한다. 또한 하나이기에 부모 중 누구하나를 닮았느니 이런것에 치우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외모조차 누구하나를 뺴닮지 않았다. 마치 두가지 색상을 고루고루 섞어서 새로운 색상과 빛을 가진 아이같다.  


단점도 물론 있다. 그저 하나이기 때문에 오는 근원적인 불안감은 평생 안고 가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좀더 컸을때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경우 아이입장에서는 쓸쓸함은 걱정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아이가 형제자매가 없는 것에 대한 어떤 가치관을 형성하게 될지 궁금반 걱정반이다. 


외동이라고 이기적이거나 버릇이 없다는 것은 옛말인 것을 교직현장에서 보았다. 외동에 대한 그런 시선들에 사로잡혀 있을때쯤 학교에서 정말 이쁜 아이들을 보며 "너는 오빠나 동생이 있어?" 라고 은근슬쩍 물으면 '아니오'라고 대답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속으로 '앗싸' 를 외쳤지만 사실 형제유무가 그 아이를 결정짓는 요인이 아님은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남편 왈,

"외동가족이지만 우리집에는 딸이 둘이잖아"

아차, 내가 첫째딸이었지. 철부지가 조금 모자란 덕분에 나는 온가족이 인정하는 우리집 첫째딸이다. 둘째딸에게도 때론 언니같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돌고 돌아 영어전담교사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