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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현 May 14. 2018

하정우는 왜 혼자 탕수육을 먹었을까

음식여담(飮食餘談) 6 - 탕수육의 단맛


최형배는 구석진 테이블에서 혼자 탕수육을 먹고 있었다. 부하들은 멀찌감치 떨어진 입구 쪽에서 담배를 피우며 엽차로 목을 축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는 탕수육을 다가 소주로 입을 헹궜다. 그리고 마침 찾아온 최익현에게 담담하게 말한다. 죽이지는 않겠다고. 살풍경한 그곳은 부산의 중화요릿집 동궁, 바로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한 장면이다.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말하며 먹는 탕수육은 어떤 맛일까. 침 넘어가면서도 긴장되는 이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은 하나다. 영화가 끝나면 나도 어서 나가 허름한 중화요릿집 구석에 앉아 탕수육을 시켜야지. 그리고 탕수육 한 점 먹은 뒤 독한 술로 입을 헹굴 거야. 하정우처럼.


하지만 그 바람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홀로 탕수육 시켜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것은 좀처럼 다다르기 쉽지 않은 경지다. 돈보다는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담배 꼬나물고 입구 지킬 부하도 없는데.


용기 내 제법 당당하게 혼자 탕수육과 소주를 주문하더라도 난관은 이어진다. 점원의 갸우뚱한 표정. "왜 혼자서 탕수육을?"과 "술안주로 탕수육을?" 사이에 있다. 그것은 그럴듯한 영화와 달리 탕수육이 혼자 먹기에도, 또 술안주로도 적당하지 않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하정우처럼 홀로 멋들어지게 먹고 마시고 싶었던 마음 굴뚝같지만, 탕수육의 맛은 여럿이 함께 모여 먹는 음식이라는 정서와 맞닿아 있다. 그것은 이름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탕수'의 한자를 보면 사탕 당(糖)에 식초 초(醋)를 쓴다. 달고 신맛이 나는 고기인 셈이다. 달기 때문에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좋아하고 시기 때문에 단맛이 과해도 물리지 않는다. 탕수육이 대표 가족 외식 메뉴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조사를 했는지 모르지만 가정의 달인 5월이면 탕수육 소비가 급증할 것만 같다.


가족이 아니라도 좋다. 야근 중에 동료들과 함께 중국 음식을 주문할 때도 누군가 호기롭게 탕수육을 추가한다면 짜장면 그릇 떠나지 못했던 젓가락들이 탕수육 접시 위에서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그 넉넉함은 피로를 잠시 잊게 한다.


하지만 온 가족을 하나 되게 하는 이 단맛의 시작은 애달프다. 다른 중국 요리엔 좀처럼 없는 탕수육의 단맛은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파렴치한 전쟁인 '아편 전쟁'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영국이 중국에서 막대한 양의 차를 수입하면서 생긴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아편을 중국에 팔다가 일어난 전쟁, 이 전쟁에서 패한 중국은 강제로 개항해야 했고 급기야 이주해 살던 영국인들의 입맛에 맞춘 음식을 내놓기 위해 달콤한 소스를 뿌린 탕수육을 개발했다고 한다.


이처럼 가족적이지만 동시에 제국주의적인 탕수육의 단맛은 술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명성 짜한 화상 중식당에서 술과 함께 탕수육을 주문했더니 주인장은 준엄하게 꾸짖기까지 했다. 탕수육은 단 음식이니 다른 요리를 먼저 먹고 맨 마지막에 시키라는 것이었다. 아저씨가 뭔 상관이냐며, 탕수육을 제일 먼저 달라고 볼멘소리를 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의 말은 틀린 게 없다. 탕수육의 단맛은 위를 자극한다. 술 흡수를 더디게 만들어 위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안주로 적절하지 않다.


요사이 탕수육을 두고 많이 얘기하는 '부먹'과 '찍먹' 역시 이 단맛과 관련이 깊다. 튀김의 바삭함은 차치하고 단맛을 흠뻑 즐기고 싶다면 '부먹'을, 단맛을 줄이고 싶다면 '찍먹'을 선호하기 십상인 것이다.


다시 부산의 동궁으로 돌아가 본다. 최형배는 왜 혼자 탕수육을 먹고 있었을까. 부먹이든 찍먹이든 가족적이거나 제국주의적이거나, 탕수육은 함께 먹어야 제맛일 텐데. 애먼 엽차만 축내고 있던 부하들과 탕수육을 나눠 먹었다면 그의 결말도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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