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옅어졌던 내가 다시 선명해지기 시작하던 순간
달리기를 할 때, 앞에 누군가 있으면 더 힘이 든 느낌이죠. 간혹 우리가 사는 게 버겁다 말하는 건, 타인의 삶을 쫓으려고만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백영옥 작가님의 에세이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중엔 이런 글이 있는데요.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정말로 ‘나의 야망’인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몰려 쫓기듯 하고 있는 일을 자기 의욕으로 착각하고 나를 소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물어보는 일이다.'
인지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님께선 한 강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want와 like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want는 모두가 가지고 있는데 나만 없는 것이고, like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다.’
이 둘을 잘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조하십니다. 초점이 나를 향해야 한다는 말씀이겠죠. 내가 정말 좋아하는 like가 무언지 알고 있는 삶은 극명히 다르리라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역시 ‘다름’은 참 두렵습니다. ‘일반적인 길’이 ‘가장 옳은 길’이라 믿어지곤 합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 완벽히 다름을 알면서도, 그렇기에 삶도 다를 수밖에 없단 걸 이해하면서도 그들과 발을 맞추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적어도 틀리진 않았단 안도 때문일까요. 나 혼자 결이 다른 꿈을 품고 있단 느낌이 들 때, 대열을 이탈해 나아가고 있단 판단이 설 때 가장 먼저 몰려오는 건 불안입니다. 이를 어찌 받아들이고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지 늘 어렵습니다. 사실 차분히 생각해보면 일반적이기에 정답이라 단정 지을 수도, 비 일반적이기에 오답이라 단정 지을 수도 없는 건데 말이에요.
# 2
해서 잠시 멈추어보려 합니다. 특정한 틀을 두고 틀릴 리 없다고 섣불리 믿고 있는 건 아닌지. 그 틀 안에 저를 껴 맞추어야 하는 수고는 잊은 채 거짓 안도에 숨으려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따져볼 필요를 느낍니다. ‘무얼 하면 좋을지 주변을 살피는 일’ 보다 ‘무얼 하고 싶은지 스스로 살피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할 테니까요. 개인으로써 마땅히 존중받길 원하지만 저부터도 저를 존중해주지 못하고 있단 생각이 드니 스스로 가련하고 미안해집니다. 분명 살겠단 거였는데 이제 보니 살려 달라 말하고 있는 듯해서.
해서 노력해보려 합니다. 일단 마음을 먹고 나니 그만두어야 할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이를테면, 빛이 가장 밝은 쪽, 다수가 모이는 방향만 좇으려는 것. 타인의 최고점과 나의 현재점을 대비하며 처량해지길 자초하거나, 타인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느라 오직 나만이 가진 것을 보지 못하는 것. 주변의 반응에만 귀를 쫑긋 세우느라 내면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들 말이에요.
# 3
당신 또한 애먼 에너지를 소진해가며 자신을 내몰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에 진정 원하는 것을 찾길 바랍니다. 그 시간 안에서 조급함이 일수도 있겠지만, 스스로에게 귀 기울이는 시간은 중요한 시도이지 결코 아까운 시간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간혹 무작정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단 조급함에 타인을 주목하기도 하겠지만요. 이미 정해진 길들에 혹하기도 하겠지만요. 오롯이 자신에게 주목할 때 가장 빛이 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 당신과 내가 부디 스스로 빛을 죽이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괄시하는 무례함을 거두는 방법으로. 주변에 촉각을 세우기보단 자존을 먼저 세우는 방법으로.
우리는 인지해야만 합니다. 가치란 다수의 인정으로부터 빛을 보는 게 아니라, 내 안으로부터 발화한다는 사실을. 자신에게 주목해 발화점을 찾고, 그것을 깎고 닦아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럴 수 있다면 그 불씨는 훗날 아주 특별한 빛으로 발현될 거라 믿습니다. 정확한 길이 정해진 길이 있을 리가요. 단지 우리 각자가 나아갈 방향과 그 여정에서 만끽할 환희가 있을 뿐이겠죠.
우리 함께 다짐하기로 해요. 빛을 따르기보단 빛을 빚어내자고. 이 서사의 끝에서 저마다의 영롱한 빛을 뿜어내자고. 그리고 그 시작으로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그 소리를 존중하자고.
- 출처 -
º백영옥, 아르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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