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소 Feb 03. 2022

나, 맞게 가고 있는 걸까?

Photo by @zegarr on Unsplash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걸까?” 


 소설가 임경선의 단편 [Keep Calm and Carry on] 속 문장이에요. 꽃 가게 운영 준비가 만만찮은 여자 친구 세정이 고민을 털어놓는 순간이었습니다. 주완은 명료하고도 따뜻한 대답으로 세정에게 큰 위안을 주는데요. 그가 그런 답을 줄 수 있던 건, 자신 또한 같은 고민을 해왔기 때문이었죠.     


 위 질문은 비단 그들만의 난제는 아닐 거예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자신에게 가장 많이 되묻는 질문 중 하나이지 않을까요. 같은 물음을 되풀이하길 수십 번, 수백 번. 물음표의 갈고리들이 온몸에 주렁주렁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 몸이 축 처지고, 숨이 푹 꺼지곤 합니다.



 세정이 그랬든, 주완 역시 같은 물음에 짓이겨지던 시간이 있었는데요.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일하고 있는 그가 자신의 걸음에 의문을 품게 된 한 일화가 있습니다. 평소엔 그만의 주관을 확고히 밀고 가는 편이었어요. 건전하고 멋지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꿈이나 천직, 사회적 성공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일은 생계를 해결하는 수단이므로 성실히 임하고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었다. 직업은 직업일 뿐이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으니까.’  

- 임경선, 「곁에 남아 있는 사람」 속 단편, 「Keep Calm and Carry on」   


 트레이너란 직업에 대해 사람들이 으레 갖는 선입견, 가령 ‘몸이 좋은 대신 머리가 나쁠 것이다.’, ‘지적이고 진지하기보단 가볍고 단순할 것이다.’라는 인식들이 유쾌하게 다가올 리 없었지만, 주완은 비춰지는 이미지나 주변의 평판에 동요하지 않았어요. 대신에 진정 일로부터 보람을 찾았습니다. 이를 테면, 회원들이 꾸준한 운동으로 인한 성취의 기쁨을 표현해주는 것, 기쁨의 감사인사를 전해주는 것이 주완에겐 이 일을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누구보다 정석대로 꼼꼼하게 수업을 해나갔고, 건강이란 목표를 향해 함께 달려주는 건실한 트레이너였죠.


 그의 굳건함의 지축이 흔들리게 된 건 세정 아버지와 식사자리를 가진 후였습니다. 주완은 세정 아버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돼요. ‘이제 제대로 된 직업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이에 주완은 속으로 생각하지요. ‘자신이 하는 일이 제대로 된 일에 들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기준이 모호하다고. 그렇다면 어떤 일이 제대로 된 일인 거냐'고. 몹시 타당한 의문이면서 또 나름의 변호였지만, 주완은 아킬레스건을 베인 것처럼 주춤하고 말아요. 나름의 성실함으로 잘 다스려왔던 불안감이 꿈틀대면서 그만의 견고했던 신념이 스러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조금 특별한 퍼스널 트레이닝 수업을 맡게 되는데요. 투병생활을 해왔기에 건강을 되찾기 위해선 운동이 시급했던 회원과의 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연륜과 삶의 태도는 주완에게 아주 큰 영향을 주는데요. 짧은 시간 동안 그녀가 세상을 보는 창을 통해, 주완의 삶의 시야도 한 뼘 넓어지게 되지요. 마침내 주완은 다시금 그만의 걸음을 꿋꿋이 걸어보리라 마음먹습니다.                    



 삶에 성심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내가 맞게 가고 있는 걸까?’ 간혹 피어오르는 이 물음은 당장 우리가 부족한 탓이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보단 자신의 삶이 애틋하단 증거일 테죠. 그만큼 ‘나의 삶’에 정성을 들인단 것이고, 본래 신중을 가할수록 확신과 멀어지는 경우도 있는 법이지요.     


 “자기가 제대로 살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누구나 돌아서 가기 마련이고.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가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겠지.”     


 이는 세정의 고민에 대한 주완의 답이었어요. 이토록 안심을 주는 말이라뇨. 그의 말에 백 번 공감합니다. 과연 얼마나 될까요. 자신의 삶에 늘 확신 가득 찬 사람들이. 우리의 삶엔 반갑잖은 변수들과 주변의 입김들이 너무도 많지 않던가요. 우리가 언제까지나 기존의 방향을 고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당연히 결의가 흐려지는 순간이 있을 것이고 또 어쩔 수 없이 우회해야만 하는 상황도 있을 테지요. 그런 가운데 지난 결심을 지켜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당신이 삶의 방향키를 굳게 쥔 채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겠죠. 



  스스로에게 어떤 질문을 던지고 계신지요. 어떠한 고민이 당신을 짓누르고 있든 정형화된 삶의 기준이 있을 리가요. 당신과 나, 우리 모두는 저마다 각각의 고유한 기준이어야겠죠.


 우리는 지금껏 종종 그래 왔듯 앞으로도 내가 몸담은 길이 진짜 원했던 길인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끝없는 질문을 반복 해갈 테죠. 때론 한 걸음 물러나기도 하면서요. 그렇지만 그게 무어든 온전히 당신의 의사로 결심한 일이라면, 다시 한번 그 일을 지키세요. 그렇게 당신을 지키세요. 누군가 짚어준 길은 때때로 정확할 수 있지만, 그대가 짚어낸 길은 그 길로 정답이 됩니다. 누군가 짚어준 길은 때때로 안전할 수 있지만. 그대가 짚어낸 길은 그대로 완전할 테고요.     


 그 여정 안에서 어떤 길을 만날지 모르기에 때론 길을 잃기도 하고, 어떤 난관을 만나 걸음이 느려지는 때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반갑지 않던 상황과 질문을 맞이하는 순간, 우리는 미처 내리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미처 몰랐던 것을 발견하기도 하지 않던가요. 그 순간들을 거듭할 때마다 우리 각자가 품은 별에는 무게의 추가 실립니다. 평정심이란 곧 축적인 것 같아요. 돌탑을 쌓아가듯 시간과 실패를 쌓아가며 그렇게 원주율을 키워갑니다. 어쩌면 연륜이란, 점점 흔들리지 않게 되고, 쉽게 흔들리지 않다가, 웬만해선 흔들리지 않게 되는 일련의 과정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삶은 그렇게 차츰차츰 온전한 나로 거듭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길이 곧게 뻗기를 그리고 잘 풀려가기를 응원합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중요한 순간마다 당신의 의지로 답을 내리고, 당신의 힘으로 생을 살아가길 응원하고 싶습니다. 설령 삶의 방향을 크게 튼다 할 지라도요. 생에 대한 만족은 ‘내가 얼마나 나아갔느냐’가 아니라, ‘내디딘 걸음들에 내 의지가 얼마나 기여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그 기여도가 충족된다면 나름 충만한 삶이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어떠한 삶을 꾸려가든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여정을 살아가는 일 아닐까요?

    


◐ 연재 시리즈:   <작품에 기대어 내일을 기대해> 중



- 출처 -


º이번에 기댔던 작품│임경선, 위즈덤 하우스,  「곁에 남아 있는 사람」, 2018

ºPhoto by @zegarr on Unsplash



이전 02화 헤매기 위한 여행의 출발선에 섰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