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꼰대 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정철 Nov 04. 2023

꼰대 생각 38: 흉터_삶의 흔적

몸에 흉터 한두 개 정도는 다들 가지고 산다. 어릴 때 생긴 것도 더러 있을 테고, 어른이 되어서 갖게 된 것도 있을 테다. 그래도 몸에 흉터 하나 없는 사람은 좀 부럽다. 몸에 흉터가 없다는 건 스스로 조심하며 자신을 잘 돌보며 살았고, 어릴 적 보호자의 보살핌을 잘 받고 자랐으며, 흉터를 남길만한 큰 사고를 당하는 불행을 겪지 않았다는 뜻이다. 흉터를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여기는 분야의 사람들이 따로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흉터는 가능하면 감추고 산다. 일부러 드러내지는 않는다. 특히 어린 나이에는 몸에 난 흉터가 마음의 상처로 덧나기도 하니까. 그런 흉터를 감추고 살려면 불편함이 생긴다. 


왼쪽 팔꿈치 안쪽에 큰 흉터가 있다. 찢어진 상처를 집은 듯 보이는데, 사실은 뜨거운 물에 덴 상처다. 치료를 잘 받았다면 흉터가 지금처럼 크지는 않았을 텐데, 부주의해서인지 흉터가 크게 남았다. 겨울에는 일부러 감추려고 하지 않아도 긴 옷을 입으니 상관이 없지만, 더운 여름에는 난감해진다. 더운 날씨에 긴소매 옷을 입기도 그렇고, 짧은 소매 옷을 입고 다니자니 흉터가 늘 신경이 쓰인다.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내가 보기에도 좀 흉한 듯해서 가능하면 감추고 다니려고 애쓰며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신경 쓰지 않았는데 지금도 가끔 들여다보면서 어릴 때의 씁쓸한 기분을 생각하게 된다. 


배에도 큰 흉터가 있었다. 요즘에 가정집에서는 쓰지 않는 연탄 화로 위로 엎어져서 생긴 화상이다. 대부분은 잘 아물어 표가 잘 나지 않는데, 배꼽 오른쪽 바로 아랫부분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흉터가 남았다. 그것도 하얗게. 친구들이랑 물놀이하거나 목욕탕에 갈 때처럼 그 부분이 드러나게 되었을 때가 참 싫었다. 그나마 중고등학교 시절에 해수욕장에서 새까맣게 태우고 나서는 없어져서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다행이다. 오른쪽 눈 주위에 생긴 화상은 숨길 방법이 없다. 피부 조직이 상했는지 눈썹 끝부분에 털이 나지 않아 왼쪽 눈썹에 비해 조금 짧다. 언듯 보면 티가 안 나서 그나마 다행이다. 


누구나 몸에 난 흉터는 가급적 가리고,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흉터가 크든 작든 흉터에는 아픈 기억이 묻어 있고, 그 시절의 좋지 못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흉터를 남에게 보이는 것도 싫지만 흉터를 보며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게 더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몸에 남은 흉터와 상처를 지니고도 그날의 아픈 기억을 조금씩 잊으며 산다. 잊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누구에게서 배우는 것도 아닌데도 기억은 희미해지고 아픔은 무덤덤해진다. 그렇게 잊고자 하는 것은, 가리고 감추려 해도 결코 지워지지 않는 아픔의 흔적은 지울 수 없더라도 그 기억만큼은 더 이상 떠올리지 않으리라는 강력한 마음의 노력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힘든 일이지만, 몸에 난 흉터도 지니고 살아가듯, 마음의 상처도 그냥 껴안고 사는 건 어떨까. 지우고 없애려니 드러내고 들추어야 한다. 상처에 소금을 뿌리듯 아픈 기억을 다시 또렷하게 떠올리는 다른 아픔을 겪어야 한다. 아픔은 지나갔고 세월의 흔적이 그 위에 쌓였으니 때론 껴안고 살아가는 것도 지혜다 싶어 진다. 그래야 내가 덜 아프다.



 

매거진의 이전글 꼰대 생각 37 : 인걸(人傑)은 간데없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