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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정철 Oct 19. 2023

제39화 나에게 소원은 단지 이것뿐

오 페드로우소(O Pedrouzo)~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철이의_산티아고_순례길

 - 1차 순례: 2022.7.25~8.14, 493km, Saint-Jean~Léon

 - 2차 순례: 2023.10.3.~10.25, 329.5km, Léon~Santiago de Compostela)

#걷기 13일 차(33일 차)

#오 페드로우소(O Pedrouzo)~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21.66km / 5시간 21분

- 누적 : km / 799km

#숙소 :  Hotel Costa da Morte, 2star

- Fisterra에 위치. 강추하고 싶은 숙소. 특히 행복한 아침 식사를 제공함


잠 못 이루는 밤

아침 7시 기온은 18도로 어제보다 더 높다. 밤새 창밖으로 바람소리가 심했는데 아침에도 여전히 바람이 강하게 분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다. 마음이 설레어서 잠을 설쳤냐고? 아니다. 빈대가 있는지 밤새 몸이 가려워 잠을 제대로 못 잤다. 반대편 침대의 브라질 친구 요셉과 초저녁 내내 깊은 기침을 해대는 할머니는 잘 자는데, 그 앞에 태준이가(태준이는 대구에서 온 친구로 이틀째 같은 알베르게에 묵은 친구) 아는 여자 애도 깨어 한참 동안 휴대폰을 들여보 보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처럼 몸이 가려운 건 아닌 듯 보인다.

원래 계획은 아침 6시에 출발해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11:30 쯤에 도착, 12:30에 있는 미사에 참석하려고 했는데, 늦었다. 미사에 참석하고자 하는 순례자들이 많아 미리 가 있지 않으면 성당 안에 들어갈 수 조차 없다고 한다. 가능한 한 빨리 걸어보고 운에 맡기는 수밖에. 마을 끝에 카페가 있어, 커피와 빵으로 순례길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한다.


숲의 경고

3.5km 지점, 오 아메날(O Amenal) 마을 카페를 지나면 작은 굴다리 아래로 차도를 건너간다. 굴다리를 지나자 오르막 길이 제법 가파르다. 언덕을 완전히 오를 때까지 1.8km나 된다. 장난 삼아 플래시를 잠시 꺼보니 깊은 숲에 빛이 완전히 차단되어 칠흑 같은 어둠이다. 숲이 울부짖는 소리만 어둠 속을 휘젓고 간다.


오늘 숲은 요란하다. 진한 향기만을 은은히  뿜어 내며 말없이 서 있던 유칼립투스도 오늘만은 예외다. 마을 뒷산의 대나무 숲처럼 흔들리며 쏴아하고 소리를 지른다. 온 숲이 소리를 질러댄다. 30일 이상을 걸어 마침에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바로 앞에 둔 수많은 순례자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조용조용하게 속삭이듯 말하지 않고 큰소리를 내면 경고한다. ’ 서두르지 마라, 마지막까지 조심하라. 그리고 이 길의 끝에 서더라도 자만하지 마라.‘

언덕을 다 올라오니 저 멀리 어둠을 밝히는 수많은 불빛의 군상이 보인다. 저곳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다. 나와 산티아고 사이에 비행장(Aeropuerto de Santiago)이 있다. 순례를 마치고 이 도시를 떠나는 이들의 벅찬 가슴을 실은 비행기가 굉음을 내며 막 이륙한다. 순례의 첫발을 디디는 순간 가지고 있던 마음의 짐을 이 길 위에 다 내려놓고 떠나는 걸까. 그 빈 마음속에 위로와 안도, 설렘과 희망을 채웠을까.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위한 새로운 도전을 꿈꾸는가?


기쁨의 언덕

10km 거리에 있는 라바코야(Lavacolla)는 순례자들이 깨끗한 모습으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들어가기 전, 쌓인 먼지를 냇가에서 깨끗이 몸을 씻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그런 순례자들이 간혹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은 비까지 오고 있으니 그런 이들은 볼 수 없다.

네이로(Neiro) 근처, 11.3km를 세 시간이 걸렸다. 아침 식사 후에는 한 번도 쉬지 않아, 길가에 근사한 카페가(Casa de Amencio) 있어 잠시 쉬어 간다. 카스테라가 부드럽고 맛있다. 카스테라를 담아내어 주는 돌 접시가 인상적이다. 젊은 주인 아가씨의 센스가 느껴진다.


걸음이 빨라진다. 마지막이라는 생각, 미사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숲의 경고는 잊고 만다. 그러는 사이 몬테 델 고소(Monte del Gozo)까지 온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서쪽에 자리 잡은 작은 언덕이다. ‘기쁨의 산’이라는 뜻이다. 이제 거의 순례의 끝에 다다랐으니 그 기쁨이 오죽하겠는가. 순례자들이 저 멀리 보이는 콤포스텔라를 확인하고 기쁨을 만끽하던 언덕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아, 산티아고

도심을 지나 드디어 성당이 보인다. 이 도시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l)의 역사는 곧 도시의 역사와 같이한다.

이 도시의 기원이 산티아고 성인의 무덤이 발견된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813년에 리브레돈 언덕의 고대 로마 유적지 근처에서 신비한 빛이 발견된다. 이 소식이 주교에게 보고 되고 이 지역을 조사해 보니 세 구의 시신이 발견되는데, 세구의 시신은 성 야고보, 그의 제자 테오도르와 아타나시우스로 추정되었다. 이후 알폰소 2세의 명에 따라 893년 이 성당이 축성되면서 사람들이 정착하게 된다.

대성당의 광장으로 가는 길은 성당 뒤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어간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가만히 서서 눈물을 흘리는 이, 같이 걸은 동행자를 끌어안고 감격에 겨워하는 이, 배낭을 배게 삼아 누워서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을 올려다보는 이, 기념사진을 찍고 찍어주고, 완주를 축하하는 이들.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상상했던 뜨거운 감격은 선뜻 오지 않는다. 33일간의 여정을 함께한 아내를 안으며 고생했다고 등을 토닥이는 순간, 잠시 울컥한다. ‘드디어 마쳤구나. 몇 해 전부터 꿈꾸어 오던 일,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순례를 오늘에야 끝내는구나.’  순례 증명서를 만들고 다시 대성당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는다. 마치 남는 것은 증명서와 사진뿐이라는 듯.

뭔지 모를 허전함과 옅은 감격을 안고, 다음 목적지인 피스테라(Fisterra)로 가기 위해 성당 뒤쪽으로 나가는데 뒷문이 열려 있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미사를 할 시간인가? 일단 줄을 서서 따라 들어가 본다. 알고 보니 성당의 본좌인 성상을 보러 가는 줄이다. 줄 선 사람들이 성상의 어깨나 머리에 손을 얹고 잠시 기도를 하느라 시간이 많이 걸린다. 종교가 없는 나도 잠시 기도를 드린다. 무사히 이 길을 걸을 수 있게 해 준데 감사하고, 가족의 건강을 빌었다. 나에게 단지 그 소원뿐이라는 듯.


#산티아고_길_위에_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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