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시간의 숲을 따라
부하라에서 히바로 가는 길
“며칠 째 사막을 걷고 있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모래를 안고 온 걸까. 멈춰서면 모래가 주르륵 흐른다. 강한 모래 바람에 물건이라도 깨질까 걱정이다. 진흙을 발라 굳혔지만 도자기와 접시는 항상 신경써야만 한다. 이 끝없는 모래 사막을 적어도 한달은 걸어야 한다. 마차로 사흘 쯤 걸리는 거리면 가깝고 좋으련만 쉽지 않은 길이다. 가는 길에 거친 원주민들이 많다고 들었다. 부하라만큼은 아니지만 소규모의 교역소가 히바에 있으니 거기까지만 가면 한시름 놓을 것 같다. 모두 안전하게 히바로 도착하기를.”
1300년 전, 부하라에서 히바로 가는 한 상인은 아마도 이런 일기를 쓰지 않았을까. 부하라에서 히바는 450Km. 쉬지 않고 도로를 달린다면 7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지금도 쉽지 않은 이 길을 카라반은 한 달을 걸어갔다. 나는 부하라에서 프랑스 외국 여행자 두명과 택시를 함께 타고 왔다. 히바로 가는 기차가 있지만 출발시간이 새벽 4시다. 기차로도 소요시간은 6시간이다.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 부하라까지는 모두 고속 열차가 연결되어있는데 히바까지는 아직 좀 더 시간이 걸릴 듯 싶다. 뒤쪽에 앉은 프랑스 여행객은 이미 9개월 째 여행중이라고 했다. 그 정도면 이미 여행의 피로에 녹초가 될법도 한데 사막의 모래언덕을 보자 들뜬 표정이다. 커플로 보이는 두 사람은 쉴새 없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언덕하나 없는 평평한 모래 땅위로 일자로 시원하게 뚫린 도로가 끝없이 이어진다. 화살표 하나, 도로 표지판 하나도 찾기 힘든 모래 땅이다. 이 모래 사막 도로 위를 낙타 대신 차들이 신나게 달린다. 모래 언덕과 듬성등성한 풀밭이 지루할 정도로 반복적으로 이어진다. 나는 이 7시간의 지루한 풍경을 ‘홀로 여행하는 자의 특권’이라 여긴다. 화려한 풍경을 보면 눈과 손이 쉴틈이 없다. 보느라 바쁘고 사진기를 꺼내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이야기 할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귀와 입이 쉴 시간이 없다. 그래서 ‘7시간의 반복적으로 지루한 풍경’은 그 모든 것으로부터의 온전한 ‘쉼’이다. 그 온전한 쉼으로부터 나는 ‘생각할 시간’을 선물로 얻는다. 부하라에서 히바로 가는 길, 그것은 홀로 여행하는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여행에 대한 사색
여행은 ‘길 위에 있는 삶’이다. ‘길’은 ‘집’과 다르다. 편안하고 익숙하지 않다. 매 순간, 불안정성과, 낯설음, 공포를 마주한다. 길 위에 서는 것, 그것은 그 모든 두려움에 대한 ‘저항’이자 ‘도전’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위대한 인간을 만나는 순간이다. 실존주의자들은 신으로부터 부여된 운명에 저항하고 투쟁하는 인간을 인간 실존의 본질이라 생각했다. 여행도 다르지 않다. 여행은 ‘집’이라는 편안하고 안정된 삶에서 스스로 벗어나려는 ‘선택’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실크로드는 ‘인간의 위대한 흔적’이다. 집을 떠나 길 위에 선 수 많은 사람들의 선택과 의지가 겹겹이 싸여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웃음을 모두 간직한 이 ‘위대한 길’ 위에서 여행을 생각한다.
여행과 ‘패키지 관광’은 구별되어야 한다. 관광은 ‘길 위에 선 삶’에 대한 사색을 동반하지 않는다. 계획된 경로대로 따라다니고, 지정된 음식을 먹으며, 주어진 잠자리에서 잠을 잔다. 그것은 ‘지정된 공간으로의 이동’일 뿐 ‘길’ 위에 서 있는 순간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관광에는 ‘나의 선택’이 없다. 타인의 계획에 따르는 ‘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여행은 다르다. 여행에는 지정되지 않는 길에 대한 ‘나의 선택’과 ‘의지’가 있다. 배낭여행자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들은 낯선 땅으로 어떤 가이드도 없이 홀로 떠날 의지를 낸다. 하지만 배낭 여행자에게는 머무를 곳과 돌아올 곳이 있다. 관광객과 다른게 있다면 스스로 머무를 곳을 찾아다니며, 돌아올 티켓을 사고, 일정을 계획한다는 것이다. 자유 여행자는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머무를 곳을 스스로 정하지만 배낭여행자보다 훨씬 일정이 자유롭다. 이 도시에서 반드시 며칠을 있을 것이라는 계획도 없다. 그러나 ‘여행자’는 필연적으로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단어다. 만약, 돌아올 곳도 정하지 않고 걷는다면 그것은 ‘여행’이 아니라 ‘방랑’에 가깝다. 방랑자는 반드시 머물러야하는 곳도, 반드시 돌아가야할 곳도 없는 ‘길 위의 삶’이다. 길 위 잠시 ‘머물러 있는 것’이 여행자라면, 방랑자는 삶이 곧 길 위에 있다. 방랑자보다 한 단계 더 나가면 ‘출가자’의 단계가 될 것이다. 출가자는 머무르는 곳마다 스스로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에서 진리를 만난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의 상태에서 세상을 본다. 이 단계에서는 이미 떠남과 머무름의 단계를 벗어나 있다. 불교의 초기 경전 <숫타니파타>에는 “탐(탐욕), 진(분노), 치(어리석음)없이 유행하라.” 라는 말이 나온다. 어떤 유형의 여행이든, 그것이 배낭여행이든, 자유여행이든, 방랑이든, 마음에서 ‘탐.진.치’를 제거한 상태를 수행자로 본 것이다.
출가자의 단계는 천년 전 부하라에서 히바로 향하는 상인의 마음만큼이나 요원해보인다. 그러나 긴 사막을 매일 걸어 결국 히바에 도착한 사람이 있었던 것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경계를 깨려는 모든 노력과 의지가 시작이다. 실존주의자들은 신이 부여한 운명에 저항한 시지프를 통해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실존을 찾았다. 나는 집을 떠나 ‘길 위에 선 모든 이들’의 위대한 ‘선택’에서 시지프의 희망을 본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풍경’의 선물, 그 생각의 시간을 빠져나오니 택시기사가 히바 구도심의 작은 호스텔에 나를 내려놓는다. 오후 6시, 마을 아래로 곧 내려앉을 것 같은 붉그스레한 태양빛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짐만 내려놓고 나와 구도심을 걷는다.
히바 구도심 Terrasa에 앉아
해질 녁 히바는 천년의 시간이 숨을 고른다. ‘현재’를 걷는 사람들의 실루엣이 역사의 기나긴 시간 사이로 어색하지 않게 녹아든다. 홀로 해 질 녘 히바 구도심을 걷는다. 작은 골목길 사이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 소리가 들린다. 노을만봐도 좋아서 까르르 웃는 것만 같다. 어느 나라나 아이들은 참 예쁘다. 낯선 이방인에 얼굴에 놀랄 법도 한데 카메라를 보고 웃어준다. 사람 사는 곳은 천 년 전에도 같았을 것이다. 아마도 히바의 구도심 어디선가 아이들은 저렇게 해맑게 웃으며 지나가는 나그네를 바라봤으리라.
골목길 구석구석에 오랜 시간의 숨결이 남겨져 있는 것 같다.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온 느낌이다. 실크로드 위의 유명한 고대 도시 히바에는 현재 약 5만명이 살고 있다. 히바는 16세기부터 1920년까지 호레즘 왕국의 수도였다. 호레즘 왕국은 13세기가 전성기로 당시 수도는 우르겐치였다. 우르겐치는 히바에서 35km떨어진 도시다. 전성기 때는 인구 약 100만명의 실크로드의 중심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칭기스칸에 의해 대규모로 파괴되고, 이후 1405년에 성립한 티무르 제국의 4차례 침략에 의해 또다시 도시가 파괴되었다. 18세기에 히바는 이란의 샤에 의해 정복당했으며, 1768년에는 흑사병으로 히바지역에 단지 14가족만 살아남는 대참사가 있었다. 19세기 초에 히바의 부흥이 이루어지면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는데 1873년부터 이 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식민화가 시작되었다. 1875년 러시아 알렉산더 2세의 정복이 이루어졌다. 1917년 10월 혁명 발생한 후 1920년 미하일 푸룬제 장군이 적군을 이끌고 호레즘을 정복하면서 이곳은 소련의 식민지로 떨어졌다. 1920년부터 1923년까지 호레즘 공화국이 성립했는데 이 기간에 우즈베키스탄의 공산주의자들이 러시아의 힘을 빌려 집권하였고 1924년부터 25년까지 2년간은 중앙아시아 분할통치지역이 되었다가 1925년 소비에트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호레즘주가 되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적 식민화에 저항한 핵심인물은 주나이드 한으로 투르크계 장군이며 히바출신이다. 과거에는 우즈베키스탄 공산주의자들이 전시되었다면 현재에는 이 주나이드 한 같은 지역의 민족주의적 지도자들이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우즈베키스탄 민족주의는 민족국가의 형성으로 이어지지 못한 상태에서 바로 소비에트화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히바의 민족문화 전통은 구도심안에서 천천히 걸으며 찾고 기록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마음에 열심히 셔터를 눌러본다. 누군가 기록하고 남겨줘야겠다는 마음에서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공간을 걷고, 기록하는 누군가를 만나는데 있다.
히바에 만난 중국인, 왕이지엔
선명한 셔터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한 동양여자가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가 무거울 법도 한데 사진을 찍으라 정신이 없다. 내 사진 한장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려고 다가가 말을 걸어본다. 혼자 여행온 중국 아이다. 반가운 마음에 중국어로 말을 꺼내니 동향사람을 만난듯 반가워한다. 모국어로 말을 걸어오는 외국인은 금세 친해지기 마련이다. 우즈베키스탄에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우즈벡 사람들이 많다. 날 보며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면, 한번이라도 더 친절하게 웃음짓게 된다. 한국을 공부하려 한 마음이 고마워서다.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왕이지엔, 중국에서 온 후난 장사의 한 외국인 회사에 근무하는 34살의 여성이다. 여행과 사진이 취미라는데 지금까지 40여개국을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다고 한다. 잠깐 보여주는 사진이 놀랍다. 취미 사진의 수준이 아니다. 나는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하니 필요하면 사진을 써도 좋다고 선뜻 말해준다. ‘저작권’이 있는데 정말 내가 써도 되냐고 재차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이렇다.
“나도 우즈베키스탄의 전통문화와 건축물이 너무 아름다워서 많이 알려줄려고 찍는거니까 같이 홍보해주면 나는 좋은데? “
이럴 땐 ‘저작권’개념이 크게 없는 중국이 고마워진다. ‘나의 것’라는 ‘개인’ 보다 ‘공유’을 통한 집단전체의 이익을 더 중시하는 동양문명권의 영향일까. 고마운 마음에 차한잔을 권하고 까페에 앉았다. 혼자 여행하는 30대의 여자는 별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일단 20대의 배낭여행객과 같은 수다가 없다. 함께 몰려다니며 관광지 앞에서 사진을 찍지 않는다. 관광지에서 파는 물건에도 큰 관심이 없다. 사봐야 나중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그보다는 도시 전체를 담을 수 있는 전망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기념품은 중요하지 않지만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은 찾아내야한다. 이 아름다운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멋지게 담아두고 싶어서다. 언제 또 다시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더 커서 일지도 모른다. 만남과 헤어짐에 아쉬움도 없고 ‘홀로’와 ‘함께’의 분리가 매우 자연스럽다. 묻지 않지만 대부분 미혼이다. 거리낄 것이 없고 홀로 내 몸뚱이만 챙기면 되니 거침이 없다. 질척거림 없는 자유로움을 즐긴다. 여행을 나도 적지 않게 다녔지만 동양여자가 혼자 여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아마도 문화적, 언어적 영향이 클 것이다. 호스텔에 가면 예외없이 도미토리룸에 2/3는 서양 여자다. 캐나다, 프랑스, 영국, 미국, 뉴질랜드, 호주, 독일 중에 한명은 50%의 확률로 늘 만난 것 같다. 이들에게는 배낭여행이 옆 동네에 마실가는 듯한 일상이다. 1년 정도의 장기 여행자도 적지 않다.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국가에 태어나, 언어적으로 불편함이 없으며 (즉, 모국어가 영어인 경우), 혼자 여행에 어색함이 없는 문화적 환경에서 태어난 미혼의 20대 또는 30대, 그들이 세계의 여성 배낭여행자들의 다수를 차지한다. 왕이지엔은 그런 면에서 특별했다. 하나의 외국어를 더 할 수 있다는 것은 이런 친구를 만났을 때 가장 빛을 바랜다. 언어적으로 소통의 문제가 없으니 짧은 시간이지만 한결 더 가까워진 느낌이다. 도심 전경을 찍어야겠다며 입장권을 사러 간 그녀가 돌아와서 말한다.
“히바 같은 도시에선 역사 하나하나를 모두 설명하기 보다 멋진 사진 한장이 더 매력적일 것 같아. 잠시 노트북 덮고 나랑 같이 걷는 게 어때?”
“넌 이미 3일째라고 하지 않았어? 아직도 볼게 남은거야?”
여기서 만나는 여행객들은 모두 히바는 작아서 하루면 다 둘러보는 곳이라 했다. 그런데 반나절이면 작은 골목까지 다 둘러볼 이 구도심에 그녀는 3일씩이나 머무르고 있었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돌아오는 대답이 머리를 친다.
“모두 같은 건물 같지만 머무르는 순간, 서 있는 시간, 매 순간이 다른 풍경이야.”
부하라에서 히바를 오는 그 지루한 7시간의 사색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나는 그저 머리로 ‘여행’을 읽고 손으로 ‘기억’을 만들고 있었던 게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그녀에게서 진정 자유로운 ‘여행자’의 모습을 본다.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를 따라 히바 구도심의 작은 골목길을 걷는다. 그곳은 역사책에도 가이드북에도 기록이 없지만 그녀의 사진기 속에서 ‘특별한 오늘’이 되어 기록되고 있었다. 수많은 마드라사와 사원들 속에서 조명받지 못했을 작은 골목길, 이 곳을 삶의 터전삼아 갈아가는 사람들의 눈물와 웃음, 그 모든 이야기가 그녀의 사진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히바, 이 내려놓음의 도시에서 나는 진짜 ‘평화여행’을 만난다.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골목을 걷는다. 그들의 현재 삶을 기억하려 애쓰고 더 많이 현지 사람들과 눈 맞추며 웃음 짓는다. 그들의 삶과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는 마음, 그것이 곧 평화여행이 아니겠는가. 그 마음을 내어 이 도시를 걷는 순간, 히바는 눈부신 ‘지금’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