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상.담.실
매일 아침 마른 수건으로 잎새를 닦아주고 스프레이를 해줘야 하는 까다로운 화초처럼 발효종을 살펴야 합니다. 열여덟 시간 동안 저온 숙성을 해야 하고, 겨울 횟집의 시세처럼 가격이 급등하기 전에 귀하신 몸인 프랑스산 버터를 사둬야 합니다. 휘핑크림처럼 단단하지 못하고 물러서 지방과 물로 분리되기 직전까지 크림을 쳐야 하는 동물성 생크림, 거기에 변덕스러운 기온과 습도……. 그래도, 겨우 빵일 뿐입니다.
서툴렀던 관계와 미래에 대한 불확신에 몸과 마음이 지쳤던 적이 있습니다. 그날 카운터 깊숙이까지 햇살이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 아이들이 조르지 않으면 생전 시키지도 않았을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티라미수를 주문했습니다. 눈앞에서 환하게 봄볕을 튕겨내는 티스푼을 입으로 가져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좋다!”
그리 긴 삶은 아니었지만 세상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나빠진 환경에, 차별과 무시, 점점 더 격차를 벌리는 삶의 질을 생각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뒤척이다 잠을 깹니다. 벌컥이며 물 한잔을 들이켜고 나서도 쉬이 전등불을 끄지 못하고 새벽을 지새웁니다. 빵이나 만들며 살면 뭐하냐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내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발효종이 담긴 용기의 뚜껑을 열고 녀석들의 움직임을 살핍니다. 거기에 말을 걸기도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합니다. “그렇게 좋아? 빵 만드는 게?”
간밤, 잠을 설쳐 날이 선 남편의 물음에, 숙성된 발효종처럼 한껏 부푼 아내의 음성이 공기 중에 툭 터집니다. “있잖아, 여보. 난 대단한 빵을 만들려는 게 아니야. 그냥 빵 조각일 뿐이지만, 이걸 먹으면서 마음의 위안이 되는 빵, 치유가 되는 빵, 그런 빵을 만들고 싶어.”
원하는 빵이 나오지 않아 오븐 앞에서 눈물을 흘렸던 사람인데, 아침만 되면 아내는 눈물 훔친 그 손으로 다시 반죽을 치댑니다. 그 손은 말랑하게 부풀어 오르는 반죽들과 함께, 불안과 걱정으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남자의 등짝을 떠미는 것 같았습니다. 괜찮다고, 다시 만들면 된다고, 언젠가 한없이 가볍고 크게 부풀게 될 거라고 격려하듯 말입니다. 겨우 빵일 뿐인데 말입니다.
봉태규 수필집 <개별적 자아> 중 <겨우 남편입니다>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