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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gmong Jul 10. 2019

늦은 육아를 망설이는 당신

마흔이 서른에게

                                       

‘서른, 잔치는 끝났다’. 최영미 시인의 시다. 94학번인 나는 대학을 입학한 그해 이 시를 만났다. 아무 생각 없이 스무 살을 맞이했던 나에게 한 편의 시가 던지는 화두, ‘서른’은 특별했다. 


서른이라... 나에게 서른은 상상할 수 없는 까마득한 나이였다. 서른이 넘으면 인생이 끝나는구나, 청춘이란 아침이슬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구나, 서른 후의 내 삶은 얼마나 칙칙하고 무거울까... 스무 살이었던 나에게 서른은 화려한 잔치가 끝난 후의 허무함과 절망이었다. 


김광석이 부른 ‘서른 즈음에’를 들을 때면 낭떠러지 같은 ‘서른’이 내 마음을 더 깊게 후벼 팠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는 가사처럼 인생의 모든 찬란한 순간은 이십대에서 끝나는 줄 알았다. 


나에게는 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 ‘서른’은 회사 야근과 함께 싱겁게 지나가고 말았다. 서른이 넘으면 인생이 전혀 다른 색깔로 펼쳐질 줄 알았는데, 이십대였던 어제나 서른이 된 오늘이나 일상은 똑같았다. 단지 조금 바빠졌을 뿐. 



삼심대의 삶, 좌충우돌 분주함만...

삼십대는 분주했다. 일을 향해 뛰었고, 인생의 큰 결정을 했으며, 새로운 식구를 맞이했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있었지만 그 선택은 언제나 의심스러웠다. 세상 잘난 척은 하면서 속으로는 줏대 없이 흔들렸다. 


첫 아이를 낳은 후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조바심이었다. 기저귀를 늦게 뗀 말 못하는 아이를 나무라며 엉덩이를 맴매 했던 ‘사건’은 지금 생각해도 미안한 일이다.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얼굴과 표정을 가만히 들여다 볼 여유 따윈 없었다. 조금이라도 울려는 기색이 보이면 어떻게든 달래 보려 애먼 과자와 장난감만 들이댔다. 


나름대로 열심히 키웠지만 초보엄마가 할 수 있는 모든 실수와 부족함이 첫째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좌충우돌 육아는 한 번으로 충분했다. 첫째가 동생 타령을 시작하던 대 여섯 살 무렵까지는 둘째 아이에 대한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낳을까 말까를 수없이 고민하다 마흔을 맞이했다. 막상 마흔이 되니 낳을 수 있을까 없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마흔 즈음에 내 생애 최악의 컨디션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서른아홉, 오늘부터 마흔이라면, 몸도 달라. 어제까진 청춘, 오늘부턴 장년층. 마흔이란 나이가 녹록치가 않아. 마흔맞이 신호가 몸에서 아주 ‘빡쎄게’ 오거든.”


친한 언니의 조언이었다. 정말 그러했다. 생전 보약이란 걸 모르고 살았던 내가 ‘공진단’이 몸에 좋다는 얘길 듣고 한약방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건강기능식품을 쌓아두고 먹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잘 생긴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임신에 성공해 아이를 낳더라도 걱정이었다. 첫째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을까, 아이가 스무살이 되면 내 나이 환갑인데 과연 그때까지 잘 키울 수 있을까, 첫째 아이와 꽤 많은 터울이 질 텐데 괜찮을까, 이제야 겨우 찾은 평온한 내 일상이 아기로 인해 뒤죽박죽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었다. 늦는 나이에 하는 임신이라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거의 공포에 가깝기까지 했다. 


생명의 탄생은 인간의 몫이 아닌 하늘의 몫이라더니 우여곡절 끝에 임신을 했고, 결국 늦둥이를 낳았다. 첫째가 딸이었기에 자매를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 하늘은 남매를 허락했다. 

첫째에 대한 첫사랑이 너무 깊었던 탓인지 늦둥이가 뱃속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무덤덤했다. 늦둥이의 존재감이 실감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늦둥이를 처음 보자마자 나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나와 남편의 DNA가 그리 특별할 게 없어 기대치가 낮아서였을까. 예상 외로 잘 생긴 늦둥이를 보자 나는 기쁨에 가득 찼다. 


“우와~ 잘 생겼다! 내 인생에 잘 생긴 남자는 네가 처음이야.”


마냥 예쁘기만 했다. 앙증맞은 손발, 포동포동한 얼굴, 부드러운 살결, 사랑스러운 아기냄새... 

‘산후 폭풍’이라는 백일이 되기까지 인고의 시간과 조울감의 감정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늦둥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가장 예쁜 모습은 우는 모습이다. 순한 아기이지만 한 번 울기 시작하면 간간이 성깔이 보이곤 한다. 첫째가 아기였을 땐 한 번 울면 어떻게든 울음을 그치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별 짓을 다했다. 그런데 늦둥이는 다르다. 배실배실 웃으며 우는 표정을 관찰하느라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된다.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악을 쓰며 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렇게까지 최선을 다해 자신의 요구와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기특하기까지 한다. 


앙증맞은 입을 벌리고 코를 부비며 엄마의 젖가슴을 찾는 모습, 짧은 팔과 다리를 자랑하듯 나비잠을 자는 귀여운 모습,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으면 어느 틈엔가 일어나서 엉금엉금 기어 와 화장실 문을 빼꼼이 여는 모습...


엄마라면 아이가 보여주는 그 사랑스러운 일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알 것이다. 

첫째 아이를 키울 때 나는 그 소중한 순간들을 충분히 만끽하지 못하고 지나쳤다. 

서른 살 초반, 초보엄마였던 나는 항상 다급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조심스러웠다. 조금만 기다리면 아이가 스스로 자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여유란 걸 모르고 다그치기만 했다. 

아이가 제대로 못하는 것을 내 탓으로 생각했다. 어린 아이니까 제대로 못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는 왜 알지 못했을까. 때가 되면 다 된다는 걸 그때는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첫째 때는 최고로 키우고 싶고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은 마음만 있었지, ‘기다림’의 여유를 주지 못했다. ‘도대체 언제 커서 내가 좀 편해질까’만 생각했지, 아이가 보여주는 보석 같은 순간들에 집중하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내 품안에 있는데, 나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순간이 오기만을 손꼽았다. 아이가 내 품에서 떠날 날이 이렇게 ‘훅~!’하고 다가오는데 그때는 전혀 알 지 못했다. 




나이 마흔, 다시 육아

늦둥이를 낳고서야 나는 철이 들었다. 소프트웨어가 업그레이드되는 느낌이랄까. 

마흔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삶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쓸데없는 일이나 어리석은 일에 마음을 쓰지 않게 되었다. 더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을 향해 방향키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남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졌고 사소한 일에 얽매이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이것은 마흔이라는 묵직한 나이가 주는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인데도 일상을 관조하며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 말이다. 

만약 늦둥이를 삼십대에 낳았다면, 첫째 아이와 큰 터울이 없었다면, 나는 쫓기듯 일상을 살며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는 실수를 또 한 번 범했을지도 모른다. 


마흔 넘어 아이를 갖고 키우는 것은 모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유로운 여행이기도 하다. 인생에서 ‘뭣이 중헌지’ 알만한 나이이기에 아이를 키우면서 조급해하지도, 불안해하지도 않는다. 작은 일에 동동거리지도 않는다. 

늦둥이가 보여주는 작은 미소, 귀여운 행동, 사랑스러운 순간들을 내 머리 속 기억저장소에 차곡차곡 넣어둔다. 평생 할 효도를 다하기 위해 오늘도 열일 하는 늦둥이가 고맙기만 하다. 


아이 낳기 힘든 세상에 마흔 넘어 하는 출산은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기꺼이 고통을 치를만한 달콤한 대가가 있다. 

나의 삶도 성장시킨다. 삼십대에 첫째를 키울 때는 아이만 보이더니, 마흔 넘어 늦둥이를 키우니 아이들이 살 세상이 보인다. 물론 아이가 성장해감에 따라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난감한 일들이 수없이 펼쳐질 것이란 걸 안다. 그러나 불안보다는 희망을, 걱정보다는 가능성을 바라보고 싶다.


마흔 넘어 아이를 갖는 게 두렵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옆구리를 찌르며 “한 번 해 봐, 새로운 세상이 열려”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이 마흔에 다시 하는 육아가 내 삶을 이렇게 성장시킬 지 나조차도 몰랐으니까 말이다. 


잔치는 끝나지 않았다. 마흔 넘어 시작된 잔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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