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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어머니 이야기 3

판도라의 상자

브런치의 독자이기도 한 남편은 제가 쓰는 글은 티스토리든 브런치든 제대로 읽는 독자입니다.

그래서 시댁 이야기, 시어머니 이야기를 연재로 쓰면서 불편한 마음이 들어서 물었습니다.

나 : "당신이 불편하면 안 쓸려고"

남편 "내가 우리 어머니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당신도 쓰고 싶은 만큼 써, 괜찮아"

그렇습니다. 우리 남편이 달라졌습니다.


남편이 일찍 달라졌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 전 결혼 30주년을 보냈고 자식은 셋을 두었습니다.

글을 쓰면서 지나간 일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정리가 되는 것들이 있어서 글을 쓰는 일 자체가 저에게는 치료가 되는 것 같아 남편 말 대로 하고 싶은 만큼 한 후에 시어머니 연재 시리즈를 끝낼 생각입니다.



1994년에 결혼해서 1996년까지 살았던 지역에서 시댁까지는 차로 30분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의 거리는 시어머니에게는 부르면 갈 수 있는 거리, 기침하면 약 사들고 갈 수 있는 심리적 거리였지만 그당시 우리는 차가 없었습니다. 큰 애 낳고 차를 샀기 때문에 일 년은 차가 없었기 때문에 직행을 타고 가야 되는 시댁이 나에게는 굉장히 먼 것 처럼 느껴졌었고 불편했지만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주말에 가서 하루 자고 다음 날 아침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면 말씀하셨습니다.

시어머니: "점심 먹고 가라"

나: ...

드디어 점심 먹고 상을 치웠습니다.

시어머니: "저녁 먹고 가라"

나:...

그 때는 왜 그렇게 아니요, 집에 가서 쉴래요. 그 소리를 못했는지, 애초에 부모에게 싫어요, 안돼요 소리를 못하고 컸던 남편이 그 소리를 했겠습니까. 이제 결혼한 제가 할 수 있었겠습까. 네, 네 그렇게 저녁이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저녁밥 먹고 설겆이 마친 다음, 집으로 갈 수 있다. 야호 대한독립 만세를 부르고 있으면 나즈막히 말씀하십니다.

시어머니: "아침에 가라. 우리 땡땡이는 5년동안 통근도 했다"

나: ...

그 당시 어머니의 가스라이팅 중에 가장 강력했던 말 "우리 땡땡이는 5년동안 통근도 했다" 그 말은 우리를 아침까지 붙들어 두고 결국 아침 직행 버스를 타고 가게 만들었으니 아침에 돌아가는 나의 입은 사람 입인지 새부리인지 모르게 튀어 나와 있었을겁니다.


모국어로 싫어요 소리를 써 본 적이 없었을 남편은 언제나 시어머니의 콜에는 예스였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그로 인한 피로감을 느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니 남편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을겁니다.


그 당시에는 저만 힘들었습니다. 결혼해 보니 그다지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었던 아들 3형제의 장남이었던 남편은 결혼으로 이루고 싶은 원대한 꿈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제수씨들에게는 멋진 아주버니가 되고 싶다는 거 였고 부모님에게는 장남노릇을 잘 하고 싶다는 계획이 있었더만요.

남편이 써 놓은 대본에 원하지 않는 캐스팅이 되어서 조연 노릇을 했으니, 


'남편,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말도 안되는 계획에 저는 의지와 관계없이 끌려 들어가게 된 거고 남편의 꿈에 마음이 미치지 못하여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서울 살 던 시동생이 시댁에 내려온다고 연락이 오면 시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시어머니 : "땡땡이 내려 온댜. 니네가 큰 형인데 먼저 와서 있어야지"

토요일까지 출근하던 시절에 무슨 날도 아니고 그저 부모보러 온 다는 작은 아들이 집에 온다는 이유로 우리는 약속이 있어도 취소하고 시댁에 가야 됐습니다. 


그렇게 가게 되는 시댁은 정말 싫었습니다. 갈 때부터 제 입은 다시 새 부리가 돼서 나왔을겁니다.

시댁에 가는 게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되는 일이었습니다. 긴장이 알람이거니 걱정하고 잤던 어느 날 아침, 저를 깨우러 오신 어머니는 말씀하셨습니다. 

시어머니: "누구네 집 메누리는 아침에 못 일어나서 시어머니가 물을 짝 찌끄러땨"

어머니의 말투는 매서웠고 못된 새 엄마를 만난 콩쥐같은 기분으로 시댁에서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도대체 저에게 왜 그러셨을까요? 같은 해에 결혼했던 동서에게는 싫은 소리 한 마디 하지 않으셨는데 유독 저에게만 그러셨던 것은 큰 아들이 만만해서였을까요. 아니면 제가 만만해서였을까요.

아니면 그때는 젊으셨던 어머니에게 그럴 만한 기운이 있어서였을까요. 


시댁에 가기가 점점 싫어졌고 다녀 오면 싸우게 되는 94년부터 96년까지 2년 전쟁의 시작종이 본격적으로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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