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람이 나의 시아버지다.

평생을 고집 하나로 사셨고 나이를 먹으며 나이테처럼 늘어 간 당신 고집은 이제 아무도 말릴 사람도, 말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어졌다.

아마 이대로 사시다 한평생 본인 뜻대로 숭고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실 것 같다.

3년전부터 시댁은 물과의 전쟁 중이다.

집 안 어디에서 터졌는지 모르는 실핏줄같은 수도 파이프를 찾지 못 해 수도요금이 걱정되신 시아버지는 물을 쓸 일이 있을 때만 마당 밖 수도 계량기를 틀어서 물을 집안으로 흘러 보내시고 어지간한 물은 집 안에 양동이마다 받아 놓고 쓰시는 중이다.


정말 이게 실화냐! 하시는 분들 있겠지만 진짜라서 슬픈 시댁의 물과의 전쟁이야기는 끝나지 않는 우쿠라이나 전쟁처럼 계속되고 있고 승자도 패자도 없이 그저 지쳐가고 있을 뿐이지만 늘 그곳에서 사시는 시아버지가 지치는 게 아니라 일 년에 4번 이상을 가지 않는 우리가 지칠 뿐, 그래서 우리가 완벽한 패자이지만 결코 시아버지는 그만 둘 생각이 없으시다.


전쟁을 말이지..


수도관이 터져서 수도요금이 당신 생각보다 많이 나왔던 것이 전쟁의 시작이었다. 많이 나왔다고 해 봐야 십만원도 아니었을 돈이지만 동네 영감님들에게 십 이만원의 밥은 사드릴 수 있지만 당신 집의 수도요금으로 십만원을 내는 일은 시아버지에게는 용납못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딘가에서 새고 있을 물 줄기를 찾기 위해서 맥가이버 기술자 막내 시동생이 투입됐지만 그는 새고 있는 물줄기를 찾지 못했다.


왜냐고?? 그게 또 이유가 있다. 새고 있는 곳을 찾을려면 일정 시간동안 수도 계량기를 흘려보내 바닥이 젖어 있는 곳을 찾아봐야 되는데 시아버지는 바닥이 젖을 만큼의 수도 계량기를 열어 두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으셨기때문에 새는 곳을 찾을 수 없었기때문이다.


시동생: "아버지, 잠그지 말어요. 그냥 둬 봐야 새는 곳을 찾지, 저렇게 잠궈버리면 아무래도 못 찾아요"

시아버지: "그렇다고 언제까지 틀어두냐. 수돗세가 얼만디"

시동생: "아따 아버지 깝깝하네. 그냥 둬야 물이 새는 곳을 찾지 안그럼 평생 가도 못 찾어요"


시동생의 말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을 시댁에서 보게 될 지도... 아아 그러면 안되지만 그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드는 건 물이 샌다고 했던 3년전부터 지금까지 내가 본 그 분의 고집을 제대로 봐서 일 것이다.


남의 말 안들어, 가족 말 안들어, 시어머니 말 안들어,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듣고 사는 건지 모를 시아버지의 속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아마 시아버지의 평생에는 수도 새는 곳을 못 찾을 지 모른다. 수도 새는 곳을 찾느니 시댁 마당에서 유전을 찾는 일이 더 쉬울 지 모른다.

"여러분, 우리 시댁 마당에서 기름이 나와요"가 더 빠를지도..,


눈치껏 남편에게 물 틀고 오라고 하면 남편이 마당에 나가서 수도 계량기를 열어줬고 은혜롭게 나오는 물은 설겆이마저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알게 해줬다. 물론 행복은 잠시, 물 소리에 민감하신 시아버지는 마당으로 나가서 다시 계량기를 잠그고 남편이 그러지마시라고 얼마 안나오니 걱정 마시라고 해도 시아버지에게 물은 지켜야 할 문화 유산처럼 흔들림없는 신념이었다.


아무도 시아버지를 막을 순 없다.

시동생이 나를 보고 말했다. "10년만 참으셔유"

10년이면 시아버지 연세 96세, 아무리 고집불통 아버지래도 자기 아버지라 앞으로 10년은 더 사셨으면 좋겠는지 자식은 자식이구나 싶었다.


불행하게도 대문짝한 T, 시아버지가 앞으로 물을 제대로 쓰는 일은 없을 지 모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본인 신념의 문제, 사상의 문제라서 그럴 것이다.

남에게 사주는 식사비 10만원은 아깝지 않지만 당신 집에서 새는 물은 1원이 아까우신거다.

얼마전에는 아끼고 아낀 돈을 목돈으로 만들어서 우리들에게 나눠 주셨으니 시아버지가 정말 돈에 인색한 분은 아닌것이 증명되었고 지금 시아버지는 평생 자기가 옳다고 믿어 온 신념이나 사상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저항선을 구축해 놓고 물과의 전쟁을 하고 있는 중인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납득할 만한 돈이면 10만원도 괜찮고 100만도 괜찮고 우리들에게 주었던 천단위의 고액도 괜찮지만 이해할 수 없는 돈 1원은 아무리 누가 안 쳐다보는 돈이래도 당신은 싫은 것이다.

나는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래야 시아버지가 덜 밉다)


그렇게 더웠던 지난 여름, 시댁의 수도요금은 2500원이었다. 얼마나 잠궈놓고 쓰질 않았으면 그랬을까 놀랄 일이지만 그러고 두 분이 여름을 나셨다.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화 맞습니다.


전쟁은 이권때문에도 일어나지만 상호간 신념이 다를 때도 일어난다. 시아버지의 물과의 전쟁은 당신의 신념 문제일거라 생각한다. 시아버지의 말씀처럼 일 년에 몇 번 가지 않는 시댁이니 불편함은 당신들의 몫, 우리는 그저 잠시 견딜 뿐이지만 하루를 살아도 물이 콸콸 나오는 시댁에서 있다 오고 싶은 것이 진심이다.


변하면 돌아가신다고, 시아버지가 이제부터 너희들 물을 펑펑 써도 좋다라고 하실까봐 걱정이다.

물을 쓰라고 해도 걱정, 계량기 틀어쥐고 이대로 살아도 걱정이지만 추석이 지나갔다. 그것만해도 다행!!

작가의 이전글 교토 국제고등학교 야구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