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플민트 Apr 07. 2023

아빠가 없어 미안해

딩크를 결심하다


01. "아빠가 없어 미안해"


남편과 만난 지 2달 만에 결혼한 친구 A. 임신한 채 이혼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딸아이를 키워왔다. 100일 밖에 안 된 갓난아이를 들쳐 업고 치킨가게를 준비해 열었다. 낯선 일임에도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딸과의 안정된 삶의 위해 열심히 일했고 성과도 거뒀다. 7년 만에 의정부에 꼬마 빌딩을 사는 부도 축척했다. 딸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곧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키겠다며 서울로 이사했다. 딸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온 A가 엄마로서 존경스러웠다. 딸의 초등학교 입학 전, 모녀가 세계 여행을 하며 추억을 만드는 모습도 멋있었다.      


하지만 A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였다.   


“아이가 아빠 없어서 주눅 드는 거 같아. 아빠를 만들어주고 싶어. ”     


친권을 포기한 아이 아빠를 새삼 떠올리며 원망했다. 아이가 낯선 남성을 잘 따르는 것, 다른 가족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등이 아빠의 부재 때문이라고 여겼다. 아빠만 있으면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3~4인 가구가 행복과 안정을 보장해준다는 환상이다. 자신과 딸 사이의 끈끈한 애정보다, 경제적 안정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노력보다 아빠의 부재보다 못한 것으로 치부한다.      


정작 A는 스스로도 엄마, 아빠, 남동생으로 이뤄진 4인 가구에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해왔던 걸 잊었다.       


02. 누가 비정상이래

    

비혼모 사유리가 아들과 함께 KBS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것이 이슈가 된 적 있다. 부모의 육아 도전기를 다루는 프로그램 취지와는 무관하게, 문제가 된 건 남편이자 아빠의 부재였다.        


방송사 앞에서는 사유리 모자의 출연 반대 시위가 열렸다. “나중에 아이가 아빠를 찾게 되면 어떻게 될지” “본인 욕심만으로 아이의 인생은 생각하지 않는 것인가” 등 부정적 댓글도 이어졌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혼모 출산을 부추기는 방영을 즉각 중단해 달라’는 제목의 글도 올라왔다. ‘비혼 출산’이라는 비정상적인 방식이 마치 정상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들의 주장에는 결혼을 통해 남녀가 함께 자녀를 출산하는 것만 정상이라는 편견이 깔려 있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양육하고 자녀를 사랑해줘야 자녀는 사랑을 듬뿍 받고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부모가 모두 있어야 사회적 위기 속에서 자녀를 보호해줄 든든한 안전망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사유리도 해당 방송프로그램에서 같은 걱정을 한다. “젠이 아빠를 모르는데 그림책을 보며 엄마, 아빠라고 해”라면서.


신경 쓸 필요 없어.
우리가 두 배로 노력할 거야.
 

젠의 할아버지는 주저없이 정답을 제시한다. 손주 젠을 향한 진심 어린 마음과 딸 사유리를 지지하는 신뢰의 사랑이 있으니 그들은 정상 가족이다.      



03. 4인가족에서 행복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 정상 가족 프레임에는 남녀 부모와 자녀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구성된 가족을 비정상으로 본다는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정상가족’은 더 이상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가족 구성 형태가 아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1년 3인~4인 가구는 전체의 34%로, 절반에 못 미쳤다. 반면 1인 가구가 33.4%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2인 가구는 28.3%에 달했다. 1~2인 가구를 합치면 62%가 넘는다.


싱글족, 한부모, 조손가구, 비혈연 가구, 딩크족 등이 훨씬 많지만 이들을 비정상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하고 수치상 많지도 않은 남들처럼 살라고 참견하고 조언한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4인 가족의 삶은 마냥 행복하지 만은 않았다.


4인용 식탁에서 다 같이 식사를 하는 일은 드물었고, 가끔 함께 먹어도 대화는 없었다. 권위적이고 게으른 아버지와 함께 사는 어머니는 늘 고단해보였다.  아버지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면서 집안일까지 도맡아야 했다.  고되고 아파도 잠깐 몸을 눕힐 여유조차 없었다. 


장녀인 나는 그런 어머니를 옆에서 도왔다. 어머니를 도와 동생의 밥을 챙겨야 했고 방과 후 친구들과 돌러다니는 게 눈치보였다. 동생을 잘 챙기지 못하면 늘 혼이 났다.  사촌오빠는 당연하게 가는 서울 유학을,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치열하게 우기고 울어서야 갈 수 있었다.  


누군가의 희생과 봉사로 유지되는 가족이었다. 



04. "아이 없지만 괜찮아요"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가면서 '정상'으로 여겨졌던 가족 형태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꼈다. 이제는 그 핵가족마저 파편화되고 있다. 4인 가족 구성원으로서 얻는 행복과 이득보다는, 구성원으로서 져야 하는 부담이 더 버겁다고 느끼는 이들 때문이다.


딩크족도 그 중 하나이다. 다만 비혼가정, 조손가정,  1인가구 등 지원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가정들과 달리 사회적 눈총을 받는다. 0.78이라는 낮은 출산율의 원인이면서, 책임지기 싫어하고 이기적인 인간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딩크족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잘 내지 않았다. 어떻게 사는지, 부부끼리 사는 삶의  만족도와 불만족도는 어떤지 등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아이가 없어서 이혼도 쉽고 불행하다는 편견에 시달리기도 한다.


하지만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딩크족들이 속속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영호 작가 부부, 김이나 작사가 부부 등등 자신들이 딩크라고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아이 없는 부부의 삶도 꽤 괜찮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