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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Apr 17. 2023

"내 아를 낳아도"

딩크를 결심하다


01. "내 아를 낳아도"     


한때 일요일 밤 전 국민의 웃음을 책임졌던 KBS 개그콘서트 '생활사투리' 코너.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 등 각 지역의 사투리로 많은 유행어를 파생시키며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중 가장 큰 인기를 얻은 건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의 경상도 사투리 버전.     


 내 아를 낳아도


이 유행어를 만든 개그맨 A는 해당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여자친구에서 실제로 이렇게 프로포즈를 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이 개그가 웃기지만은 않았다. 고향이 경상도라 사투리 억양이 익숙한 탓도 있었겠지만, 여성은 당연히 출산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해 듣기 불편했다.


출산은 내 이름 석자를 앞세워 살아온 삶을 송두리째 바꾸고 '00의 엄마'로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중차대한 일이었다. 또 내가 낳은 아이와는 평생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이어가야 한다. 잘못했다 싶으면 헤어질 수도 있는 결혼과 달리,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게 출산이다. 결혼과는 별개로 좀더 고민하고 결정하고 싶었다.



02. 딩크 할까 말까     


"저는 30대 초반에 이미 결정을 내렸어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요. 그러면 내 삶이라는 것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그냥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사라지는 것이라면 그럼 세계는 뭐냐? 세계는 우리와는 전혀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이 세계는 인간의 운명에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


김영하 작가는 자신의 책 <말하다>에서 일찌감치 딩크를 맘먹었다고 소개했다. 인간은 죽으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고 자식을 통해 이어가는 삶에 집착하지 않는 허무주의에 기반한 그의 결심은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의 굳고 확고한 소신이 부러웠다.  


요즘 20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4B’, 비혼‧비출산‧비연애‧비성관계 선언은 비장했다. 비출산 결정에는 가부장적이거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의미가 담겼다. 강한 신념을 가진 그들은 젊은 투사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30대 중반에 결혼했음에도 자녀를 가질지 말지를 작정하지 못했다. 대단한 사회적 소신도, 철학적 신념도 없지만 출산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억울하고 겁나는 소심한 나를 위한 길라잡이는 없었다.

일본작가 기시미와 고가가 공저한 책 <미움받을 용기>에서 철학자는 '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면서 나를 위해 살라고 했지만, 뭐가 나를 위한 것인지가 헷갈리는 나는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했다.


정작 유자녀와 무자녀 중 어느 쪽이 더 행복할지, 나를 위한 것인지 선택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딩크로서의 삶의 행복할지가 불분명했다. 주변에는 무자녀로 살아가는 부부가 거의 없고 그들의 삶과 관련된 얘기를 들을 수 없어 예측조차 어려웠기 때문이다.  출산한 친구들도 자녀를 낳아라, 낳지 말라 의견이 양분됐다.



03. 순리를 거스르는 일인가


출산을 주저하는 내 스스로에게 의문이 생겼다. 출산과 모성 본능은 여성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던데 왜 난 출산 여부를 고민하는 것일까. 출산을 주저하는 게 세상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일까. 내가 본능을 잃어버린 것일까.  


사실 인간이 출산할지 말지를 공개적으로 고민하게 된 역사는 얼마되지 않았다.


피임이 없던 시절, 여성은 초경 이후 평생을 임신과 출산, 양육에 매여 살아야했다. 피임을 교육한 사회운동가 마가렛 생어는 11남매였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50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총 18번의 임신을 하고 7번의 유산을 했다고 한다.


반복된 임신과 육아를 반복하다 죽을 수 있어도 아이를 낳아야만 했고, 출산과 육아로 인한 본인의 행복도와 불행을 따지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의지대로, 뜻대로 살 수 없었고 주어진 삶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산아제한 운동과 피임의 선구자 마가렛 생어(1879~1966)


하지만 과학적인 피임법이 생기면서 출산은 인간의 통제 하에 들어왔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시기에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원치 않으면 임신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됐다. 선택의 여지가 생기면서 고민이 시작된다. 남자도 원치 않는 출산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건 마찬가지이다. 기존 사회에서 가졌던 부양의 부담을 덜기 위한 고민을 하게 됐다.  


과학과 사회의 발전이 출산을 조절하면서 삶의 질을 극대화하는 접점을 모색할 수 있게 됐고, 내 고민도 이 지점에 있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여성 한 명이 가임기간 중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합계출산율이 0.78까지 떨어진 걸 보면 접점을 모색하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닌 것 같다.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순리를 거스르는 게 아니라 사회 변화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04. 딩크인 듯, 딩크 아닌, 딩크 같은    


언제 엄마가 될지 아니, 엄마가 될지 말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출산을 두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답정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가고픈 길에 대한 자료와 확신이 부족했다. 내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을 섣부르게 하고 싶지 않았다.


확신이 설 때까지 출산을 미루기로 했다. 10개월의 짧은 만남 동안 연애와 결혼 준비를 다 해치운 터라 남편도 둘만의 신혼생활을 즐겨보자면서 동의했다. 그러다가 한 명이 아기가 낳고 싶다면 그 때 다시 얘기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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