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를 갖지 않을까 한다는 내 말에 덤덤했다. 부부의 행복과 자녀는 직결된다는 길고 지루한 훈계를 들을 작정을 하고 말을 꺼낸 내가 당황할 정도였다.
"그래. 굳이 낳을 필요 있니. 너 하고 싶은대로 해. "
엄마는 "내가 딩크야"라고 단호하게 말하지 못하는 나보다 쿨했다. 36살에 결혼한 딸이 애가 쉽게 생기지 않을 수 있고 낳아도 회사 다니면서 키우기가 벅차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 혼자 있을게"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혼자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딸이 육아로 누리는 기쁨 못지 않게 우울증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내심 하고 있었다. 대구에 있는 엄마가 서울에서 회사 다니는 나의 육아를 돕기도 어렵다는 계산까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정작 엄마가 말리지 않으니 괜시리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본인도 나를 낳아 키웠고 지금 이렇게 전화통화를 하며 별의 별 얘기를 시시콜콜 나누고 의지하며 지내고 있으면서. 자식이 있으면 좋은 점도 있으니 좀더 신중하게 결정하라는 예상 답변을 내놔야 하지 않나.
"엄마는 자식 키우면서 좋은 점 없었어?"
"내가 뭐 애를 제대로 키웠니. 할머니가 키웠지. 그래서 늘 힘들었어. "
엄마는 늘 우리에게 미안해했다. 20년 가까이 명절에도 문 한 번 닫지 않고 아침 9시부터 자정까지 가게를 운영했다. 그 와중에 아빠와 직원들 밥까지 손수 다 챙겼다. 가게 문을 닫은 후 빨래와 집 청소하는 것도 엄마 몫이였다. 가게 한쪽 구석에 붙어있는 부엌1·방 2개에서 거주한 탓에 엄마는 우리 세 자매를 할머니와 고모 손에 맡겼다. 당시에는 그게 최선이라고 엄마는 믿었고 철이 들면서부터 나도 그렇게 믿어왔다.
우리 가족은 그렇게 뿔뿔히 흩어져살았다. 엄마는 입학식과 졸업식도 늘 허겁지겁 달려왔다가 사진만 찍고 급히 돌아가 가게 문을 열었다. 지금도 그 시절 얘기를 하면 금방이라고 눈물을 쏟을 거 같은 얼굴을 하고 우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할머니·할아버지에게 한없이 따뜻한 사랑을 받았고 경제적으로 딱히 부족한 게 없어 좋았다고 말해도 엄마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는 듯했다. 우리가 자라면서 예쁜 짓을 하는 모습, '엄마엄마'를 찾는 목소리를 매일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과 서러움이 더해진 감정이라고 했다.
엄마는 일하는 내가 그런 아쉬움과 죄책감을 갖길 원치 않았다.
02. 덜 불행한 삶
캐나다 빅토리아 어학연수 시절 만난 친구 A. 1년을 채우고 귀국한 나보다 6개월을 더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같이 취업전선에 뛰어들 줄 알았던 A는 귀국 직후 소개팅을 했고 두 달 뒤 그 남자와 결혼을 했다. 유학생인 남편을 따라 홀연히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갑작스러운 결혼 소식에 A의 부모님도, 나도 혼란스러웠다.
A는 결혼에 대해 확고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부모 품을 떠나 홀로 서울 유학을 해온 탓에 취업보다는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를 원했다. 상하이로 가자마자 임신했고 전업주부로 살아가면서 낯선 땅에서 꿋꿋하게 아기를 키웠다.
하지만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위해 귀국한 A는 자신의 당시 선택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며 아쉬워했다. 엄마가 되면 아이가 예쁘고 귀한 것과는 별개로, 여자와 사람으로서의 삶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줄 몰랐단다. 결혼하면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보람 있는지에 대해서만 어른들과 방송에서 말해왔다는 거다.
홀로 해외에서 아이를 키워왔기에 난관과 설움을 더 크고 절절했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처럼 한쪽 면만 보지 말고 행복과 불행, 양면을 다 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자녀가 자신을 보고 웃으면 정말 행복하지만 힘들 때는 너무 힘든데, 힘든 것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 때문에 힘들다고 말하는 것처럼 허용되지 않는 느낌이란다.
아이가 있으면 행복해. 아이가 없으면 덜 행복할 수 있지만 덜 불행할 수도 있어.
A의 말에 나는 딩크 결심을 굳혔다. 덜 행복하더라도 덜 불행할 수 있는 삶이 좋다. 남편과 함께 밥 먹고 운동하고 넷플릭스를 보며 수다 떠는 정도의 행복이면 족하다. 희생이 따르는 더 큰 행복보다는 지금 느끼는 소박한 행복과 안정감이면 충분하다.
"노후에 어쩌려고 그래", "본인이 낳으면 다르다"는 말에는 별로 신경이 쓰지 않았다. 자녀의 유무가 노후의 외로움을 좌우하지 않는다는 것, 노후는 대비책을 마련할 시간이 있다는 것, 아이는 낳으면 절로 크지 않는다는 것 정도의 확신이 있었다.
03.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와 그의 시 '가지 않은 길'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20대 중반 쓴 시 '가지 않은 길'. 20대 중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 썼는데, 모든 사람의 앞에 있는 두 갈래 길에 대해 이야기 한다. 둘 다 걸어보고 싶지만 모든 사람은 둘 중 하나만 택해야 하고 누구도 두 길을 한 번에 걸을 수는 없다.
시인은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그 선택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하겠노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누구나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상황, 그 선택으로 인해 펼쳐지는 삶의 흔적을 이야한다.
이 시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제목이다. 시인은 분명 한쪽 길을 선택했지만, 자신이 가는 길보다 선택하지 않은 '가지 않은 길'에 방점을 찍고 있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그만큼 미련이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이 시의 1연에는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다"라고 적혀 있다. 미련이 묻어나다 못해 뚝뚝 떨어지는 그 심정에 공감이 가 피식 웃음이 난다.
인간은 그 때 그 선택을 했더라면 하는 미련 섞인 상상을 해보기 마련이다. 엄마와 친구A가 내게 해주는 말들에서 그런 미련이 묻어난다.
나 역시 딩크를 선택하더라도 자녀를 가진 삶에 대한 미련은 남을 것이라는 걸 안다. 실제 주변인들의 임신 소식을 접할 때 가끔 흔들리는 내가 느껴졌다.
함께 딩크 여부를 논의해온 친구 B가 작정한 건 아닌데 아이가 생겼다면서 배시시 웃을 때, 그 모습이 참 예쁘고 행복해 보였다. 한껏 목소리톤을 높이고 호들갑 떨며 축하 인사를 건냈다. 축하 선물로 뭘 사주면 좋을까를 의논하는 동안 내 머리 속은 복잡했다.
B도 아이가 생겼다면 이제 내 주위에 딩크는 없는 건가. 나만 아이 없이 살아도 되는 건가. 난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도태되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딩크에 대한 후회가 없는 걸까.
하지만 희한하게도 거기까지였다. 미련도 있고 친구를 똑닮은 아이를 보면 부럽기도 했지만, 아이를 낳아서 키우겠다는 생각으로는 연결되지 않았다. 동지로 여기던 친구가 나와 같은 길을 가지 않는 것에 대한 아쉬움 정도였던 것 같다. 그렇게 좀더 가고 싶은 길을 선택했다. 가지 않은 길에 놀라운 행복을 발견한다는 걸 알지만, 선택한 길에만 존재하는 다른 종류의 행복에 만족하기로 했다.
04. 바껴도 괜찮아
훗날 딩크를 후회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다. 다가오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내 결정에 대한 책임의 두려움, 결과가 잘못되거나 완전하지 못할 것에 대한 두려움, 후회하게 될 결정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매사에 완벽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은 완벽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낳는다. 완벽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 시기를 놓쳐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하게 된다.
딩크 결심은 절대로 바뀔 수 없는 법칙이 아니다. 그저 내 마음이 하는 일이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기에 딩크를 번복한다 해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 훗날 마음이 바뀌면 아이를 가지면 되는 일이다.
신체적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더라도 육아를 하는 방법이 출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입양을 고려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육아의 행복도 느낄 수 있다. 어차피 기존의 정상 가족이라는 틀을 깨려고 먹었던 맘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