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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플민트 Oct 22. 2023

딩크족의 후회?

1. "아이 가진 것을 후회하나요?"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 시즌4에서 클레어 언더우드는 영부인이자 재선의 나선 남편의 부통령 러닝메이트이다. 상대당의 대선 후보 콘레이가 납치를 당하면서 콘레이의 부인과 두 자녀가 백악관으로 피신하게 된다. 거실에 마주 앉은 클레어와 콘레이 후보는 거실에서 차를 마신다. 자녀들을 선거 운동에 적극 활용하는 콘웨이 후보의 부인은 클레어에게 질문을 던진다.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나요?"


그러자 클레어는 잠시 콘웨이 후보의 아내를 응시한 뒤 되묻는다. 


"아이를 가진 것을 후회하나요?"

콘웨이 후보의 아내는 말문이 막힌 듯 클레어를 쳐다보다 대답하지 못한 채 커피를 마신다. 




2. 유자녀 가정의 금기어 


유자녀 가정의 부부에게 아이 가진 적을 후회하냐고 질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부가 아이를 낳는 것은 선택의 영역이 아닌, 당연한 일이고 수반되는 어려움은 힘들어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소중한 생명이 태어났기 때문에 '후회'라는 말은 입에 담는 것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여긴다. 아이가 주는 행복과 보람은 워낙 크고 소중해, 육아 우울증 또는 힘겨움 등의 고통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육아에 따른 고통과 희생이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것이 점차 알려지고 있다. 누구보다 자식에게 헌신적이었고 5명의 자녀뿐 아니라 손녀인 나까지 도맡아 키워야 했던 할머니는 그런 말을 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아보고 싶다고. 일제강점기 야간 학교조차 겨우 다녀야만 했던 할머니는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도 하고 혼자 넓은 세상을 맘껏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하면서 살아보고 싶다고 하셨다. 


자녀가 있는 친구들도 다시 태어나면 혼자 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했다. 아이와 남편에게서 벗어나 그저 자신이 중심인 삶을 꿈꿔본다고 말한다.  


할머니도, 친구들도 자녀가 있는 삶을 후회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녀는 삶의 가장 큰 열매이자 자랑이었다. 설령 그들이 다시 태어난다고 해서 자녀 없는 삶을 선택할 것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부모가 됐을 경우 자녀가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자신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 다 따져보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현재의 삶에 대한 푸념 정도일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태어난 자녀들을 책임지고 묵묵히 키워가면서 말이다.



3.  딩크족의 연관 검색어


딩크족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맨 앞에 나오는 연관 검색어가 '후회'다. '후회'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친다는 뜻이다. 딩크족을 염두에 둘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 '불행하지 않을까'임을 추정할 수 있다. 


후회의 정도는 결정의 중요도에 비례한다. 부부에게 자신을 닮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고 그 시간이 지나면 되돌릴 수 없기에 중요한 결정이고,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딩크족이 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평소 후회하기 싫어 심사숙고하고 선택하는 편인 내게는 더욱 그러했다. 필요 이상으로 몰입해 너무 많은 시간을 고민했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나는 딩크족을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 시험관을 했다. 3번의 실패를 겪은 후 더 이상 시험관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이것이 딩크족을 선택한데 따른 후회라면 후회의 과정을 참으로 다사다난하게 겪은 셈이다.  


하지만 후회의 과정을 통해 나는 그동안 갖지 못했던 확신을 얻었다.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 행복이라는 확신 말이다. 시험관 시술을 하면서 당장 내 삶의 우울함과 비참함을 견디지 못했고, 아이를 통해 얻을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내 행복을 희생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후 나는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이 무자녀로 사는 삶을 받아들이고 부부만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친구 부부들 중 딩크족을 하다가 결혼 3~4년 차쯤 딩크족 소신을 버리고 아이를 가진 커플들이 상당수다. 딩크족을 하겠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이 아이를 갖는 경우가 많다. 우리 부부처럼 오랫동안 아이가 없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소수다. 아이가 있는 삶을 선택한 이들은 종종 내게 얘기한다. 


"너도 좀 더 빨리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으면 좋았을 텐데. " 


그럴 때면 나는 '내가 아이를 많이 원했다면 아이를 갖겠다는 생각이 좀 더 빨리 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내게는 아이가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음에도 몰랐던 것이다. 폐경이 다가오면 진짜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시험관 시술에 나서게 됐다. 정해진 틀에 짜인, 남들과 같은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모범생처럼 살아온 나는 남들이 하는 걸 못 한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면서 딩크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내 마음의 소리를 잘 들리지 않았다.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이를 위한 미래의 행복과 나 자신의 행복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고서야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를 명확하게 알게 됐다. 시험관 시술을 접은 나는 이후 마음이 편해졌고 아무런 미련도, 후회도 남지 않았다. 딩크서 무자녀 부부가 됐고 마음은 어느 때보다 편하다.  한 번쯤 자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자녀가 주는 기쁨은 어떤 걸까 생각할 때면 내가 만족하고 행복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4. "노후에 후회해" 


지금이야 좋지. 노후에 외로워, 후회한다고. 

딩크족이라면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씁쓸한 생각이 들면서도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적어도 지금의 내 삶은 좋아 보이는구나.'


지금의 내 삶이 만족스럽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지금이 모여서 내 삶이 되는 거니까. 


자녀가 없기에 노후가 외로울 수 있다는 것은 두려운 부분이기는 하다. 남편이 없는 삶을 생각하면 막막하고 슬프다. 하지만 그런 노후가 언젠가는 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다행인 것은 노후에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점이다. 나 아니면 혼자 남을 배우자를 위해 내 건강을 스스로 꼼꼼히 챙기고, 다른 이들과의 인간관계를 두텁게 만들고 부부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을 일찌감치 만들어가고 있다. 인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노후를 만들 시간과 여유가 있다는 건 무자녀 부부의 또 다른 장점이다. 


어느 선택이나 후회는 늘 존재한다. 살다 보면 후회했지만 후회할 일이 아니었고, 후회할 일이 아니었지만 후회되는 일로 뒤바뀌는 상황도 생긴다. 일어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의 구름으로 덮여 현재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불안감을 걷어내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들여다보고 현재를 결정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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