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으으~~~~~!"
두 팔을 끝없이 위로 뻗고 온 몸을 뒤틀며 한껏 기지개를 편다. 매일 아침 6시 10분에 울리는 주중 알람은 없다. 일어나라며 흔들어 깨우는 사람도 없다. 주말, 절로 눈이 떠지면 그 때가 기상 시간이다.
침대 왼편에 있는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한껏 독이 올랐다. 따사로운 햇살을 직통으로 맞으면서도 이제서야 눈이 떠지다니. '더이상 자는 건 양심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 때쯤, 화장대 앞 전자시계는 아침 9시 35분이라고 알려준다.
옆에는 여전히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남편이 있다. 어젯밤 그동안 바빠 제대로 못 본 '나는 솔로'를 몰아보겠다고 벼르더니 또 새벽 4시까지 봤나 보다. 한쪽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입 걸리고 열심히 자는 그의 모습을 보니 세상 꿀잠을 즐기는 중임이 틀림없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침대 밖으로 빠져나와 거실로 향한다.
네스프레소 머신에 강도 7의 쓴 캡슐을 골라넣고 커피를 내린다. '웅~' 하는 기계음과 함께 짙은 커피향이 새어나온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커피향을 마음껏 음미하면서 주말 아침임을 재차 실김한다.
"어휴, 추워. "
오늘 배달된 종이 신문을 가져오기 위해 현관 문을 연다. 그 새 선선해진 공기에 나도 모르게 "춥다"는 말이 터져나와 놀란다. 10월은 초와 말의 기온 차이가 드라마틱하다 싶다.
갓 내린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들고 종이 신문 1면의 제목을 대충 읽어본 뒤 뒤집어 뒷면부터 본다. 기사보다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논리를 읽을 수 있는 칼럼을 좋아하는 이유에서다.
"아직도 종이신문을 보느냐"며 신기해하는 이들이 있지만, 커피 한 잔과 함께 주말 아침 종이신문을 읽어내려가는 게 소소한 행복이다. 커피의 향이 곁들여진 종이 신문 냄새가 좋고 아직 아무도 펼친 적 없는 신문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소리도 좋다.
잔잔하게 흐르는 쇼팽의 환상즉흥곡에, 거실 통창을 통해 집 깊숙히 들어오는 겨울철 따스한 아침 햇살까지 더해져 여유로움은 배가된다. 주중 묵직하게 짓누르던 어깨의 피로가 스르르 사라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힐링의 시간이다.
30분쯤 지났을까.
안방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남편이 잠에서 깬 모양이다. 금방 다시 조용해지는 걸 보니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켰나보다.
난 거실 식탁에서, 남편은 안방 침대에서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주말 아침을 즐긴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평화로운 시간. 피로를 풀기 위해 딱히 대단한 걸 하지 않아도 에너지가 소진된 나를 충전하고 요동치던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INFP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을 때부터 난 나만의 시간을 통해 주중 5일을 버텼다.
오전 10시30분 제법 에너지가 충전됐다 싶을 때쯤, 마음 한 켠에서 혼자 있는 게 지루하다는 생각이 슬며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안방 문이 열리고 머리에 까치집을 지은 남편이 나온다. 혼자만의 시간을 적당히 만끽했고 이제는 같이 있어도 좋을 때쯤이라는 걸 의식하지 않고 몸이 절로 아는 건 10년 넘는 결혼생활의 노하우다.
좁은 집이지만 분리된 공간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다 말을 걸 상대가 나타나면 은근히 반갑다. 그렇게 각자의 공간에서 혼자만의 시간은 끝이 난다.
"잘 잤어요? 배 안 고파요?"
"고파요. 뭐 먹지? "
"난 과일 간단하게 먹으려고. "
"그럼 난 치아바타 샌드위치 먹어야겠다. "
아침을 간단하게 먹거나 건너뛰는 남편과 아침을 든든히 챙겨먹는 나. 엇갈린 취향에 아침식사는 자신이 먹고 싶은 걸로 각자 준비한다. 남편은 자신이 먹을 과일을 흐르는 물에 씻고, 난 냉동실에 있는 치아바타를 꺼내 오븐에 넣는다.
같은 메뉴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한 섭섭함이나 아쉬움, 귀찮음은 전혀 없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한다.
먼저 식사 준비를 끝낸 사람이 덜 끝낸 사람을 도와주고 테이블 위에 예쁘게 세팅을 한다. 어떤 그릇과 찻잔을 쓸지, 어느 테이블 매트를 쓸지 궁리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면 식탁 위에 마주앉아 식사를 한다.
주말 아침, 남편이 먹을 스테비아 방울토마토와 나의 아보카도 하몽 샌드위치.
"오호, 이번 토마토 맛있는데. "
"그래? 다행이다. 그 집 과일이 실해. 이 치아바타도 괜찮다. 한 입 먹어볼래? "
"꽃 한다발 사와야겠다. 테이블이 좀 심심하네. "
우리의 대화는 오늘 자전거를 탈지, 등산을 갈지, 넷플릭스를 볼지로 이어진다. 남편이 약속 있을 때는 내가 할 일을 미리 만든다든지, 청소를 한다든지 따로 계획을 짠다. 남편 없이 나 혼자 보내는 시간도 좋으니까.
설거지는 그 때 그 때 손 드는 사람이 한다. 아침 준비를 좀 덜 하거나 한 주를 덜 피곤하게 보낸 사람이 눈치껏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까지 누가 할지를 두고 서로에게 미뤄본 적은 없다. 설거지 양이 적어 그다지 부담되지 않기 때문이리라.
설거지를 하지 않는 사람도 혼자 앉아서 쉬는 법이 없다. 익숙하게 거실 걸레질을 하며 청소를 한다. 그동안 설거지를 끝낸 사람은 집에서 키우는 바질과 고수를 들고 현관문을 열고 나가 아파트 복도에서 바람을 맞힌다.
홀로 사는 옆집 할머니도 복도로 나오신다. 핸드폰 화면이 너무 어둡다면서 좀 밝혀줄 수 있느냐고 물어보신다. 아들이 오늘 오긴 할 텐데 그 때까지 기다리기가 답답하시단다. 순식간에 밝아지는 화면을 보시더니 속이 후련하신 듯 얼굴이 환해지신다.
"너넨 주말에 둘이 있으면 뭐 하니? 뭐 할 게 없지 않니? "
친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다. 우리 부부의 주말에는 아이들이 주는 생명력과 활기는 없다. 하지만 평온함과 안정감이 있다. 우리는 주말 따로, 또 같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리고 재충전을 한다.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상대의 스타일을 파악해 싸울 일이 크게 줄었고 평온함과 안정감은 배가 됐다.
각자 하고 싶은 걸 할 거면 혼자 사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따져물을 수도 있지만, 내가 원할 때 같이 대화하고 취미를 공유하며 함께 밥 먹을 수 있는 동반자가 있다는 만족감은 꽤 크다. 많은 고민과 난관을 공유하고 함께 헤쳐나갈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돼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정감도 좋다.
간격을 지키면서 외롭지 않게, 방해받지 않으면서 동반자를 배려하는 딩크족의 삶. 부모는 아니지만 행복한 부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또 지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