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자신 있게 '내 취향'이라 말해 온 것 중 하나가 있으니 바로 시트콤이다. 어영부영 얼렁뚱땅 뒤죽박죽 하자투성이인데도 서로가 서로를 바꾸려 하지 않고어찌어찌 잘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꼭 내가 겹쳐 보여서이다. 그들을 훔쳐보고 있노라면 내 일상의 모든 심각한 고민들도 별 것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좋아서이다.
어떤 구린 상황에서도 서로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풉-하고 웃음을 뿜을 수만 있다면 그 누구와라도 화해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시트콤 속 여느 앙숙들이 그러하듯이. 주위 사람들을 시트콤 속 캐릭터와 싱크로율을 따져보고 웃음 짓는 건 나만의 취미. 20여 년간 스스로가 유쾌하고 생기 있고 긍정적인 시트콤 속 주인공 같다고 생각해왔다. 웃음사냥꾼, 웃음대법관, 유잼노죄 노잼유죄가 감히 밝혀왔던 내 삶의 슬로건이다.
회사의 친해진 선배와도 한 때 이 회사의 존재 자체가 시트콤이라는 식의 결론으로 귀결하며 깔깔대던 밤들이 있었다. 하루 중 우스꽝스럽고 열받는 일들을 웃음거리로 승화하며 오늘의 에피소드 제목을 정하는 놀이도 했다.
증거
그런데 언제부턴가, 웃기던 일들이 웃기지 않아졌다.
방송기자로서 사회부 사건팀 2년, 사회정책부 2년, 그리고 산업부 2달째. 내가 택한 시간을 지날수록 나는 퍽 괴팍해지고 웃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시트콤적으로 바라본 세상엔 죽이고 싶은 동시에 사랑스러운 사람들과의 웃고 넘어갈 일들로 가득했고, 그런 시선을 가진 스스로 역시 충분히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하루 종일 회사 사람의 흠을 비꼬며 내게 내려온 지시의 부당성과 굳이성에 대해 투덜대면서도 제대로 된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는 나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껏 가오를 잡고 영혼 없는 준엄한 지적들을 싸질러대는 모습은 더욱 그러했다.
큰일이 난 거다.
'빼빼로데이 데이'이라고 길이길이 기억할 날이 하루 생겼다. 무감각해질 법하면 매번 내 뒤통수를 환장하게 후두려치는 짜침으로 점철돼 정신이 혼미하던 날.
때는 2022년 11월 11일 빼빼로데이. '이혐치혐', 아침마다 곧 펼쳐질 업무의 혐오도를 덮기 위해 다소 혐오스러운 강도의 운동을 시작한 지 어언 10달째였다. 이 운동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당장 숨쉬기 자체를 힘들게 만들어 현생을 뒤덮고 있던 혐오의 감정조차 잊게 하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안쓰러운 내가 내린 딸기향 해열제다. (혹시 비슷한 테라피가 필요하신 분이 있을까 밝히자면 공식 명칭은 F45다)
땀 빼고 샤워까지 개운히 마치고 나오니 부장 방의 지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빼빼로데이인데, 왜 아직 관련 발제가 올라오지 않느냐. 누구라도 보고를 해야 하는 게 맞다. 뭐 그런 말들이 오갔던 것 같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생각했다. 뭐 맞는 말이라면 맞는 말인데(처맞는 말), 좀 궁금해지긴 했다. 원래 우리 부서가 평기자들이 발제할 만한 걸 먼저 보고하는 시스템인가? 나만 모르나? 애초에 우리 부서 시스템이랄 게 있었나? 있다면 확실히 픽스해 알려줬어야 하는 게 먼저 아닌가? 다른 날들은 본인들 마음대로 상명하복식 지시를 내리다가 왜 오늘만?
익숙한 무근본 무원칙 대화를한 발 슬쩍 빠져 지켜보던 중, 불똥은 내게로 튀었다. 오늘 내 일정에 대해 묻는데 뭐 이렇다 할 건 없다. 생각해둔 일정은 저번 주 회의에서 구리다는 평을 들은 한 발제의 심폐소생 가능성을 엿보는 일. 내가 내놓은 발제가 아니기에 애정도 없지만 대체할 만한 매력적인 아이템이 있는 게 아니기에 마다할 구실도 없다. 익숙하다.
영혼 없이 '네, 제가 할게요.'를 질렀다. 내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했다.
익숙하다. 4년 차 기자로서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 수 있고 저항까지 할 생각도 없고 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개인 유튜버가 아니니까. 회사에 소속돼 돈 받고 일하는 노동자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중 3분 만에 만든 듯한 엉성한 야마를 토대로 지시가 내려왔다. 이러이러한 걸 지적하고, 이런 인터뷰를 확보해라.
그러겠다고 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했다.
그렇게 100+N번째 영혼 없는 취재를 시작했다. 섭외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업계 생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첨언하자면 여기서 섭외 (특히 방송기자로서)란 무엇인가. 전화 돌리기를 시작했다는 뜻이다. 전화를 돌린다는 건 무엇인가. 잘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은 내용에 대해 알려달라고, 잠시 가서 몇 컷만 찍겠다고 구걸을 시작했다는 뜻이다.
환장할 aka 익숙한 흐름이 시작됐다. 아니나 다를까 지시받은 야마(기사 방향)과 실제 업계 현실이 다르다는 사실을 통산 500번째로 인지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이태원 참사로 유통업계에서 빼빼로데이 마케팅이 소극적이어졌다는 내용을 다루라는 지시였는데, 막상 업계는 시큰둥했다. "사실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아요. 편의점에 화려한 입간판 안 하는 정도?" 침착하게 그 정도라도 찍으러 가도 되는지 물었다. 되기야 한단다. 인간이 가능한 모든 짓거리를 실행에 옮기며 살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불행하게도 섭외가 되어버린 것이다.
실태에 대해 묻던 한 업체에서는 떨떠름한 반응과 함께 재밌는 결과도 알려줬다. 작년에 비해 빼빼로 판매 매출은 오히려 올랐다는 거다. 마케팅에 눈에 띄는 변화도 없는 데다가 매출 타격조차 없다. 이런 내용의 기사를 하루 종일 취재하게 된 기자가 생겨났으니 애석하게도 바로 나다.
빼빼로데이와 묶어서 월드컵 특수를 놓치게 된 전자업계도 매장을 섭외해보라는 추가 지시까지 있었다. 3대 대형 전자 업체를 문의해봤지만 애초에 월드컵 특수랍시고 벌이는 행사가 크지 않을뿐더러, 가시적인 마케팅 규모 차이도 방송용으로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난감해했다.
그래도 했다. 종합가전 마트 한 곳이 나를 구원해준 것이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매장 모습에 큰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하는 그들을 설득해 큰 차이가 없는 매장을 촬영했다. 하루 만에 부랴부랴 섭외 2 스폿에 인터뷰 2명, 스탠딩을 마치고 마감을 했다.
이 기사는 저녁뉴스에 나가지 않았다.별안간 나만의 작은 추억이 생긴 것이다.
사실 합리적인 일이다. 저녁용 방송 뉴스로 기사화할만한 내용도 중요도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게 누구보다 열심히 전화를 열 통 넘게 돌려서 리포트 제작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던 나라는 건 서글픈 일이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에선 차오르는 눈물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일에 젊은 하루하루를 낭비당하는 내 인생이 안쓰러워서.
하루쯤을 어처구니없는 일로 보내는 것 정도도 받아들일 수 있다. 무서웠던 건 이 감정이 입사 후 150번 정도 느껴본 감정이라는 점. 최소 남은 2년이, 아니 어쩌면 니체의 영원회귀 이론처럼 내 인생의 남은 하루하루가 이런 식으로 무한히 반복될 것이라는 예감이었다.
말인지 방구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방구에 조금 더 가까운 소리들을 따르며 똥덩어리 같은 업무를 해치우며 나는 여생을 보내야 하는가.